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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M Jul 11. 2022

영화 '속편의 경제학'

     영화관이 정상화된 올해,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보러 가셨습니까?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과 영화 관람 습관의 변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더라도 다시 나오기 힘들 거라던 ‘천만영화’가 뜻밖에 금방 다시 나타났습니다. 물론 “범죄도시2”의 흥행 돌풍은 반짝효과 내지 반사효과일 수도 있어서 '천만영화'의 출현이 극장의 완전한 부활인지는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합니다. 그래도 올해 들어 지금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이 약 4천8백만 명에 이르니 국민 한 명이 한 편 꼴로 본 셈입니다. 코로나가 대유행했던 2020년과 2021년의 한 해 관객이 약 6천만 명에 머물렀기 때문에 회복세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의 흥행 순위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범죄도시2, 닥터스트레인지2, 마녀2 등이 위쪽에 있길래 “올해는 흥행 영화 상위권에 유난히 속편이 많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요, 순위를 집계해보니 2022년 7월 둘째 주 현재까지 흥행 톱10 영화 중 9편이 속편(Sequel) 또는 리부트(Reboot)라 불리는 프랜차이즈 영화였습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는 5편, 2020년 “강철비2” 1편, 2021년에는 5편이었습니다) 1위는 "범죄도시2", 2위는 "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3위는 "탑건:매버릭", 4위는 "쥬라기월드:도미니언",5위는 "마녀2", 6위는 "해적:도깨비 깃발" 7위는 :브로커", 8위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9위는 "더 배트맨", 10위는 "씽2게더"입니다. 다음표를 보시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를 빼면 나머지 영화는 전부 이미 나왔던 영화의 ‘속편격’입니다. 좁은 의미의 속편은 원작 이후의 이야기인 ‘시퀄’을 말하지만 개념을 확장하면 프리퀄(전사), 시퀄, 리메이크, 리부트, 스핀오프까지 모두 한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프랜차이즈 영화입니다. 순위에 있는 영화 중에는 주인공과 줄거리가 1편과 거의 상관없는 “해적2”나 기존 배트맨 영화를 재해석한 “더 배트맨”은 ‘리부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영화는 경험재, 속편은 리스크 줄여줘

“영화흥행요인”이라는 책을 쓴 장병희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브랜드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영화의 속편을 바라봅니다. 성공한 인기 영화도 하나의 브랜드이고 속편은 이 브랜드를 확장한 상품이라는 거지요. 경제학적으로 영화는 경험재에 속합니다. 실제로 관람해보기 전까지는 영화가 나한테 얼마만큼의 효용과 만족을 줄지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영화 평점 사이트에 가면 “천 원도 아깝다”, “속았다”는 말이 무수히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경험재는 영화를 만드는 쪽이나 관객 모두에게 소위 ‘리스크’가 크지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백억 원을 들여 영화를 만들었는데 관객이 많이 들지 않으면 쫄딱 망하는 것이고, 관객 입장에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비싸진 관람료를 내고 극장에 갔는데 영화가 재미없으면 시간 낭비, 돈 낭비하는 겁니다. 


   “속편은 이런 위험을 줄여줍니다. 이미 성공한 영화, 즉 '브랜드 영화'를 제작하면 기존 관객들의 재관람 확률이 높아지죠. 속편은 투자자와 관객 모두에게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수단입니다.” 장 교수의 말입니다. 장 교수는 특히 최근에 속편이 봇물을 이루는 현상의 배경에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다고 봤습니다. 넷플릭스나 애플 등이 제작에 나서면서 영화 제작 편수가 늘었고 자연히 흥행 가능성은 더 떨어지는 상황이라 투자자들이 속편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뚜렷해졌다는 겁니다. 


   ‘영화의 브랜드 확장이 영화 흥행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박사 논문을 쓴 김헌 중부대 교수는 또 다른 측면에서 속편이 범람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속편은 효율적으로 이야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겁니다. 즉, 백지에서 시작해 시나리오를 쓰는 것 보다는 이미 인기를 얻은(브랜드가 된) 영화의 캐릭터나 이야기 얼개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게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죠. “범죄도시2”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 프랜차이즈 영화는 매번 주인공을 바꿔서 캐스팅할 필요가 없습니다. 히어로인 마석도 캐릭터는 너무나 분명하고 관객들에게 잘 인지돼있습니다. 맨주먹 한방으로 범죄자들을 다 제압하는 슈퍼히어로죠. 감초 조연들도 나름 캐릭터가 분명하고요. 매번 메인 빌런만 바꾸면 됩니다. 이야기 구조도 비슷합니다. 무조건 잡는 거지요. 곳곳에 액션과 유머가 배치되는데 심지어 특정 장면에서는 전편의 대사까지 재활용됩니다. “진실의 방으로”, “형은 다 알 수가 있어” 등인데 전편과 똑같은 대사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식상해하는 게 아니라 더 좋아하니 이런 것이 바로 브랜드 확장 영화의 장점입니다. 제작자이자 주연 마동석은 곧 범죄도시 3편 촬영에 들어가고 이미 8편까지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범죄도시2" 홍보 이미지 (제공:호호호비치)


속편의 빛과 그림자

그러나 흥행 영화의 속편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속편은 원작과 너무 비슷해도 안 되고 너무 달라도 안 됩니다. 전편과 비슷한 즐거움을 기대하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하지만 똑같게 만들어서 실증과 지루함을 안겨줘서는 안 되는 거죠. 속편이 영화산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습니다.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 영화가 양산되면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듭니다. 또 창작자에게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유인과 기회가 감소하겠죠.     


 형만 한 아우 없고, 잘 만들어진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나오기 힘들다고 하지만, 영화사에는 성공한 전편보다 더 인정받고, 더 흥행한 속편들도 있습니다. 전편에 이어 속편이 연거푸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작품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2”,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에일리언2”, “터미네이터2” 같은 작품들이죠. 아직 평가가 좀 이를지도 모르지만 “탑건:매버릭”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속편에는 소위 망작도 태반 이상입니다. 전작의 인기에 기대 덮어놓고 찍어대다가 작품성은 물론이고 흥행도 말아먹기 일쑤죠.      


   극장가는 이제 곧 여름 대목입니다. 한 해 중 관객이 가장 많이 드는 철입니다. 이번 여름 시장에는 한국영화 빅4가 있습니다. 7월 20일부터 4주 연속으로 매주 수요일 “외계+인 1부”, “한산”, “비상선언”, “헌트”가 개봉합니다. 모두 제작비 200억 원 이상 든 한국형 블록버스터입니다. 그 중 “한산”은 역대 흥행 1위 영화 “명량”의 속편이고, “외계+인”은 1부와 2부를 동시에 제작해 순차 개봉합니다. 1편이 히트를 치기 전부터 속편을 미리 만든 셈이지요. 이 또한 세트, 출연료 등 제작비를 절감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참, 그리고 12월에는 전 세계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갖고 있는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물의 길"이 개봉합니다. "아바타"의 감독은 바로 "에일리언2", "터미네이터2"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 이 ‘속편’들에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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