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털지 않기 시작한 것은 시월부터였다.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인데 연말에 가까워지면서,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불편한 기분이 남는 꿈들이 연일 이어진다.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때로는 되려 내 발목을 붙잡을 때가 많다.
좀 더 젊었던 시절, 수영장에서 버둥거리며 물을 먹을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강다리에 뛰어드는 사람을 떠올리곤 했다.
'어떻게 그 차가운 물속으로...'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깐이겠지만 나는 더운 여름에도 물에서 버둥거릴 나를 직면할 자신이 없다.
살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은 3월 1일이었다.
요동치는 비엣젯 이코노미석에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나는 반성하면서도 떠오르는 생각을 어찌할지 몰라
세 시간쯤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들썩거렸다.
지금도 느닷없이 눈물이 솟구치는 나를 붙잡기 위해 인문학 강좌를 신청했다.
오래된 건물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안전할까?'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져 추락할 확률은 얼마일까?'
지상 4층에서 지하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지하 1층에 소재한 서점으로 내려오면서
'추락 확률은 높을지라도 죽음을 부를 만큼 치명적 일수 없는 건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돌아오는 길에 길 건너편의 낡고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을 쳐다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마음대로 내 마음을 휘젓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11층에 산다.
고통을 분해하기 위해 끄적인다.
그래서 더 이상 이불을 털지 않기로 한다.
특히 잠에서 바로 깬 다음엔 이불을 털지 말 것.
나는 더 살펴야 할 열여섯 살의 지적장애 아이가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