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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Nov 30. 2021

6. 전북민담 ⟨금강산의 괴호⟩, 식인귀 여우의 다중성

잃어버린 신성성과 아킬레스건 효심

⟪임석재전집 7 한국구전설화⟫에 수록된, 1927년 전북에서 채록된 ⟨금강산의 괴호⟩(金剛山의 怪狐)는 서사가 짧지만 짜임새가 비교적 탄탄한 편이어서, 어린이책 작가들이 주목한 이야기이다 [1]. 서정오와 공진하가 ⟨금강산의 괴호⟩를 ⟨금강산 구미호⟩란 제목의 동화로 다시써서 각각 이야기책과 그림책에 수록한 바 있다. 서정오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현암사 1996)라는 이야기책에, 공진하는 한국몬테소리에 출간한 전집류 그림책 ⟪금강산 구미호⟫(2007, 고광삼 그림)에 ⟨금강산의 괴호⟩를 다시쓴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어린이책 작가들이 손질한 판본으로는 전북 민담의 서사를 온전하게 알 수 없어서 ⟨금강산의 괴호⟩의 줄거리를 내 나름대로 간추려서 소개하기로 한다.


옛적에 어떤 초립동이가 처갓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냇물을 건너다가 자라 한 마리를 잡았다.  옆에 있던 사람과 함께 잡았는데, 그 사람이 자라를 둘로 나누자고  칼을 빼어 들었다. 초립동이는 그 사람에게 자신이 돈을 줄 터이니 자라를 나누지 말고 자신에게 달라고 말했다. 초립동이가 자라를 들고 한참 가는데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초립이 날아갔다. 그는 자라 때문에 초립을 잡으러 쫓아갈 수 없어서 자라를 도로 냇물 속에 넣었다.  어디서 소리개가 나타나서 초립을 채가서 한참을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강원도 금강산까지 와버렸다.


초립을 찾을 수 없었던 초립동이는 이왕 금강산까지 온 김에 구경이나 해야겠다고 사방을 돌아다녔다. 다니다 보니 집이 한 채 있어서 그곳에 갔더니 허연 영감이 나왔다. 노인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금강산이 하도 좋다길래 구경 왔으니 금강산 구경을 시켜달라고 말했다. 노인은 구경할 것 없이 그냥 돌아가라고 말하면서,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자기 집에서 자고 떠나라고 말했다. 초립동이가 금강산 구경을 해야겠다면서 그곳을 떠나려 하니깐, 노인이 동삼을 주면서 조금 떼서 먹으면 힘도 세지고 배도 부를 거라고 말했다.


초립동이가 노인 집을 나와서 한참을 갔더니 첩첩산중에 불빛이 번쩍번쩍 비치는 집이 한 채 보였다. 그 집으로 갔더니, 또 다른 노인이 나오면서 저쪽 노인 집에 들렀냐고 물었다. 초립동이는 들렸다고 대답하면서 그 노인에게 금강산 구경을 하게 길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는 말까지 했다. 이 노인도 구경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말했다. 초립동이가 왜 그냥 가라고 하냐고 물었더니, 노인은 금강산에 몹쓸 괴물이 있어서 잘못하면 죽는다고 했다. 초립동이가 유명한 금강산까지 왔는데 죽을 때 죽더라도 구경은 해야겠다고 하니깐, 노인이 “여기서 한참 가면 잘 지은 기와집이 있는데 기와집에는 천하일색이 베를 짜고 있을 터인데 그 여자는 사람이 아니고 천년 묵은 여우라서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초립동이는 그날 밤 노인네 집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금강산 구경하러 떠났다. 산속을 들어갔더니 어떤 기와집에서 예쁜 젊은 색시가 혼자서 베를 짜고 있었다. 초립동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베만 짜니까, 초립동이가 답답해서 말했다. “아, 사람이 왔는데도 아는 체도 않고 베만 짜고 있소. 그런 무례가 어딨소.” 색시가 베틀에서 내려오더니 시퍼런 칼을 들고 나오면서 “아, 잘 됐다. 내가 배가 고프던 참인데 네가 왔구나. 너를 잡아먹어야겠다.”하면서 달려들었더. 초립동이는 죽을 고비를 넘기려고, “네가 날 잡아먹으려면 잡아먹으렴. 하지만 내가 어디서 죽었는지 부모님이 알아야 할 게 아니야. 이제 나는 내가 어디서 죽는다는 것을 부모님한테 알리고 올 테니 며칠만 말미를 다오.”하고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라. 그런데 네가 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너네 집 식구까지 다 잡아먹고 씨를 말리겠다. 그런 줄 알고 가거라.”하고 말했다.


