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의 법칙3-4

기억-발표

by Editor M

수사학의 5대 규범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각각 ‘기억’(memoria, memory)와 ‘발표’(pronuntiatio, delivery)이다. ‘발표’는 종종 ‘연기’로 번역되기도 한다. ‘기억’은 작성한 연설문을 외우는 것이다. 지금이야 텔레프롬프터나 파워포인트같은 기술의 도움으로 연설을 고스란히 외울 필요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머릿속에 연설문을 기억해서 넣어두고 연설할 때마다 꺼내야 했다.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가 연설할 때 메모지나 연설문을 보고 그대로 읽는다거나 텔레프롬프터에 크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왠지 미덥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기억술에 관한 책이 출판되고 팔리나 보다.


마지막으로 ‘발표’, ‘전달’ 또는 ‘연기’라 불리는 규범이다. 웅변이 바로 수사학의 마지막 단계인 '전달'에 해당한다. 최근 웅변은(단어 자체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 ~아닙니까, 여러분~!”하는 정치인들의 대중연설 클리셰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전달의 수사학’은 ‘PT(프리젠테이션)’란 친숙한 이름으로 바뀌어 여전히 우리와 가까이 있다. 이 분야의 마스터가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리바이스 501 청바지에 이세이 미야케의 터틀넥 스웨터, 뉴발란스 992 운동화를 신고 걸어 나와 인문학과 기술에 위트를 섞어 이야기하던 그가 청중의 반응에 따라, 혹은 청중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잠깐 멈췄다 다시 시작하곤 하던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그는 레토릭은 물론 발표에도 장인이었다. (지금의 애플 광고들도 그의 유산이라고 믿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달이란 목소리를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즉, 언제 목소리를 크게 하고, 언제 작게 하며, 언제 보통으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조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언제 어조를 날카롭게 하고, 언제 묵직하게 하며, 언제 보통으로 해야 하는지), 각각의 내용에 대해 어떤 운율을 사용해야 할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가 테모스테네스는 수사학(변론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전달, 둘째도 전달, 셋째도 전달이라고 하였다. 영화계로 비유해보자. 쓰는 사람(시나리오 작가)보다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사람, 즉 연기하는 사람(배우)이 훨씬 청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이런 현상은 2,400년 전에도 있었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연극계에서 연기자가 극작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닌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수사학이란 과연 무엇인지, 수사학의 정의와 역사, 기본 개념들을 통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우리가 말을 하는 한, 우리가 인간으로서 언어를 사용하는 한,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한, 우리의 삶에서 수사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아니, 인간은 걸어 다니는 레토릭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여러분은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레토릭의 세계로 떠날 준비가 되었다. 뉴스나 소셜미디어의 메시지, 광고 등을 접할 때 우리는 어떻게 그 메시지의 본질에 다가서야 할까. 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정보를 얻고, 주장(설득)과 의견을 접하고, 기쁨과 슬픔, 감동을 전달받는 뉴스/미디어의 세계와 레토릭의 관계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그런 뒤에, 뉴스에 쓰이는 수사학적 ‘표현(양식)’ 특히 은유와 클리셰 등이 어떻게 현실을 가리고,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진득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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