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 헤아리는 마음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했던가?'
어릴 적 저는 '사랑이 오래 참는 것'이라고 배운 적은 없습니다. 다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기꺼이 참아야만 했죠. 늘 희생하고 헌신하던 엄마의 삶을 보며 자란 저는, 어느새 '참음'이 곧 바람직한 태도라고 믿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엄마들의 삶을 보며 불합리하다고 말하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판단하지 않은 채 그 삶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불안과 원망이 가득했지만, 그것마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말이죠.
결혼 후, 저는 비로소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대화하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말보다는 비난과 공격이 먼저였고, 때로는 침묵과 회피로 감정을 숨겼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무의식중에 그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더군요. 그러면서도 저는, 그 모든 것을 '참는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명백한 '억눌림'이었죠. 저에게 기다림은 사랑이 아니라, 깊은 불안이었고 좌절이었습니다.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 저는 끊임없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움직였고,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일을 알아서 찾아 했어요. 그 모든 행동의 밑바탕에는 '칭찬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라는 간절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죠.
기념일마다 선물을 준비하며 저는 온몸으로 외쳤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니, 제발 나도 사랑해 주세요." 그 한마디조차 꺼내지 못한 채 말이에요.
성인이 되어 독립을 했지만,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평생 아쉬워하던 '아들'을 위해, 저는 제 아들을 안겨드렸습니다. 엄마의 아쉬움을 대신 채워주고 싶었거든요. 엄마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며 저 역시 위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 마음은 더 고장 나고, 더 녹슬어 갔습니다.
엄마는 늘 참으셨습니다.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결국은 묵묵히 참아내셨죠. 저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남편과 아이들을 향해서도 '참는 척'하며 제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사랑은 참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압니다. 진짜 '오래 참음'은 억누름이 아니라, '헤아림'이라는 것을요. 사랑은 감정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마음이라는 것을요.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용기입니다. 말없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상대방을 생각하며 품어내는 마음인 거죠.
'사랑(愛)'이라는 한자어가 본래 '생각하다(思量)'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처럼, 사랑은 결국 깊이 생각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스무 살 무렵, 저는 저의 인생을 뒤흔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신다는 그분, 하나님을 만난 것이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울음이었죠. 마치 제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로소 '진짜 사랑'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듯했습니다. 누구도 저를 위해 죽을 만큼 사랑해준 적 없었고, 심지어 저조차도 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날,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나도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였구나.' 하고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억눌려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고 품고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진짜 사랑'이 깊어지고 자라는 과정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