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레비츠의 ⟪보물⟫: 내 안의 보물을 찾아 떠난 여행

by 김환희



그림책은 매력적인 예술장르이다.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생생하게 작가와 교감을 이룬다는 느낌 내지 환상을 갖게 해준다. 정승각씨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아카바 수에키치의 ⟪수호의 하얀말⟫, 숀탠의 ⟪빨간나무⟫ 등의 그림책을 읽으면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면서 쏟은 땀과 고독과 열정과 소망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런 그림책을 발견하면 그림책 저편에 있는 작가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고 영혼이 고양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어린이도 좋아 할까? 마쓰이 다다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른 자신이 먼저 공감하고 감동한 그림책을 어린이에게 읽어 주면 신통하게도 듣는 어린이 역시 그 그림책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아마도 읽어 주는 사람의 마음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어 어린이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겠지요”(⟪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24-25). 나는 마쓰이 다다시의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어린이가 모두 좋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공감과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채 읽어주는 책에 어린이가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유리 슐레비츠(Uri Shulevitz)의 ⟪보물⟫(The Treasure)은 어른과 어린이가 모두 좋아할 수 있는 책이다. 칼데콧 명예(Caldecott Honor) 상을 받은 ⟪보물⟫(최순희 옮김, 시공주니어, 2006)은 줄거리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성 때문에 오히려 독자가 한 편의 시를 읽듯이 글과 그림을 꼼꼼히 반추하면서 읽게 된다. 슐레비츠의 ⟪눈⟫, ⟪새벽⟫, ⟪비오는 날⟫과 같은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보물⟫은 간결한 글과 차분한 그림이 어우러져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 내지 명상시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보물⟫의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이삭은 너무도 가난해서 저녁을 거른 채 잠이 들 때가 많았는데, 어느 날 밤 이상한 꿈을 꾼다. 꿈에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에게 수도(首都)로 가서 궁궐 옆의 다리 밑에 있는 보물을 찾으라고 말한다. 처음 그 꿈을 꾸었을 때는 이삭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연달아 세 번 똑같은 꿈을 꾸자 이삭은 그 보물을 찾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깊은 숲과 높은 산을 지나는 힘든 여정 끝에 그는 궁궐 근처에 도착하지만 왕실 경비대가 지키고 있어서 감히 다리 밑에 있는 보물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삭은 다리 근처에서 며칠을 서성대다가 이를 수상히 여긴 경비대장의 눈에 띄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삭의 꿈 이야기를 들은 경비대장은 말한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을 봤나! 그깟 꿈을 믿고 신발창이 다 닳도록 걸어오다니! 이봐요, 나도 언젠가 꿈을 꿨는데 그 꿈대로라면 나도 지금 당장 당신이 떠나왔다는 그 마을로 가 이삭이라는 사람 집 아궁이 밑에서 보물을 찾아봐야 할 거요.”라고. 높은 산과 깊은 숲을 지나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 온 이삭은 집에 있는 아궁이 밑을 파서 보물을 발견한다.¹


이와 같이 ⟪보물⟫은 매우 단순한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줄거리가 이상스럽게도 내 마음을 파고 들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이야기에서 보물은 물질적인 보물을 뜻하기 보다는 정신적인 보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집의 보물이란 내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능력, 가족 간의 사랑, 민족의 문화적 자산, 또는 그 외의 여러 다른 것으로 독자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그 보물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란 나라의 문화적 유산 내지 뿌리로 느껴진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걸어 온 나의 인생여정과 이삭의 여행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자신의 집에 있는 보물의 존재를 깨닫기 위해서 이삭은 계시처럼 다가온 꿈속의 목소리를 믿고 먼 곳으로 외롭고 고단한 여행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낯선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내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은 낯선 나라에서 살면서 낯선 언어로 이야기하는 외국인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였다. 그들이 자국의 문화적 유산에 쏟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타문화를 향한 열린 마음과 관심은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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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읽다보면 작가 유리 슐레비츠가 그림책 속에 그 자신의 삶과 예술적 여정을 담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보물⟫이 펼쳐 보여주는 그림들--가난하고 고독한 다락방에서 책과 배고픔을 벗 삼아 사는 이삭의 초췌한 모습, 계시처럼 다가 온 꿈만을 믿고 숲과 산을 가로 질러 홀로 감행한 길고 긴 고달픈 순례, 큰 도시에서의 방황, 현실주의자와의 대화를 통해 새삼 발견하게 된 자신의 집에 존재하는 보물 등—은 슐레비츠의 인생 행로와 예술적 편력을 연상시킨다. 193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슐레비츠는 네 살이 되던 해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나치스가 바르샤바를 점령하는 바람에 가족이 유럽의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다. 이러한 유랑생활로 인해 어린 시절 슐레비츠는 전쟁의 폭력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 체험은 그의 예술적 감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바르샤바, 파리, 텔아비브등의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22세에 뉴욕으로 이주한 슐레비츠는 브루클린 뮤지엄 미술 학교에 입학해서 예술적인 재능을 꽃피웠다. 슐레비츠가 ⟪보물⟫을 출간해서 칼데콧 명예 상을 받은 해가 1978년이니깐 그의 나이 만 43세가 다 되어서이다.


폴란드계 유태인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슐레비츠가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미국 땅에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아마도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신의 문화적 유산이 지닌 가치일 것이다. 슐레비츠는 오랜 방황 끝에 조상들이 남긴 단순하고 짧은 옛이야기에서 삶의 지혜와 신앙의 소중함을 발견한 것이리라. ⟪보물⟫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때때로 우리는 가까이 있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 멀리까지 여행을 할 필요가 있다.



¹내가 글을 쓸 당시에는 그 어떤 국내 출판사도 <보물>을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직접 번역해서 길게 소개하였지만, 2006년 10월에 최순희 님의 번역서가 출간된 바 있기에, 이번에 묵은 글을 손질하면서 줄거리만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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