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 젤린스키(Paul O. Zelinsky)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다시쓴《룸펠슈틸츠헨》(베틀북, 2001년)은 도덕적인 교훈이 담겨 있지 않고 이야기의 구성이 느슨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림이 섬세하고 아름다운데다 이야기가 독특해서 읽기에 즐겁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린이책을 교화와 언어습득의 수단으로 보질 않고 미학적이고 문화적인 체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룸펠슈틸츠헨》은 추천할만한 책이다.
<룸펠슈틸츠헨> 유형의 설화는 입말과 글로 유럽 여러 지역에서 폭넓게 전승될 정도로 서구에서는 잘 알려진 설화이다. 이 이야기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역사는 길다. 방정환은 1924년에 <룸펠슈틸츠헨>을 《어린이》지에 <작은이의 이름>이라는 제목의 번안 동화로 소개하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배경과 주인공의 이름이 한국식으로 바뀌긴 하였지만, 줄거리는 거의 그림 형제 판본에서 따온 것이다. <룸펠슈틸츠헨>은 웅진닷컴에서 2001년에 출간한 《그림 형제가 들려주는 독일 옛이야기》라는 그림책 속에 이현정의 야수파 풍 그림으로 완역 소개된 적이 있고, 유아들의 언어습득 능력을 위한 그림책으로 꾸며져 새샘에서 출판된 바 있다. 이 두 번역본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림형제의 《룸펠슈틸츠헨》은 대부분 1857년에 출간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이야기》의 최종본에 의존하고 있다.
젤린스키의 《룸펠슈틸츠헨》은 1857년 판본이 아니라 1819년 판본을 중심으로 여러 모티프를 첨삭해서 다시쓴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알려진 이야기들과는 내용이 다소 다르다. 젤린스키가 다시쓴《룸펠슈틸츠헨》의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아름다운 딸을 둔 가난한 방앗간 주인이 살았습니다. 방앗간 주인은 성안으로 들어가다가 임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방앗간 주인은 임금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딸이 물레질해서 짚으로 황금을 만들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황금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임금은 방앗간 집 소녀를 궁전으로 데려옵니다. 소녀를 짚단이 가득 찬 방으로 데려가 실패와 물레를 주면서 임금은 짚으로 황금을 만들지 못하면 그다음 날 아침에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임금의 황당한 요구에 난처해진 소녀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때 조그만 남자가 나타나서 도와주면서, 그 대가로 목걸이를 받아 갑니다. 하지만 그 이튿날 황금 실패로 가득 찬 방을 보고 임금은 만족할 줄 모르고 소녀를 짚이 가득한 두 번째 방으로 끌고 가서 소녀를 협박합니다. 작은 남자가 다시 나타나서 소녀를 돕고, 소녀는 그 대가로 손가락에 낀 반지를 줍니다. 셋째 날 아침에도 임금은 여전히 만족할 줄 모르고 소녀에게 짚이 훨씬 더 많이 놓여 있는 큰 방으로 데려갑니다. 세 번째에는 죽인다는 협박 대신에 "이번에도 성공하면 아내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작은 남자는 다시 나타나서 소녀가 왕비가 된 후 첫 아이를 낳으면 자신에게 준다고 약속을 하면 돕겠다고 합니다. 소녀는 작은 남자와 약속을 한 후에 그의 도움을 받습니다.
