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자가격리 중

by 봉년

떠나갈 때는 겨울의 끝자락이었는데 돌아오니 여름이었다.

돌아오자마자 나를 살려줄 동아줄이라 생각했던 신용회복위원회로 향했다.

전화나 인터넷 접수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차례로 접수하고 기다릴 수 없어

업무 개시 전에 도착해서 무작정 기다렸다.


'혹시나 상담을 예약하고 오지 못한 사람의 차례를 내가 대신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하여.

예상은 들어맞았다.

한 시간 즈음 기다린 끝에,

친절하지만 온기는 없는 상담을 받으며 나는 신청서에 서명하였다.

나는 3개월 이상의 장기연체가 발생한 '부실 차주' 그룹에 들어가 있었다.


한 가닥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국가가 시행하는 이 제도로 더 이상 돌려 막기를 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부채를 상환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희망.

부동산을 포함하여 연 4.7%의 이자를 부담하는 '20년 장기상환 조정안'에 서명했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숨통이 트이는 것은 내일부터는 더 이상 채권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월 100만 원 정도의 상환으로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시작된 부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발걸음 가볍게 돌아섰다.


걸어오는 삼십여 분 동안 쨍한 하늘을 여러 번 올려다봤다.

자꾸 시야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행복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는 사실에.

참으로 오랜만에...

작은 마트에 들러 삼겹살과 김치를 샀다.

그동안 영양실조를 면할 정도로만 먹고 지낸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나는 다시,

신용회복위원회 측으로부터 채무조정 지원이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고 굴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누구도 만나지 않기로 했다.

3년 전 코로나에 감염되어 혼자 격리되었던 일주일은 참 길었다.

겨우 일어나 밥 한 끼 차려먹던 그때처럼.

그러나 나는 지금 몇 달째 자가격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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