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퇴근, ‘자율근무’의 허상
퇴근 시간 17분 전.
토끼는 컴퓨터를 슬며시 끄고 가방에 당근 도시락통을 넣었다.
슬쩍 주변을 봤다.
고슴도치는 머그잔을 닦고 있었고, 다람쥐 인턴은 똑같은 셀 하나만 두 시간째 복사 중이었다.
토끼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팀장 너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토끼 씨~ 벌써 가시나요?”
“…네. 오늘은 정시 퇴근이라.”
너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자율근무제지만, 팀워크를 중시하거든요.
혹시 급하게 가셔야 하는 일정이라도 있으신가요?”
토끼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네, 집이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슴도치가 다가왔다.
“토끼 씨... 혹시 팀 분위기에 불편한 점이 있으세요?”
“아니요. 저는 그냥, 일 끝나면 가는 타입이에요.”
고슴도치는 당황한 듯 웃었다.
“아~ 저희는 보통 ‘좀 더 있을 사람’이 인정받는 분위기라… 눈치 보이실까 봐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고슴도치가 덧붙였다.
“내일은 조금 늦게 나와 보시는 건 어때요?
그러면 ‘아 얘가 늦게까지 일했구나~’ 하는 느낌?”
그날 밤, 토끼는 자기 전 명상 앱을 켰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했습니다."
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회사 슬랙이 울렸다.
[기획팀] 팀장너굴 : 오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기획팀] 다람쥐 인턴 :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기획팀] 고슴도치 :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기획팀] 팀장너굴 : 그런데 토끼 씨는... 어디 계신가요?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용기다.”
토끼는 다시 알람을 껐다.
다만 이번엔, 진짜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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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예고: 회의는 왜 존재하나요
다섯 마리가 모여 만든 결론: 내일 다시 회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