방앗간 소녀는 그 뒤 왕비가 되어 잘생긴 사내아이를 낳게 됩니다. 아기가 태어나자 작은 남자는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다시 나타납니다. 왕비는 왕실 보물을 모두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합니다. 왕비의 비통한 울음에 결국 마음이 약해진 작은 남자는 사흘 말미를 주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그냥 물러나겠다고 합니다. 첫째 날, 왕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름을 대보았습니다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 뒤 왕비는 이름을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작은 남자의 이름을 맞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날 밤에 왕비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하녀를 시켜서 숲속에 들어가 그 작은 남자의 행방을 찾아보게 합니다. 마침내 하녀는 한밤중에 작은 남자가 숲속 불가에서 국자를 탄 채 혼자 흥에 겨워 "내 이름은 룸펠슈틸츠헨"이라고 외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셋째 날 왕비는 작은 남자에게 하녀가 가르쳐 준 이름을 말하고, 화가 난 룸펠슈틸츠헨은 국자를 타고 창밖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 후,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러한 줄거리를 지닌 젤린스키의 《룸펠슈틸츠헨》은 이야기가 독특하고 재미있지만, 서술의 불연속성 내지 불확정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방앗간 주인은 무엇 때문에 자신 딸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거짓말을 한 것일까? 임금은 왜 그렇게 황금에 집착한 것일까? 짚으로 황금 실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룸펠슈틸츠헨은 왜 소녀의 목걸이와 반지를 대가로 받으면서 물레질을 해 준 것일까? 또 그는 무엇 때문에 모든 보물을 마다하고 왕비의 아기를 갖길 원했을까? 룸펠슈틸츠헨이 자신의 이름을 수수께끼로 내 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왕비는 탐욕스러운 임금과 결혼해서 행복할 수 있었을까? 등등. 이 이야기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불확정성의 틈새’가 아주 많이 존재한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고 구전되어 온 대부분의 옛이야기는 서술이 동화나 소설처럼 개연성 있게 펼쳐지지 않는다. 그 개연성의 결핍은 언뜻 보기에는 단점 같지만 기실 옛이야기의 매력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불확정성의 틈새’는 독자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 나갈 빈 공간이다. 구전설화를 다시쓴 작가들은 그 틈새를 메워 이야기를 좀 더 개연성 있게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틈새를 어설프게 메웠다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제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발터 벤야민은 독자가 이야기를 기억하게 하려면 “심리적인 분석을 배제한 간결함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이야기꾼이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설명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청중들은 더욱 이야기에 이끌리게 되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에 녹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서구 학자들은 그 ‘불확정성의 틈새’를 당대의 사회적 상황과 연관 지어 메우려 하였다. 마리아 타타르는 방앗간 주인이 임금에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을 그림 형제가 살던 시대농민들의 궁핍한 현실과 연계지어 해석한다. 당시에는 가난한 농민이 딸을 부양할 의무에서 벗어나려면 결혼을 시켜야 했고, 결혼을 시키려면 지참금을 주어야 했는데 방앗간 주인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타타르는 방앗간 주인은 적어도 딸이 물레질을 잘한다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풀이한다. 또 잭 자이퍼스는 대부분의 옛이야기에는 ‘실 잣는 사람’이 보통 아름다운 여자로 되어 있는데 《룸펠슈틸츠헨》에는 못생긴 남자가 등장한 것에 주목한다. 그는 이것을 서구에서 18세기 후반 제니 방적기가 발명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더는 물레질을 예전처럼 소중한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링 페처와 같은 학자는 <룸펠슈틸츠헨>이 중상주의 시대를 다루는 이야기라고 보면서, “이 시대에는 왕들이 금과 은을 나라 안에 남아 넘치도록 많이 가지는 것에 열중하였고, 또 인위적으로 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엄청난 돈을 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해석을 참작할 경우, <룸펠슈틸츠헨>에 내재한 불확정성의 틈새는 어느 정도 메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견해가 곧 모범답안이 될 수는 없다. 페처는 “자신의 비인간적인 요구를 통해 꼬마 인간은 바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자본주의 정신의 야수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견해를 받아들 경우 “자본주의 정신의 야수”인 룸펠슈틸츠헨이 왕비가 제시한 왕국의 모든 보물을 마다하고 무엇 때문에 아기를 원했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룸펠슈틸츠헨>은 수많은 옛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많은 비합리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옛이야기는 꿈과 비슷한 구조를 지녀서 그 비밀을 탐색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 따라서 모든 것을 매끈하게 설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설명하기 힘든 틈새는 그냥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젤린스키의 《룸펠슈틸츠헨》이 지니는 독특한 매력은 그의 그림과 글이 보여주는 세계가 그림 형제의 최종본과 아주 다르다는 데 있다. 젤린스키는 그림 형제의 최종본이 지니는 여러 문제점을 수정보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인물들을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였다.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탐욕스러운 임금은 추악한 외모를 지닌 인물로 마녀나 룸펠슈틸츠헨과 같은 존재는 두렵고 사악한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젤린스키는 이러한 도식성을 거부한다. 황금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임금은 옛날 동화 속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처럼 잘 생겼고, 룸펠슈틸츠헨은 공포감을 유발하는 악마라기보다는 독자의 웃음과 연민을 유발시키는 독특한 요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밤새워서 짚을 황금 실로 뽑아내느라고 고생한 탓에 작은 몸이 더욱 쪼그라들고 초췌한 얼굴이 더욱 해쓱해진 룸펠슈틸츠헨의 모습을 보노라면 독자는 일종의 연민을 느끼면서 화가의 해학에 미소 짓게 된다.
