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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씨 May 05. 2020

내 취향은 도둑과 스님



어느 순간부터 어두운 무채색에 끌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검정색을 좋아했다.




왜 하필 검정색이었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사춘기쯤 접어 들었을때 부터 알록달록한 색깔이 유치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시크한 블랙이 끌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키도 작아서 어쩐지 원색 옷을 입으면 더 아이같아 보일거라 생각했나 보다.




키가 작은데 덩치까지 작아서 어두운 옷을 입으니 더욱 작아보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가방이나 신발도 거의 다 검정색.

엄마는 맨날 어디 털러 가는 도둑같다고 놀려대셨다.





그러다 결혼하고 추가한 애정색이 있으니 바로 회색이다.

처음에는 옷이 거의 다 검정색이니까 질리기도 해서 새로 시도한 컬러가 회색이다.

잘 고르면 옷 뿐만 아니라 일반 소품도 고급져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결혼하고 엄마가 사준 자가드 커튼이 질릴 무렵 인터넷을 뒤져 호텔식 커튼을 샀다.

컬러가 너무 많아서 결정장애가 왔었는데 몇 날 며칠을 고민끝에 결정한 색은 결국 회색.

검정색 커튼을 살 수 없으니 회색을 고른것이다.

쇼핑몰 사진 속 회색커튼은 모던 그레이였나 딥그레이였나 여하튼 있어보이는 상품명과 

전문가가 그럴듯하게 찍은 사진으로 나를 사로잡았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려 드디어 커튼이 집에 왔는데 아뿔싸.

큰 거실창에 큰 회색 커튼을 달자 가뜩이나 오래된 아파트가 더욱 칙칙해져 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놀러온 친정 엄마가 결정적으로 한마디 하셨다.

"아니 무슨 절간이야? 어느 절에서 오셨어요?"





엄마는 아마도 당신이 사준 커튼을 버리고 새로 산 딸에게 섭섭해서 더 뭐라고 하신것 같다.

가뜩이나 생각보다 예쁘지 않은 커튼에 마음이 상했는데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자 더욱 보기 싫어졌다.

분명히 인터넷으로 볼때는 엄청 고급스러운 호텔식 커튼이었는데 아무래도 또 호갱이 된것 같았다.

이래서 인터넷으로 뭘 사면 안되는데....



옷은 반품이라도 하지 커튼은 맞춤형이라 그것도 곤란했다.

성격도 워낙 급해놔서 원래 커튼도 벌써 내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스님들이 보시면 편안해 할것 같은 회색빛 거실 커튼은 아직 우리집에 걸려있다.

사람이 참 간사한게 보다보니까 또 막 엄청 신경이 계속 쓰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사를 가게 된다면 쇼핑 순위 1순위는 바로 거실 커튼이다.

흰색까진 못사더라도 눈부시게 환한 색깔의 커튼을 사야겠다.

때가 타서 자주 세탁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놈의 커튼이 보기 싫어서 말이다.



내가 잘못 고른 주제에 미워하는 칙칙한 거실 커튼.

이제 옷하고 커튼은 제발 직접 보고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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