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대왕》: 나눔의 미덕과 무소유의 아름다움

by 김환희

이탈리아의 창작옛이야기인 《사과 대왕》 (김영진 옮김, 달리, 2003년)은 욕심꾸러기 돼지 왕이 ‘나눔’의 즐거움과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 우화이다. 프란체스카 보스카(Francesca Bosca)가 글을 쓰고 줄리아노 페리(Giuliano Ferri)가 그림을 그린 《사과 대왕》(The Apple King)은 겉표지부터 인상적이다. 겉표지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궁궐의 뜰에서 벌레 먹은 사과를 돋보기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분홍빛 돼지 왕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느껴지는 익살과 유머가 그림책 전체에 넘친다. 빨간 사과 속의 조그만 벌레와 거대한 체구를 지닌 돼지 임금 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 이야기에는 삶의 지혜와 교훈적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어서 어린이와 어른이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성 안에 갇힌 듯한 모습으로 홀로 외롭게 서 있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보여주는 《사과 대왕》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된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성에 힘센 부자 임금님이 살고 있었어요. 성 마당에는 해마다 탐스럽고 달콤한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어요. 임금님은 사과나무를 아주 자랑스러워했지요.” 돼지 임금이 사과나무에 대해 지닌 사랑은 병적일 정도이다. 여름에는 매일 정원에 가서 사과나무를 쳐다보고 가을에는 사다리를 타고 손수 사과를 따서 보석처럼 윤기가 흐를 때까지 깨끗이 닦는다. 돼지 임금은 사과가 값진 보석이라도 되듯이 성 곳곳에 진열을 해 놓고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만질 수도 먹을 수도 없게 하였다. 임금은 그것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서 수석 정원사를 사과나무를 돌보는 전담 정원사로 삼아 그 누구도 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게 한다.


이렇게 정성 들여 사과나무를 돌보았는데도 어느 날 벌레가 사과나무에 침입하는 끔찍스러운 일이 생긴다. 수석 정원사는 헐레벌떡 임금에게 달려가 “전하의 사과 안에 벌레가 숨어 있사옵니다”라고 알려 주었고, 분노한 임금은 그를 잡초 뽑는 일이나 하도록 좌천시킨다. 임금이 정원에 와서 사태를 직접 눈으로 파악해보니 벌레는 사과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무 전체가 벌레 천국이었다. 돼지 임금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벌레에게 뇌물을 줘서 사태를 해결하려고 든다. 임금이 벌레에게 물러나 주는 대가로 금화 한 자루를 제안하자 벌레는 “피이이이! 금화는 먹을 수가 없잖아요”라고 대답하고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벌레를 뇌물로 회유하는 데 실패한 임금은 왕국에서 가장 유능한 마법사를 고용한다. 하지만 묘약의 약효가 떨어지자 벌레는 다시 등장해서 예전보다 더 게걸스럽게 사과를 갉아먹는다. 그 후 임금은 자신의 군대로 하여금 사과나무를 포위해 벌레를 공략하게 만들지만 사과를 훼손하지 않고는 벌레를 죽일 방법이 없어서 또다시 실패한다. 결국 뇌물, 마법, 무력을 동원해도 벌레를 내쫓을 수 없었던 돼지 임금은 벌레 퇴치자를 현상 모집하지만 음흉한 여우에게 걸려 사기를 당하고 만다. 벌레 먹은 사과를 사기꾼들이 빨갛게 칠을 한 줄 모르고 먹으려던 임금은 벌레가 코 위로 기어오르자 기겁을 한다. 돼지 임금이 냅다 소리를 지르면서 벌레에게 무슨 권리로 자신의 사과에 감히 침입했는지를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임금님의 사과나무가 우리를 초대했어요! 사과나무는 해마다 맛있는 사과를 주렁주렁 맺어 왔지요. 하지만 임금님은 아무도 사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어요. 나비랑 새가 날아와 앉지도 못하게 하셨지요. 아이들이 가지를 타고 올라가서 사과를 하나 슬쩍하는 것도 절대 용서하지 않으셨어요. 가엾은 사과나무는 너무 슬프고 외로웠어요. 그래서 우리를 초대한 거예요. 임금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사과를 맛보고 기뻐할 수 있도록요."


