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해는 없었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영화계는 한껏 들떠 있었을 것이다. 그 해에만 천만 영화가 5편이나 나왔다. 역대 최다였다. 《극한직업》이 관객 1,600만 명을 끌어모았고, 《어벤저스:엔드게임》이 1,400만에 육박하며 뒤를 이었다. 흥행 5위를 기록한 《기생충》마저 1,000만을 넘겼으니 대단한 기세였다.
2020년. 늘 그렇듯 해가 바뀌었을 뿐이었는데 악몽이 시작됐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며 2020년과 2021년 관객 수는 예년 대비 1/4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1,000만 영화는 언감생심, 500만을 넘긴 영화도 안 나왔다.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개봉 한 달을 맞은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은 현재 70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최대다. 상영시간 제한과 띄어앉기 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극장가는 다시 일말의 희망을 품어본다. 영화(映畵)에 다시 영화(榮華)가 올까.
그러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바뀌고 있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넷플릭스, 웨이브, 디즈니+ 같은 OTT를 구독해 TV나 모바일 기기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일찍이 1950년대 미국에서 TV가 대중화되면서 위기에 처했던 영화계는 1.85:1의 아카데미 비율에서 2.35:1의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스크린을 가로로 크게 늘여 TV와 차별화하면서 영화관에 와야 할 존재의 이유를 증명했다. 코로나와 OTT로 맞은 지금의 2차 위기에서 극장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가지 힌트가 있다. 극장업계 1위 CGV의 《스파이더맨:노웨이홈》 좌석판매율을 보자. 일반관, 4DX관, 스크린X관, 아이맥스관의 개봉 후 2주간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일반관보다 특수상영관의 좌석점유율이 높다. 일반상영관이 24.3%의 좌석판매율을 보였는데 스크린X관이 25.5%, 4DX관은 40.7%의 좌석판매율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큰 스크린(31m×22.4m)을 가진 상영관으로 영화팬들이 '용아맥'이란 별칭으로 부르는 아이맥스관은 43.9%로 가장 높은 좌석판매율을 보였다.
아이맥스나 돌비시네마, 수퍼플렉스G같은 상영관을 업계에서는 특수상영관 또는 기술특별관이라고 부른다. CGV는 '용아맥'(용산 아이맥스), 롯데시네마는 '수퍼플렉스G'(월드타워점), 메가박스는 '코돌비'(코엑스 돌비시네마)를 각각 자사를 대표하는 시그너처 특수상영관으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국구급 유명세를 누리는 곳이 바로 '용아맥'이라고 할 수 있다. 몰리는 쪽으로 몰린다. 이제는 뭔가 영화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없으면 점점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걸 망설이게 된다. 극장에 가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비용도 비싸다. OTT는 친구들과도 공유할 수 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으니 극장들이 영화적 경험을 충분히 줄 수 있는 특수상영관 확대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극장체인인 롯데시네마와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운용하는 롯데컬쳐웍스의 최병환 대표는 특수상영관 분야에서 먼저 치고 나갔던 CGV 대표 출신답게 지난달 부임하자마자 'S.I. TF(서비스 이노베이션 TF)'를 만들었다. 롯데시네마의 기존 특수상영관을 리브랜딩하고, MZ세대를 겨냥한 특수상영관과 서비스 등을 기획하는 TF다. 문제는 극장의 투자 비용이다. 하드웨어를 갖춰야 하는 장치산업이면서도 소프트웨어인 콘텐츠의 영향을 크게 받는 쇼비즈니스라 흥행 예측이 어렵다는 것도 도전이다.
그런데 마블 영화, 그중에서도 스파이더맨은 이른바 '찐팬'이 많은 영화다. (이른바 '삼파이더맨'이 다 나온 이 영화 보고 울었다는 관객이 많다) 영화가 스파이더맨이 아니었어도 지금처럼 7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을까? 콘텐츠가 부실한데 무조건 큰 상영관에서 한다고 관객들이 보러오지는 않는다. 《듄》처럼 아이맥스로 촬영해서 아이맥스관에서 관람해야 제대로 된 화면을 다 볼 수 있다거나(일반상영관에서는 잘린 화면을 봐야 한다), 《스파이더맨》처럼 확실한 팬층과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큰 상영관과 특수상영관 위주로 시설 투자를 하는 방향으로 극장 운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관람객 트렌드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최근에 일반관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템퍼관'(리클라이닝 침대좌석)같은 프리미엄관을 늘렸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오는지를 따져봐야죠. 모든 사람들이 특별관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할까요? 극장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CGV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말한다.
또 블록버스터, 큰 상영관, 특수상영관 위주로 영화산업이 재편된다면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작은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제작비를 많이 들인 큰 영화들이 코로나 시대에 대부분 개봉을 미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은 영화에 곧바로 스크린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또 영화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것도 독립영화에 유리한 상황도 아니다. 영화에 따라 적정한 크기의 스크린이 있고 극장은 관람객들이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보는 경험(습관)을 쌓도록 유도하면서 수익성을 추구하는 선순환구조를 짜야 하는데 독립영화의 관객동원력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만한 수준에는 미치기 힘들다는 게 극장측의 생각이다.
최근 CGV는 서울 종로에 있는 피카디리1958 극장의 7관과 8관을 개조해서 스포츠 클라이밍 시설로 바꿨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모색이라고 하나 극장업의 범주를 뛰어넘는 도전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극장업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롯데시네마가 이달 공개한 새 사업비전도 'MZ 세대 고객이 좋아하는 콘텐츠 경험 공간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Innovating Contents Experience'이다. 시네마든 필름이든 무비든 영화라는 말이 빠진 대신 콘텐츠라는 말이 들어갔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화면이 크거나 사운드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1998년에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단관이었던 대한극장이 마지막으로 70mm 필름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할 때 보러 간 적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제일 크다는 용아맥과 수퍼플렉스G가 620여 석 규모인데, 당시 대한극장은 2000석 규모였다. 그런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이었다. 극장에 들어서면서 느껴지는 군중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 영화 사이사이 터지는 관람객의 탄식과 웃음, 흐느낌, 이런 교류가 영화적 경험을 만들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실시간)댓글을 보면서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경험 하듯이 말이다. 댓글까지 다 읽어야 기사를 다 본 것 같다는 말처럼, 극장이라는 한 공간에서 같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보일 듯 말듯, 들릴 듯 말듯 한 반응을 보는 것 자체가 영화적 체험의 일부였다.
이제 이런 체험은 극장에서도 쉽지 않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동네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떠들썩한 극장 풍경이야말로 영화의 일부였을 것이다.(지금 그랬다가는 '관크'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OTT의 시대까지 다다른,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영화는, 그리고 극장은, 이제 우리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가. 우리가 극장에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극장에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