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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Oct 08. 2024

섬세한 사람

섬세한 사람      



당신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밤 언덕을 배회하죠

부드러운 발걸음과 달리 성난 당신의 영혼은 

일찌감치 사냥개들의 양식이 되었지요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사냥개들은 천천히 식사를 시작하고

주변으로 검은 뼈들이 쌓이는 걸 당신은 묵묵히 지켜봅니다

사냥꾼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언제든 당신을 향해 총을 겨눌 그에게 

당신은 가져본 적 없는 부모나 형제의 친근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강렬한 삶을 원하죠

그러나 당신이 진정 원하는 삶은 

물결마저 숨죽인 초록 호수 아래쪽을 향해 있습니다   

당신이 천천히 걷습니다

묘지를 돌보는 사람처럼 잔풀들이 머금은 물기에 발목을 적시며

그 걸음걸음이 당신의 유일한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가혹한 은총의 수혜자입니다 

그건 어렸던 시절 죽어버린 아이의 영혼 같아서  

당신을 미혹시키는 그 어느 것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어요 

당신의 작은 방에도 그 흔적들이 침묵으로 떠다닙니다

간혹 흰 목소리가 그 침묵을 뚫고 나올 때

당신의 눈동자는 몇 방울 검은 포도주 빛이 됩니다

당신의 문장이 여백을 가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당신의 은총에 조용히 응답하는 순간이죠 

    

손바닥에서 기꺼이 녹아버리는 눈송이들처럼 

당신은 당신의 군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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