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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씨 Apr 06. 2022

나와 글 _ 작가 나부랭이의 시작

3인칭 회고록 05

"J작가님, 안녕하세요~"


"! 피디님 오셨어요~"



졸업할때가 되서야 정신을 차린 J는 첫 사회 생활로 방송작가를 선택했다. 하지만 누구나 떠올리는 방송국이 아닌, 홈쇼핑을 제작하는 외주 제작사가 첫 직장이었다. 휴학을 하느라 5.5년을 다녔던 탓에 나이만 먹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방송작가, 그중에서도 구성작가는 빠르면 고등학교 졸업 후 짧은 과정의 방송 아카데미를 거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일찍 일을 시작하는 편이고, 26살 정도 되면 대부분 막내 작가 윗단계인 서브 작가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이유로 일반 방송 제작사에서는 그녀를 막내 작가보다 나이가 많다며 곤란해 하거나 터무니 없는 조건을 제시하곤 했다. 어쨌거나 취직해야 했던 그녀는 방향을 돌려 홈쇼핑쪽 회사에 지원했고, 생각보다 금방 취직에 성공했다. 회사에 작가가 한 명 밖에 없었던 그 곳에서 그녀는 처음부터 조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을 혼자 알아서 파악하고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같은 팀에 있던 피디가 가르쳐주는 대로 구성안을 쓰긴 했지만, 어쨌거나 쓰는 일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기에 다른 구성안을 보며 혼자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J작가, 이거 다시 해봐야겠는데?"



"클라이언트가 오늘 저녁까지 수정해 달래."



"이번꺼는 좀 약하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아이디어가 위주인 순수 문학과 달리 오로지 판매 목적을 위한 대본 작성은 확실히 다른 분야였다. 처음부터 마땅한 사수없이 맨땅에 헤딩하던 그녀는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대학때 내던 과제처럼 마감도 정해져 있고, 교수님과 동기들이 피드백 했던 것처럼 클라이언트의 피드백과 끝도 없는 수정 작업이 있었지만 학교와 사회에서의 글쓰기는 차원이 달랐다. 고용된 입장에서 월급을 받으려면 자신의 몫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내가 쓰는 글'이 아닌 '그들이 만족하는 글'을 위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구성안을 써내고 또 써내려 갔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을 때, 더 늦기 전에 원래 하고자 했던 구성 작가를 어떻게든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다시 구성작가에 도전했다. 그리고 과거 방송의 메카였던 여의도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혼자 일하던 시절이 나았을거란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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