초립동이는 각시 집에서 나와서 어젯밤에 머물렀던 노인 집으로 왔다. 노인이 초립동이의 사연을 다 듣고, “내 말을 안 듣더니 그런 화를 당했구나. 그렇지만 네가 남한테 좋은 일 한 것이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  너는 무슨 좋은 일을 남한테 한 것이 없느냐?”하고 물었다. 그런 일 한 적이 없다고 하니깐, 노인은 “사람한테 좋은 일 한 것이 없어도 무슨 짐승이나 물고기 같은 것에도 좋은 일 한 것이 없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이 말을 들으니 자라를 물속에 넣어서 살려 준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자라를 살려 준 일이 있다고 하니깐, 노인은 “그럼 됐다.”하면서 무슨 쪽지를 한 장 써서 물속에다 던졌다. 그 쪽지는 자라한테 갔다.


저번에 초립동이가 살려 준 자라는 용왕의 딸인데 인간 세상 구경을 나왔다가 잡혀서 하마터면 죽게 되었는데 초립동이가 도로 물속에 넣어 주어서 살았다.  쪽지를 받은 자라는 자기를 살려준 은인인 초립동이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라는  초립동이를 살려야겠다고 조화를 부려서 물속에 있던 고기를 모두 군사로 만들어가지고 여우를 치러 왔다. 그러나 여우의 조화가 더 용해서 물고기 군사가 모두 죽어버렸다. 용왕의 딸인 자라는 하느님한테 빌어서 여우를 벼락 쳐서 죽이게 했다. 초립동이는 금강산에 있는 천년 묵은 여우한테 죽게 되었다가 두 노인과 자라 때문에 살 수 있었다. 그 두 노인은 금강산 산신령이라고 한다.


금강산의 괴호  글에서 살펴본 손진태의 여산신과 용왕 전반적인 서사는 유사하지만, 디테일에서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첫째, 금강산의 괴호 등장하는 ‘천년 묵은 여우 여산신과 식인귀라는 양면적인 특성을 지닌다.  ‘천년 묵은 여우 남산신이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초자연적이고 마성적인 힘을 지녔지만, 여산신이 아니라 식인귀로 설정되었다. 깊은 산속에 있는 멋진 기와집에서 천하일색의 모습으로 베틀 앞에 앉아서 베를 짜는 일에 몰두하던 괴호가 낯선 남자가 말을 걸자 갑자기 시퍼런 칼을  식인귀로 돌변한다.


이러한 어색한 설정은 아마도 산신 신앙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듯싶다. 서왕모, 아마테라스, 선도산 신모를 연상시키는 ‘직녀-여산신’의 속성을 지닌 구미호가 식인귀 괴물로 전락한 것은 상고 시대에 여산신이었던 구미호가 가부장제 사회를 거치면서 본래의 신성성과 상서로움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산신과 용왕⟩에서는 과거의 산신과 현재의 산신이 모두 여성이고, ⟨금강산의 괴호⟩에 등장하는 산신들은 모두 남성이다. 산신의 젠더로 미루어 짐작할 때, 전자가 후자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전승된 이야기일 것 같다. 산신 신앙을 연구한 손진태에 따르면 [2], 고대 산신의 성은 본래 여성이었는데, 부권 사상이 발달하면서 부신(夫神)이 등장했다가, 결국 남신이 주신이 되고 여신은 산신의 처로 지위가 하락하였다고 한다.


둘째, 손진태 채록본과 임석재 채록본의 또 다른 차이점은 목숨을 잃을 뻔한 주인공이 생각해낸 계책에서 찾을 수 있다. ⟨여산신과 용왕⟩에서 주인공은 여산신을 무찌를 수 있는 계책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금강산의 괴호⟩에서 주인공은 부모에게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리고 싶다는 효심을 표현한다.


