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저, 아주머니. 저의 엄마가 정신줄 놓으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네? 아니에요. 할머니 정신은 멀쩡해요. 집주소도, 자식들 이름도 얼마나 또박또박 말하는데? 할머니? 할머니 몇 남매 두셨다고 했지?
"내가 지난번에도 삼 남매라고 했잖아요. 젊은 사람이 자꾸 물어봐......"
그러고는 정확히 성까지 붙여서 자식의 이름을 읊었다. 또박또박. 그러나 빠르게. 그중 제일 힘이 들어간 것은 영환. 엄마의 막내아들이었다. 본능적으로 지금의 동아줄을 아는 듯. 공손하게 담당 보호사 아주머니께 존댓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정신줄을 놓은 것은 아닌데, 어쩜 애미를 몰라본 것일까.
엄마는 늘, 집 대문 밖에만 나서면 세상 둘도 없는 공손함과 친절함이 본능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애이는 죽음을 코 앞에 둔 엄마에게 봉년으로 기억된다. 누구인지 모를 사람. 애이는, 듣기에도 나이가 지긋하게 느껴지는 그 이름을 낯설어하면서도, 환하게 반기던 엄마의 표정 때문에 마음으로는 이미 받아들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봉년을.
"죽 사 왔어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야구모자를 눌러써서 한눈에 알아보니 못했지만 올케다.
애이도 놀랐지만, 올케도 깜짝 놀랐는지 죽이든 종이가방을 침상에 던지다시피 하고 나가버렸다.
"착해요 며느리가. 맨날 열한 시가 되믄 죽 들고 오거든요. 할머니 지금 죽 드릴까?”
“저거 끝나면 먹지요.”
엄마는
아까부터 열중하고 있는 것은 케이블 채널의 노래프로그램이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전국노래자랑을 틀어놓고 심사위원마냥 참가자들의 노래실력을 평가하던 엄마였다. 노래가 어떻다 저떻다, 뒷돈을 받았나 왜 땡을 안치냐... 온갖 참견을 했던 엄마는 지금 아무 말도 없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애이가 만져보는 엄마손은 퉁퉁 부어서 주먹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부은 손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막내 영환이를 낳았을 때도 엄청나게 붓긴 했지만 이렇게 관절이 튀어나와 있지는 않았었는데......'
찬찬히 엄마를 뜯어보며, 마음으로 봉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순간까지도 흐느낌은 멈춰지지 않았다. 실컷 울라고 노래자랑은 시간을 넉넉히 주었다.
'내가 봉년이라고?'
애이는 엄마의 옆모습을 뜯어보며 흐느낌을 멈추지 못한다.
[봉 년]
엄마의 전화기가 울린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엄마의 봉년이 받는다.
"여보세요?"
“아주머니? 저 동근이에유. 바짓단 고칠 거 있어서 가지고 왔는데 지금 어디시래유?”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딸이에요. 지금은 곤란한데요... 저희 엄마가 병원에 계셔서요.....”
“아 어디가 편찬으시대유? 그렇잖아도 어저께 집에 가봤더니 잠겼어서 어디 가셨나 했는디 오늘도 안 계셔서 무슨 일 있나 하긴 했슈."
"......"
"그럼 급한 거 아니니깨 오시는 대로 천천히 해주시라구 하셔유.”
"아, 그게 아니라...... 네,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봉년은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전화기를 접었다. 바짓단을 고치는 게 안된다고 대답하면 지금 눈앞에 누워있는 엄마가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렇게 대답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티비에 열중해 있어도 엄마는 통화소리는 들었는지.
“누구여?”
“전에 이장님. 동근이 아저씨. 바지 고칠 거 가지고 왔대.”
“두고 가라구 하지.”
“으으으뭐라구? 그 몸으로 어떻게 할라고?”
“왜 자꾸 울고 그려? 아픈 거 가라앉으믄 가야지. 내가 팔자 좋게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구 있간? 내가 쉴 팔자냐? 가서 고쳐주야지. 그동안 내게다 얼마나 잘했다고."
'울지 말랜다. 제정신도 아니면서.'
엄마의 봉년은 혼잣말로 되뇌었다.
“으으으... 집이 어딘주는 알어?”
“그라믄. 웅천아녀.”
“그래.으으...잘 아네 웅천. 어어어.... 그럼 빨리 가자아-----.”
엄마의 봉년은 어린아이처럼 엄마손을 끌어당겨 흔들었다.
“어이구, 며칠은 더 있으야 가지. 치료할 게 아직 남았당께. 기달려봐아.”
갑자기 엄마는 고개를 틀어 봉년을 보더니.
“오랜만인데 그새 이뻐졌네? 니가 참 야무졌지. 에이 울 필요 없어! 앞으로도 야무져서 잘 살껴”
도대체 누군 줄 알고 하는 소리인지 확인하고 싶어 다시 묻는다.
“내가 누군데? 누군지 알고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엄마는 대답대신 갑자기 고개를 한쪽으로 틀어가며
“저기 좀 비키라구 하지. 왜 자꾸 테레비는 가려싼대?”
대답대신 엉뚱한 소리 하는 엄마의 시선을 앞이 흐려진 눈으로 봉년은 따라갔다.
“없고만 뭐가 있다는 거야?”
“야야 눈도 좋은 애가 저게 안 보이냐? 한두 마리가 아니고만. 왜 말들은 잔뜩 여기까지 끌고 와서 풀어놓고 저려?”
“응? 뭐라구? 말이 있어?”
보조 의자에 앉아서 축축해진 휴지를 돌돌 말아 손으로 꾹꾹 누르고 있던 봉년은 놀란 듯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