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동화하면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와 같이 불행한 처지에 있던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고 ‘백마 탄 왕자’를 만나서 행복해지는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신데렐라와 콩쥐가 구박받는 하녀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남자를 만나면서부터이다. 호기심에 가득 찬 찔레꽃 공주와 빨간 모자가 반죽음 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것도 지혜롭고 용감한 남자가 구원해 준 덕분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모습을 극대화시킨 것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이다. 백설공주는 숲속 난쟁이들의 오두막에서 주부노릇을 열심히 하면서 “언젠가는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예요 Some day my prince will come"란 노래를 부르며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린다. 백설공주는 집안일에는 베테랑 주부처럼 능숙하지만 낯선 존재와의 만남에서는 무능력하기 짝이 없고, 난쟁이와 왕자가 없었다면 가사 상태에서 깨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옛이야기들에서 여자들은 한결같이 수동적이기만 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서구의 옛이야기들 특히 구전설화 가운데는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용감하고 적극적이고 강인하게 그려진 이야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옛이야기들은 가부장적인 서구사회의 주류 문화 속으로 편입되지 못해서 그동안 세상에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다. 그림형제와 조지프 제이콥스가 쓴 옛이야기 모음집을 살펴보면 지혜롭고 강인한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 여주인공이 낯선 세계로 모험을 떠나서 사랑과 행운을 쟁취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재화한 수없이 많은 옛이야기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그림책 또는 동화로 거듭 출간되어 아이들에게 읽혀 온 이야기들은 주로 서구사회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부합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서구의 지식인들이 ‘정치적 올바름’ 내지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주변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오늘날 옛이야기는 재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은 소위 ‘서구고전동화’로 일컬어지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이름모를 민중들의 입을 통해 전승되어 온 구전설화이다. 구전설화 가운데서도 진보적인 세계관과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아니카 에스테를이 글을 쓰고 율리아 구코바가 그림을 그린 《설탕으로 만든 사람》(비룡소, 2000년)은 <세몰리나 님>이라는 그리스의 구전설화를 재화한 이야기이다.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율리아 구코바의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그림과 에스테를의 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책이다. 러시아 화가와 독일 작가와 그리스 이야기꾼이 하나가 되어 완성한 다문화주의의 산물이다. 사람을 압도하는 마력을 지닌 구코바의 환상적인 그림은 그야말로 백문불여일견이어서 굳이 그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구코바 그림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문자 언어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고나 할까. 그림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글에 담겨 있는, 그리스 옛사람들의 놀라운 여성주의적인 세계관 및 삶의 지혜이다.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 등장하는 공주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와는 달리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다. 이는 책의 첫 구절에서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옛날 옛날에 임금님이 한 분 살았습니다. 임금님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지요. 많은 남자들이 공주님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지만 공주님은 청혼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공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주님은 마음에 드는 남자를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곱게 빻은 아몬드와 설탕, 밀가루를 골고루 섞어 사람을 빚은 다음, 왕궁에 있는 성스러운 그림 앞에 세워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습니다. 40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한 끝에 공주님이 만든 사람은 생명을 얻어 눈을 떴습니다. 공주님은 그 사람을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금세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펼쳐지는 들머리에서 알 수 있듯이, 《설탕으로 만든 사람》의 공주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처럼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배우자가 없을 경우에는 자신이 배우자를 창조할 정도로 능동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설정이 지닌 현대성과 여성주의 때문에 독자들은 에스테를이 그리스 민담을 오늘날의 여성들의 취향에 맞게 개작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원작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민담 <세몰리나 님>(Master Semolina)을 거의 그대로 다시 쓴 것이다 <세몰리나 님>과《설탕으로 만든 사람》의 서두는 주인공의 젠더만 바뀌었을 뿐 <피그말리온> 신화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피그말리온> 신화에서 키프로스 섬의 왕 피그말리온은 눈이 너무 높아서 현실 속에서는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찾을 수 없어서 자신이 직접 상아로 이상적인 여인상을 조각한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예술품과 사랑에 빠져서 조각상이 마치 살아있는 여자라도 되듯이 ‘잠든 사랑‘(갈라티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온갖 아름다운 장신구와 의상으로 정성들여 치장한다. 나중에 축제 때 피그말리온은 비너스 신에게 자신의 조각상과 똑같은 여자와 살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비너스 신은 그 기도에 응답하며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 준다. 이와 같이, 피그말리온과《설탕으로 만든 사람》의 공주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이 두 이야기가 담고 있는 세계관은 매우 다르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티아의 사랑 이야기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동화 같이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끝난다. 그 두 사람은 비너스의 은총으로 결혼 한 후에 파포스라는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런데 과연 이들의 만남이 신화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났다면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본래적인 속성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의 의도와 취향대로 변모한 존재에게 행복은 가능한 것인가?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이라는 희곡에서 피그말리온(히긴스)은 갈라티아(일라이자)에게 무관심해지고, 갈라티아는 그러한 피그말리온의 곁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설정한다.《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 그리스의 옛이야기꾼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티아의 사랑이 행복한 관계로 발전하려면 간난신고의 인생역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 공주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든 ‘설탕으로 만든 사람’과 결혼 한 후에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기고 혹독한 시련을 체험한다.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찾아 아주 먼 나라에서 황금 배를 타고 온 사악한 여왕에게 납치당한다. 공주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찾아서 지난한 여행의 길을 떠난다. 여행담을 간추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주는 무쇠 신을 세 켤레 장만하고 달과 해와 별들의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달의 어머니와 달을 만나고, 해의 어머니와 해를 만나고, 별들의 어머니와 별들 만난다. 공주는 작은 별 덕분에 겨우 남편이 하얀 궁전의 여왕에게 납치된 사실을 알게 된다. 세 켤레의 무쇠 신이 다 닳고 나서야 비로소 하얀 궁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공주는 거지로 변장하고 거위 우리에 잠을 청한다. 공주는 여행 중에 달과 해와 별들로부터 받은 세 개의 견과-- 아몬드, 호두, 개암--로 여왕을 유혹해 잠든 남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아몬드를 깨자 황금물레와 가락이 나오고, 호두를 깨자 황금 암탉과 병아리가 나오고, 개암을 깨자 황금 패랭이꽃이 나온다. 거지 여인의 신기한 황금 물건을 탐낸 여왕은 이를 받는 조건으로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거위 우리로 데려다 준다. 거위 우리에 온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이미 잠자는 약을 먹은 뒤여서 공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공주의 탄식을 들은 거위 우리 옆에 사는 재단사는 세 번째 날에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게 거위 우리에 있는 거지 여인의 존재를 알려 준다. 그날 밤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여왕의 약을 먹지 않고 잠든 체 하고 있다가 공주를 만나서 함께 말을 타고 달아난다.
