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신부⟫의 저본이 된 설화를 찾으면서 옛이야기 숲을 헤매다 보니 12세기 영국 역사서 속의 ⟨팔룸부스⟩ 사제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2011년에 논문을 발표한 이후, 유대 설화에 관심이 생겨서 유대 설화집을 수집해서 내 나름대로 공부해 보았다. 그러한 공부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유령신부⟫의 저본으로 꼽히는 ⟨손가락⟩ 유형의 이야기들은 유대 고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손가락⟩은 유대 이야기꾼이 중세 유럽에서 널리 전승되었던 ⟨비너스 반지⟩ 유형에 유대 종교와 문화의 옷을 입힌 이야기였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유대인들은 이주 지역에서 전승된 외국 설화에 유대 종교와 문화의 옷을 입혀서 그 설화를 유대화하는 데 능숙하였다. ⟨손가락⟩ 유형의 설화도 유대인들이 외국 설화를 유대화(judaization)한 이야기이다. 16세기 동부 유럽과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유대인 공동체는 12세기 영국 역사서와 13세기 유럽 성모기적담에 수록된 ‘비너스 반지’ 유형의 이야기를 유대화해서 랍비 전설과 민담으로 전승하였다. 괴물 신부는 설화의 전승 지역과 시기가 달라짐에 따라서 ‘비너스-성모 마리아-악령-시체신부’로 다양하게 그 모습을 바꾸다가, 마침내 ‘유령신부’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유령신부⟫는 유대 설화에서 서사를 빌려왔지만, 그 어떤 특정 문화권에 넣을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이다. 그 속에는 유대 설화, ⟪프랑켄슈타인⟫, 괴물 영화, 유럽 예술과 설화, 멕시코 축제 등 다양한 예술과 문화에서 끌어온 모티프가 결합되어 있다. 이질적인 세계관을 지닌 여러 문화를 융합하다 보면, 유기적인 통합성이 결여된 어정쩡한 이야기를 만들기 쉽다. 하지만 ⟪유령신부⟫는 서사의 짜임새가 탄탄하고, 팀 버튼의 세계관과 예술관이 진정성 있게 표현되었다.
팀 버튼이 관객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자기가 체험한 삶의 아픔과 슬픔, 꿈과 열정을 이야기 속에 담아서가 아닐까 싶다. 발터 베야민은 ⟨이야기꾼: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관한 고찰⟩에서 진정한 이야기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의 재능은 자신의 삶, 자신의 품위, 즉 자신의 전 생애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야기꾼은 자기 삶의 심지를 조용히 타오르는 이야기의 불꽃으로 완전히 태울 수 있는 사람이다.
팀 버튼의 괴물 영화에서 그러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부패하기 시작한 신체를 지닌 에밀리, 기형적인 외모를 지닌 가위손 에드워드, 짜집기 천으로 만들어진 인형 샐리 따위의 괴물 캐릭터가 생명력과 인간미를 지닌 인물로 다가오는 것은 이야기 속에 자기 삶의 심지를 태운 창작자의 진정성과 열정이 느껴져서 일 것이다. 시나리오 작법의 대가로 알려진 로버트 맥기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
일반적으로 보아 위대한 작가들은 절충적이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작가들 개개인은 한 가지의 아이디어, 자신의 정열을 불태울 수 있는 하나의 주제, 평생을 통해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변주에 몰두한다.
팀 버튼의 많은 영화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운 아웃사이더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팀 버튼이 자기 서사로 삼은 ‘미녀와 야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이야기의 다양한 변주이다.
스토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는 오늘날 한국과 외국의 설화를 새롭게 고쳐 쓰는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디지털 시대에 다양한 문화권의 좋은 옛이야기를 전자책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통해서 설화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옛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끌어온 작품들이 최근 그림책, 애니메이션, 영화, 유튜브와 같은 다매체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과 “자기 삶의 심지를 조용히 타오르는 이야기의 불꽃으로 완전히 태울 수 있는” 이야기꾼을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많은 작가가 옛이야기를 황금알을 낳는 암탉이나 쓰임새가 있는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고, 그 안에 담긴 옛사람들의 삶과 지혜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지 않는 듯싶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옛이야기는 옛사람들의 희로애락의 감정과 삶이 담겨 있는 대중예술이다. 옛사람들은 이야기를 전할 때 상징과 비유를 통해 자기 삶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은밀하게 청중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꾼의 생각과 속말을 이해했던 청중은 이야기를 마음에 소중하게 담아두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이것이 수천 년 세월의 흐름을 견디고 살아남은 옛이야기 전승의 비의인데, 오늘날 우리는 그 본질을 잊고 있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연재를 중단했다가 다시 쓰곤 해서 이 주제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새 일 년이 넘었다. 그동안 내 브런치를 잊지 않고 방문해 준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서 앞으로는 조금 더 성실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유령신부⟫와의 긴 여행을 마무리한다.

[1] 로버트 맥기, 고영범・이승민 옮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황금가지, 2002, 1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