특히 젤린스키는 대단원의 화소를 눈에 띄게 바꾸었다. 왕비의 특명을 받은 심부름꾼이 그림 형제의 최종본에서는 남자 하인으로 되어 있는데 젤린스키의 이야기에서는 왕비가 가장 아끼는 시녀로 되어 있다. 또한 그림 형제의 최종본에서 룸펠슈틸츠헨은 자신의 이름이 밝혀지자 화가 나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두 동강이로 가르고 죽는데, 젤린스키의 이야기에서는 국자를 타고 창밖으로 사라진다. 젤린스키가 이야기를 이러한 방식으로 다시 쓴 것은 구전설화의 전통을 살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이야기》를 출간하기 전인 1810년에 그림 형제는 구전설화에 충실한《룸펜슈튄츠헨》 (Rumpenstünzchen) 이란 이야기를 발표한 적이 있다.
젤린스키가 이렇게 구전설화의 화소를 되살린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여성주의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력자가 여성이 아니라 숲속에서 우연히 룸펠슈틸츠헨의 노래를 들은 왕 또는 왕의 신하로 되어 있는 판본들이 보이는 가부장적인 시각이 젤린스키의 이야기에서는 많이 완화되어 있다. 젤린스키의 이야기는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도 그림형제 판본보다는 여러모로 낫다. 룸펠슈틸츠헨은 죽을 위기에 처한 소녀를 대신해서 왕이 요구하는 그 황당무계한 작업을 완수했고 나중에 아이를 요구한 것도 자신의 노동 대가로 받기로 약속한 것을 원한 것이기 때문에 사악한 인물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그림형제는 최종본에서 룸펠슈틸츠헨이 자신의 몸을 두 동강이로 가르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었는데, 이는 불필요하게 잔혹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이야기》는 판본이 일곱 차례 재출간되면서 빌헬름 그림에 의해서 여러 화소가 적지 않게 첨삭되었다. 개작이 거듭될수록 점점 성적인 요소는 배제됐지만 선과 악의 이분법은 더욱 뚜렷해졌다. 심리학자들은 악인이 잔혹하게 응징당하는 옛이야기의 설정이 오히려 교육적으로 좋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왕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데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룸펠슈틸츠헨이 참담하게 자살하는 것으로는 되어 있는 빌헬름 그림의 개작은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젤린스키는 《라푼첼》과《룸펠슈틸츠헨》을 다시쓰면서 서구 옛이야기의 전통을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게 되살리려고 애썼다. 우리나라에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서구 옛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림 형제의 최종판본과 페로의 요정담 등이다. 우리는 이들 판본에 서구 옛이야기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들 작가의 전래동화에는 작가 개개인의 취향과 당대의 사회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구전설화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림 형제의 최종판본이 지닌 문제점을 인식한 젤린스키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림 형제의 여러 판본을 살펴보고 그 이전의 설화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 편의 옛이야기를 재화하는 데 있어서 젤린스키가 쏟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노력은 옛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