이와 같이 ‘여자 피그말리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그리스 민담이 보여주는 세계는 <피그말리온> 신화의 세계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스 민담은 피그말리온 신화와는 달리 우리에게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존재와 결혼하는 일이 곧 행복의 시작’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혼이 한 존재의 일방적인 뜻에 의해 이루어졌을 경우 그 결혼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으며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피그말리온>신화는 한 존재가 무감각한 대상에 온갖 정성과 사랑을 다 기울여서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과 관련지어 풀이할 경우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적지 않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티아의 관계, ‘설탕으로 만든 사람’과 공주의 관계는 한 사람의 기대, 취향,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평등한 관계는 아니다. 이 두 존재의 관계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인간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한 존재가 자신의 우월한 위치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의 입장에 서 볼 필요가 있다. 《설탕으로 만든 사람》의 공주가 세 켤레의 무쇠 신이 닳도록 온 우주로 고행의 길을 떠났던 것, 천대받는 거지 여인을 자처하면서 거위 우리에서 머물렀던 것, 그리고 깊은 잠에 빠진 남편에게 밤새도록 자신의 슬픔을 담은 말을 들려 준 것 등은 공주와 ‘설탕으로 만든 사람’의 관계가 지닌 근원적인 불평등을 소멸하고 참다운 결합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공주의 변모와 간절한 바람은 수동적인 자세로 삶을 살았던 남편을 변화시킨다. 남편의 변화는 그리스 민담 <세몰리나 님>에서 좀더 뚜렷하게 부각된다. 남편은 공주가 자신을 찾아 세 켤레의 무쇠 신이 닳도록 걷고 걸어서 머나먼 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스스로 말에 안장을 얹고 황금 자루를 꾸려서 공주의 왕국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아쉽게도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는 이 대목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일방의 사랑’이 ‘쌍방의 사랑’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피그말리온> 신화가 인간의 꿈을 담고 있다면,《설탕으로 만든 사람》또는 <세몰리나 님>은 인간의 꿈뿐만 아니라 현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는 피그말리온처럼 사랑하는 대상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 피그말리온 신화 속에서 그 사랑하는 대상은 이성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대상을 반드시 이성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티아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의사와 환자 등 다양한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치환해 볼 수 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책에서 교사의 기대가 학생의 수행 능력에 그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연구에 다르면 ‘피그말리온 효과’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는 객체(학생)가 아니라 주체(교사)이다. 주체가 객체에 거는 기대와 믿음, 주체의 세계관과 심성, 주체의 정성과 노력에 따라서 객체는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즉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주체가 어떠한 존재인가에 따라서 객체는 갈라티아가 될 수도 있고 ‘골렘’ 또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될 수도 있다. 피그말리온과 프랑켄슈타인, 갈라티아와 괴물은 동전의 양면과 다름없다. 설령 객체가 갈라티아와 같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화했을지라도 주체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객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심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 그리스의 옛사람들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사랑하는 대상을 변화시키려는 피그말리온의 작업보다 더 힘들고 중요한 일이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우리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만하고 똑똑한 공주가 무쇠 신 세 켤레가 다 닳도록 온 우주를 헤맨 끝에 거지 여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설탕으로 만든 사람’ (갈라티아)의 사랑을 얻은 것은 피그말리온의 꿈을 지닌 사람들이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인 것이다.
Giorgios A. Megas, Folktales of Greece (Chicago: Chicago UP, 1970) 60-65. 그리스 민담 「세몰리나 님」과 《설탕으로 만든 사람》의 차이는 제목과 꽃 이름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 민담에 나오는 세몰리나는 ‘마카로니와 푸딩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거친 밀가루’를 의미한다. 민담의 이야기꾼은 설탕보다는 밀가루를, 에스테를은 밀가루보다 설탕을 더 중요시하였다. 이는 아마도 두 이야기꾼이 속한 사회계층 내지 직업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 민담의 이야기꾼은 음식을 장만하는 일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어서 설탕보다 밀가루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고, 에스테를은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를 낭만적으로 부각시키고 싶어서 설탕에 중점을 둔 것 같다. 또 다른 화소는 별이 공주에게 준 개암 열매에서 나온 꽃의 품명이 바뀐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스 민담에서는 개암에서 나온 꽃은 음식 만들 때 향신료로 쓰이는 “정향”(클로브)인 반면에, 에스테를의 글에는 외형이 화사한 “패랭이꽃”으로 되어 있다. 이 두 화소를 제외하고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그리스 민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전되어 온 민담을 거의 그대로 옮긴 그림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