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수집가 Feb 22. 2017

미안하다 친구야

내면일기


방 청소하다가 편지를 발견했다.

'어 타자기로 친거네. 누가 보낸거지?'
궁금해하며 다음 장을 넘겼다.

YS다.


편지 내용은 남북 전쟁때 흑인 병사에 수첩에 적힌 글귀였다.


우리도 우리 삶에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게 살자


편지 말미에 내게 보낸 YS의 메시지다. 편지 쓴 날짜를 보니 중학생 때인데 예나 지금이나 참 조숙하네.

YS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책을 많이 읽었다.

이 문학소녀는 나한테 편지를 써줬고 지금까지도 때되면 카드를 보내주고 있다.


언젠가 YS가 편지지 2장 정도로 글을 써서 보내줬는데 내가 답장으로 달랑 3줄 적어서 보냈다가 엄청 욕먹은 적이 있다.

문학소녀와 다르게 나는 감성 무식자인데다가 무심한 인간이다. 그런 내가 쓴 편지는 "안녕. 나는 잘 지내. 너도 잘 지내" 이런 류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문학소녀는 얼마나 충격받았을까. 본인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YS의 화냄를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무시하지 않았고 그말 밖에 쓸 수 없었는데 왜 화가 난거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YS는 요즘 홍차에 빠져있다.

크리스마스때 갖고 있는 홍차를 마셔보라며 나눔해줬는데 얼마 전에는 홍차와 티코스터를 보내줬다. 티코스터는 내가 손뜨개 좋아한다고 엄마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라고 했다.


YS의 마음에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진다. 이제야 그 마음을 볼 수 있게되서 미안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무식자때문에 감성소녀가 얼마나 상처받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지금은 각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적당한 거리에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 언제나 나를 넣어줘서 아주 많이 고마운 마음이다.


유칼립투스 나무 한그루와 꽃다발들고 갈께.

올해 크리스마스는 카드랑 선물도 정성스럽게 준비할께.

미안하다. 친구야.








매거진의 이전글 중년의 힘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