벌레의 당돌한 대답에 임금은 순간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지만 곧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다. 임금은 벌레를 초대한 자신의 사과나무가 그 얼마나 훌륭한지 경탄해 마지않으면서 사과로 주스와 케이크를 만들어 축제를 열겠다고 공표한다. 벌레들은 멋진 축제가 열릴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사과나무를 떠나고, 축제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사과의 뛰어난 맛과 임금의 성은을 찬미한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때 자신의 사과가 더욱 맛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임금은 그 이후로 매년 가을이면 사과 축제를 베풀었고 이따금씩 벌레가 방문해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러한 줄거리를 지닌 《사과 대왕》에는 서구 유럽의 옛이야기들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모티프(motif)가 내재해 있다. 《사과 대왕》에서 임금이 돼지라는 캐릭터로 표현된 것은 이탈리아의 스트라파롤라(Straparola)가 16세기 중엽에 기록한 옛이야기 <돼지 왕>에서 착상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돼지 왕>은 ‘동물 신랑’ 또는 ‘미녀와 야수’ 유형에 속하는 보편적인 설화 가운데 하나인데, 《사과 대왕》의 임금이 지닌 난폭하고 의심 많은 성격이 <돼지 왕>의 주인공과 아주 비슷하다. 사과나무에 대한 임금의 병적인 사랑과 소유욕은 이탈노 칼비노가 편찬한 《이탈리아 민담집》에 수록된 설화 <사과 처녀> 및 그림형제의 <손 없는 색시>에 나오는 임금들을 연상시킨다. 또 벌레 먹은 사과가 지혜로운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구약성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세기>에는 선악과 나무가 어떤 과일나무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많은 서구 유럽 사람들은 이 나무를 사과나무로 생각해 왔다. 16세기의 유명한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 2세가 그린 <아담과 이브>를 보면 선악과를 벌레 먹은 사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옛이야기의 여러 모티프가 절묘하게 결합된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이러한 문학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도 《사과 대왕》은 보스카의 글과 페리의 그림이 담고 있는 유머와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때문에 읽는 것이 즐겁다. 속표지를 살펴보면 접시에 놓인 벌레 먹은 사과는 왕관을 쓰고 있고 벌레는 곰실거리면서 사과 곁을 떠난다. 막강한 권력과 부를 지닌 돼지 임금 대신에 벌레 먹은 사과에 왕관을 씌운 그림을 통해 페리는 돼지 임금보다 벌레 먹은 사과가 더 뛰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고, 사과 곁을 떠나는 벌레의 모습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대단원이 어떻게 끝날 지를 예상하게 한다.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동물들의 모습도 익살스럽다. 사과나무를 돌보는 수석 정원사로 있다가 좌천되는 동물로는 토끼가 등장하고, 토끼의 사다리로는 기린, 사과나무 앞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마술봉을 휘두르는 마법사로는 말, 임금의 군사로는 코끼리와 갖가지 동물들, 포상을 노린 사기꾼으로는 정장 차림의 여우와 팔레트를 든 화가 모습의 염소가 등장한다. 사과 축제에 참석하는 동물들은 그야말로 숲 속의 동물들을 모두 집합시켜 놓은 것처럼 각양각색이다.

사과대왕2.jpg 출처: ⟪사과 대왕⟫ (프란체스카 보스카 글/ 줄리아노 페리 그림, 김정진 옮김, 달리, 2003)

이러한 의인화된 동물의 모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위계질서와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은유와 아이러니도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페리는 등장인물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힘 있는 존재--정원사 토끼에게 호령하는 돼지 임금과 벌레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임금 앞에 놓인 사과나무--를 모두 거대한 그림자로 처리함으로써 그들의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보여준다. 또 대군을 이끌고 사과나무에 온 돼지 임금이 칼로 벌레를 위협하는 장면과 거대한 체구의 임금이 조그만 몸을 뻣뻣이 세우고 자신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벌레 앞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할 정도로 쩔쩔매는 장면이 보여주는 위계질서의 전복이 무척 익살스럽다. 이렇게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나눔의 미덕’을 전달하는 탓인지 이야기가 담고 있는 교훈적인 메시지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사과 대왕》은 ‘기쁨은 나눌 때 배가 된다’ ‘사랑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다르다’라는 메시지 이외에도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돼지 임금과 비슷한 딜레마에 종종 처하게 된다. 나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늪과 같고,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더 온몸을 옥죄는 밧줄 같은 그런 혼돈스러운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우선 그러한 상황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 위해서 돼지 임금처럼 뇌물과 술수와 외압이라는 편법을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편법과 요령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더욱더 난처한 상황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듯이 사태가 힘들면 힘들수록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침착성을 잃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일 것이다. 마침내 벌레가 물러가게 된 것이 임금이 사용한 편법이나 무력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나눈 대화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작가가 전하고자 한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삶의 지혜는 스트라파롤라의 <돼지 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돼지 왕자는 본래 의심이 많은 난폭한 인물이었다. 마법에 걸려 흉측한 돼지의 용모를 지니고 태어난 왕자는 자신의 돈과 권력을 보고 정략적으로 결혼한 여자들을 믿지 못해 신혼 첫날 밤에 차례차례 죽여 버린다. 돼지 왕자가 두 아내를 살해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적 내지 짐승으로 취급하면서 살해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두 아내들과는 다르게 세 번째 아내가 남편인 자신의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하자 왕자는 비로소 돼지의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인간이 된다.


《사과 대왕》에서 임금이 자신이 아끼는 사과나무에 침입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물러가게 한 것이나 <돼지 왕>에서 세 번째 아내가 야수 남편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만든 것은 모두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골칫거리를 관용과 열린 마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보왕삼매론>에서 옛 선사가 가르쳐 준 동양적인 삶의 지혜와 일맥상통한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사과 대왕》은 나눔의 미덕과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전해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느닷없이 찾아든 불청객을 적이 아니라 벗으로 대하는 생활의 지혜’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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