그는 도저히 그녀의 술책에 당할 수가 없다고 낙담하고 있었지만 그때 그는 용왕이 한 말을 기억해서 “나에게 7일간의 유예를 주시면 그간 나는 당신을 이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내겠소.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당신 뜻을 받아들이겠소.”라고 말했다. (⟨여산신과 용왕⟩, 최인학 번역 ⟪조선 설화집⟫ 127)


이렇게 죽을 고비에 빠지게 되니께 최립됭이넌 말힜다. “니가 나럴 잡어먹을라먼 잡어먹으라마는 내가 어디서 죽었넌지 父母가 알어야 헐 게 아니냐. 이제 나넌 내가 어디서 죽넌다넌 것얼 父母님한티 알리고 올 팅께 메칠만 말미럴 도라.”(⟨金剛山의 怪狐⟩ ⟪임석재전집 7⟫ 205)


 ⟨금강산의 괴호⟩에서 여우는 용왕국의 모든 군사를 이길 정도로 강력한 힘과 신묘한 술책을 지닌 여산신에 견줄 수 있는 인물이지만, 효도를 내세우는 남자에게는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거제에서 채록된 ⟨금강산의 구미호⟩에서도 [3], 주인공은 죽기 전에 부모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둘러대서 구미호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강원도 삼척에는 ‘천년 묵은 여우’가 변신한 ‘서구할미’(서구암)라는 사악한 여산신에 관한 전설이 전승되는데, 서구할미는 강원도의 이름난 효자 최진후가 나타나자 꼼짝 못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4]. 마성과 잔혹성을 지닌 구미호에게 유교의 최고 덕목인 효는 일종의 아킬레스 건인 것 같다.


셋째, ⟨금강산의 괴호⟩에서 주인공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산신령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산신령이 내건 선결 조건 에는 생명 존중과 인과응보의 사상이 담겨 있다. 산신령은 초립동이에게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전에 인간이나 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선행을 한 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넷째, 구미호와 맞대결을 펼치는 인물이 용왕이 아니라 ‘용왕의 딸’로 설정되었다. ⟨금강산의 괴호⟩ 속에서 여우와 용왕의 딸이 펼치는 전투는 용왕과 여산신이 맞대결을 펼치는 전투만큼 스케일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두 여성 캐릭터의 싸움은 남성 내면에 자리 잡은 선과 악의 아니마(anima)가 힘겨루기를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어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이 아닐까 싶다. 용왕의 딸이 자신의 힘으로 ‘천년 묵은 여우’를 이기지 못하고 천신의 도움을 받아서 퇴치한다는 데에서 가부장제 가치관이 느껴져 아쉽기는 하지만, '여전사로 변한 용왕의 딸'이라는 모티프 자체는 흥미롭다.


이러한 흥미로운 모티프들이 어린이책에는 온전히 살아있지 않다. ⟨금강산의 괴호⟩ 를 ⟨금강산 구미호⟩로 개작한 서정오는 식인귀 구미호의 잔혹성을 크게 부각해서 아이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남성 산신령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고쳐 썼다. 또한, 죽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부모에게 소식을 알려야 한다고 둘러대는 것이 아니라 몰래 달아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개작하였다. 특히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대단원에서 ‘용왕의 딸’이라는 여성 조력자를 ‘용왕의 아들’로 바꾸고, 금강산 여우에 내재된 ‘마성을 지닌 여산신’의 흔적을 거의 없애버린 것이다. ⟨금강산의 괴호⟩에서 여우는 금강산 산신령들도 싸울 생각을 못하는 신이한 존재로서 용왕국의 모든 군사를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반면에, 서정오 본에서 구미호는 산신령과 싸우다가 용왕 아들이 건네 준 칼에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벼락 맞아 죽는 무기력한 괴물이다. 한국몬테소리가 제작한 그림책 ⟪금강산 구미호⟫의 경우, 글을 쓴 공진하는 ⟨금강산의 괴호⟩의 디테일은 손질했어도 전체적인 서사를 크게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글보다 그림이 더 중요한 그림책에서, 그림이 전반적으로 산만한 데다, 천변만화 (千變萬化)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구미호의 변신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고, 용왕국의 여전사 ‘용왕의 딸’이 요조숙녀로 그려져서, 민담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1] ⟪임석재전집7 한국구전설화: 전북민담 편1⟫, 평민사, 2003, 203~206면

[2] ⟨조선 고대 산신의 성에 취하야⟩, ⟪진단학보⟫ 1934, 159면.

[3] ⟪임석재전집10 한국구전설화: 경상남도 편 1⟫, 평민사, 1996, 159면.

[4] ⟨서구암과 최진후⟩, ⟪한국구비문학대계 2-3⟫, 730~7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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