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신부⟫는 유대 설화 ⟨손가락⟩에서 ‘시체 신부’ 모티프를 빌려왔지만, 유대 문화를 담고 있지는 않다. 조 랜프트가 언급한 옛이야기에는 ⟨손가락⟩에는 없는 저승 여행이라는 모티프가 들어 있다. 랜프트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시체 신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 신부를 지상에 남겨둔 채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팀 버튼은 조 랜프트가 들려준 옛이야기가 어떤 특정한 나라에서 전승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1] 팀 버튼이 그렇게 기억한 것은 랜프트가 들려준 이야기가 둘 이상의 설화에서 모티프를 빌려와서 재구성한 이야기여서 일지 모른다. 랜프트가 들려주었던 옛이야기가 유대설화이든 아니든, ⟪유령신부⟫가 보여주는 저승 세계는 구약 성서 속의 저승인 스올(Sheol)과는 아주 다르다.
구약 성서는 스올을 어둡고 적막한 지하 공간, 이승의 음울하고 창백한 그림자와 같은 곳으로 묘사한다.[2] 스올은 하나님이 부재하는 곳으로서, 그곳에 머무는 죽은 자들은 한 줌의 흙, 티끌과 같은 존재이다. 이광진에 따르면, “구약에 나오는 스올에서의 죽은 자들의 형편은 긍정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일종의 비생명의 상태”이다.[3]
이러한 스올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유령신부⟫가 보여주는 저승 세계이다. 빅터가 끌려 간 저승은 이승보다 훨씬 밝고 유쾌한 공간으로서, 이승이 저승의 그림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승에서 사는 인간은 우울한 얼굴로 침체된 삶을 살아가고, 저승에서 죽은 지 오래되어서 해골만 남게 된 망자들은 춤과 노래를 즐기면서 지낸다. 갓 죽은 망자도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기는커녕 술을 마시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팀 버튼은 어느 인터뷰에서 사후세계를 밝고 유쾌하게 묘사한 것에 대해서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멕시코 축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4]. 죽음을 어둡게 바라보는 청교도 정신이 팽배한 미국 소도시의 주택가에서 자란 팀 버튼은 성인이 되어 멕시코 근방에 살면서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체험하였다. 팀 버튼은 ‘죽은 자들의 날’ 축제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죽음을 어둡고 음산 것이 아니라 유머, 음악, 춤이 넘치는 삶의 향연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인터뷰가 김현우가 번역한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에도 수록되어 있다[5].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버뱅크에서 자라면서 생긴 것 같네요. 당시 버뱅크는 교외 주택 지역 판 (살아있는 시체들의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늘 괴물 영화를 좋아했고, 거기에 매혹되었는데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어두운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화에서자랐죠. 멕시코와가까운 곳에서 살기도 했는데, 거기서 죽은 자들을 위한 날 (멕시코에서는 매년 11월 2일을 죽은 자들을 위한 날로 정해 가족이나 지인들의 묘를 찾아가 그들을 기념하고 있다)에 해골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걸 보기도 했죠. 거기에는 유머나 음악, 춤 그리고 삶에 대한 축복이 있었어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런 것이 모든 일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에서 영향을 받은 거죠. 제가 자랐던 어둡고 침묵만 흐르는, 그런 환경에서만 영향을 받지는 않았죠.
또한, 팀 버튼은 ‘죽은 자들의 날’ 축제 때 해골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면서, 해골 인형을 몇 개 사서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인형들을 몇 개 가지고 있었는데요. 옷에 붙이고 다니면 늘 멋있게 보였죠. 그런 캐릭터들은 정말 유머와 장난기가 넘치는데, 제 생각엔, 거기서 제가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6].
픽사 에니메이션 ⟪코코⟫가 잘 형상화했듯이, 멕시코 인들에게 ‘죽은 자들의 날’은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축제의 날이다. ⟪우리는 빠창게로!⟫(지식산업사 2010)라는 책에서 김세건은 ‘죽은 자들의 날’에 멕시코에서 펼쳐지는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사자(死者)의 날(los muertos)이 되면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전국 중심가의 공원, 관공서, 건물 등에는 지역적 특색이 담긴 다양한 차림의 해골 인간 조형물과 해골・뼈 모양의 사탕, 빵, 초 등으로 제단이 꾸며진다.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도 해골 복장을 하고 가면과 액세서리 등으로 치장하며 죽은 사람과 함께한다. 사자의 날처럼 죽음의 가치를 인식하고 긍정하는 축제도 드물 것이다. (226면)
또한, 김기현은 “멕시코 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오히려 명랑하고 익살스러운 것이다. 죽음을 야유하는 속담과 시가 많은 것도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예일 것이고, 이 설탕으로 만들어진 칼라베라와 화려하게 제단을 장식하는 형형색색의 종이들도, 그리고 아래의 작품들도 죽음에 대한 멕시코 인들의 이러한 생각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7] 칼라베라(calavera)는 ‘죽은 자들의 날’에 제단에 올리는 설탕으로 만든 해골 모양의 장식을 뜻하는 데, 멕시코 인의 생사관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칼라베라는 죽음과 고통 등 인생의 과정에서 오는 자연적 현상에 대한 멕시코 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고대의 멕시코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믿었다. 그래서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8]
팀 버튼은 유대 설화에서 서사의 얼개를 빌려왔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은 유대 문화가 아니라 멕시코 문화에 근접해 있다. 팀 버튼이 시체신부를 인간 세계에서 추방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산 자와 소통할 수 있는 섬세한 감정을 지닌 인물로 설정한 것, 이승과 저승의 경계,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곳으로 설정한 것 등에서 멕시코 문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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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은 멕시코 판화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가 그렸다.
[1] Salisbury(2006), Mark, ed.. Burton on Burton. London: Faber and Faber, 2006, 247~248면.
[2] Raphael Patai and Haya Bar-Itzhak, Encyclopedia of Jewish Folklore and traditions, New York: M.E.Sharpe, 2013, 12.
[3] 이광진,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죽은 자들의 세계와 사후의 생에 대한 기대(1)⟩, ⟪신학과 현장⟫ 15집, 2005, 107면.
[4] Woods, Paul A, ed. Tim Burton: A Children’s Garden of Nightmares. London: Plexus, 2007, 184면.
[5], [6]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크리스티안 프라가, 김현우 옮김, 마음산책 2007, 315
[7], [8] 김기현, ⟨이달의 세계축제 :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 ⟪국제지역정보⟫ 100호, 11/2001, 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