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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일상온도

그는 오지 않았다. 다섯 번째 약속을 넘기고 여섯 번째가 지나던 날, 나는 상담실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일은 늘 마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휴대폰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이젠 문까지는 나와요. 그런데 손이 문고리에 안 닿아요." 그 한 문장이 머릿속을 오래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에서 무엇보다도, 노력과 무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분명 그는 움직였고, 노력했고, 문까지 다가섰다. 하지만 딱 1센티미터, 문고리를 잡을 수 없었다는 그 거리. 그 작은 간극이 결국 세상과의 모든 단절이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리는 흔히 ‘사회부적응자’라는 말을 쓴다. 스스로에게는 잘 쓰지 않지만, 뉴스나 통계, 때로는 뒷담화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꽤 쉽게 가져다붙이는 말이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아, 실패자, 이상한 사람, 불편한 존재. 그 말들 속엔 정해진 삶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무언의 경고가 들어 있다. 네가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그러나 그 단어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낙인보다 훨씬 더 많은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상담실 안에서, 복지관 구석에서, 자기소개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옆에서 그런 마음들을 마주해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조차, 안간힘을 다해 세상을 붙잡고 있었다.


이 책은 그들에 대한 기록이다. 모두가 ‘정상’이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너무 일찍 멈춰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이들은 말하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방 안에서 시간을 놓쳤고, 또 어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이 책은 그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단지 그 거리가 너무 멀어서가 아니라, 너무 작아서 외면당했던 1센티미터. 그 문고리를 잡기 위한 한 사람의 용기와 싸움을 우리가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 한때 멈춰섰던 경험이 있다면, 혹은 지금 누군가의 움직이지 않는 뒷모습을 떠올리고 있다면, 나는 이 기록이 그저 책 한 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판단하기 전에 이해하려는 마음, 고개를 돌리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보는 눈, 그 작은 시선 하나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작이 될지도 모르니까. 문 밖으로, 1cm. 그 거리의 의미를 우리는 함께 다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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