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사라지지 않아도 흐려진다

5장. 삶으로 이어지는 마음 이야기

by 일상온도

예전의 나는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야만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기억이 지워지고, 마음이 아무는 그날이 와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계속 기다렸다.

이 감정이 사라지기를.

그 사람의 말이 잊히기를.

그때의 장면이 흐려지기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그 기억이 떠올라도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고,

예전처럼 가슴이 쿵 내려앉지도 않는다는 걸.


상처는 여전히 내 안에 있지만,

이제는 그 상처를 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상처는 흔적처럼 남는다.

완전히 지워지진 않지만,

그 자리에 이해와 애도의 감정이 덧칠되면

그 상처는 더 이상 날 해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자국은

내가 어디를 지나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나는 나의 상처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가 무심코 건드릴까봐 움츠리기보다,

그 상처를 하나의 기억이자 배움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전에는 약점이라고 여겼던 감정들이

지금은 나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준

삶의 일부로 느껴진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아도 흐려질 수 있다.

그 흐림 속에서 우리는

덜 아프게, 덜 흔들리게,

조금 더 온전하게 살아간다.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나의 과거를 덜 미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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