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위해 다시 쓰는 [엄마기억] #. 11

# 잃어가는 기억

by 봉년

#. 11


건물 육 층을 애이는 걸어서 올라가고 있다. 애이는 왠지 몸이라도 괴롭혀야 덜 괴로울 것 같다.

바로 출입문에 가장 가까운 침상에 누워서 티브이에 열중하고 있는 노인이 바로 엄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애이는 알아챈다. 정면으로 엄마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눈물이 곡소리와 함께 애이의 몸에서 쏟아져 내린다. 눈물이, 안 나올까 봐 그렇게도 걱정했던 눈물이.


낮에는 절대로, 절대로 빼놓는 일이 없던 틀니는 침대 위 선반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틀니를 빼놓은 엄마는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평소보다 더 못생겼다. 애이는 그 몰골을 한 엄마와는 절대로 나란히 걸을 수 없겠다. 애이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아서 이 부끄러움을 껴안아 줄 수 없을 것이다 애이는. 엄마가 그런 얼굴이 될 지경까지 외면하고 있었던 애이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명에 가까운 곡소리에 놀랐는지, 고개를 돌린 엄마는 상체를 약간 일으키려다 이내 포기하고 얼굴만 애이 쪽을 향한다.


"엄마!"

"누구여?"

"나 몰라? 엄마 아아------------- 아!"


"누구세요? 아, 따님이신가?"

"네에."

"어이구? 난 또 누구라구? 한창 바쁜 시간인데 어특하고 여기까지 왔어?"

"어어어어......."

알아보기 힘든 그 몰골이 되어가면서도 자식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더 속상해서 애이는 더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들썩거리고 나서야 애이는 엄마의 손을 힘껏 잡는다.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중증환자로 변해버린 엄마는 전에 없이 애이를 반긴다. 그 반김에 애이는 감사한 것이 아니라 불안감이, 왜 진작부터 이렇게 반겨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원망이 함께 올라온다.


"에구 울지 말어."

"어어어어.... 이제 안 울게에에....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야? 나 누군지 알겠어?"

"응? 응, 그럼 알다마다. 봉년이지 니가."

"뭐? 내가 봉년이라고? 어? 복년이라고?"

순간 애이는 더 이상 흐느낄 수 없었다.

딸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도 엄마는 엉뚱한 이름을 부르고 있다 지금.


'어? 지금 누구랑 헷갈리는 거야, 설마 나를 몰라보나?'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애이를 엄마는 똑바로 올려다보며,

"니가 봉년이자너. 김봉년. 인제 이름도 몰라?"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아니 심각함을 엄마는 애이에게 지금 증명하고 있다.

애이는 순간 반사적으로 엄마의 하체를 덮고 있는 이불을 들췄다. 더운 여름날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불을 덮고 있어야 했던 이유를 이내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깟 이름 따위가 의미를 주는 상황은 아니었다. 기가 막힌다. 너무 기가 막힘은 눈물도 멈추게 했다. 엄마는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는 집에서나 본 하얀 배변 매트 위에 소변줄이 끼워진 엄마의 하체가 올려져 있었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이불 한 장이 그것을 가려주고 있다. 이불을 바라보며 애이는 허락 없이 쏟아지는 눈물의 끊어질 지점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애이를 올려다보며 끊어질 줄 모르는 물줄기를 더 굵게 만든 건 엄마였다.


"울지 말어. 인제 나는 괜찮아졌어."

"뭐가? 어디가? 어디가 괜찮대는 거야? 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