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천천히, 자전거, 물건
4월 3주차 글쓰기
4/14(일)
‘뭐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천천히 둘러보면서 가세요.’
수목원을 걷던 중 표지판에 써져있던 말이었다. 사실 정확한 문구는 모르고 대충 저런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 산책로는 두 가지 길로 나눠져있었다. 하나는 일직선으로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지름길이었고 나머지는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길이었다.
나는 꼬불꼬불 길을 걸으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활짝 핀 꽃 내음 맡아 보기도 하고,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푸릇푸릇 한 풍경을 가만히 서서 즐기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주변 의자에 앉아 사색에 잠겼다. 사람은 많았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 구경도 나름 재미있었다. 아장아장 작은 발바닥으로 걷고 있는 꼬마 아이, 걸음이 느린 할아버지의 발걸음에 맞춰 걷는 할머니, 서로 찍고 찍히는 연인들까지. 평화로운 장면과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문득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효리와 이상순이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이효리는 이상순의 무릎에 앉아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이상순은 “그냥 사는 거지”라고 대답했다.
인생은 그냥 사는 건데 다들 무언가 이루려고 하며 그러지 못하면 자책한다. 또, 누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뒤처진다는 두려움에 다급하게 살아간다. 다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데 오히려 행복과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다.
사실 이런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걸까.
4/15(월) 10:31 ~ 10:50
동네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굴다리에 들어섰는데 강에 빠져 있는 자전거가 보였다. 몸체는 모두 깊게 잠겨있는 듯했고 바퀴의 절반만이 물 밖에 나와있었다. 그 바퀴는 강물에 반영되어 하나를 이루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운 뒤 자세히 살펴보았다. 상태를 보아선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어쩌다 여기에 빠졌을까.‘, ‘주인은 없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감정을 느낄 리 없지만, 버려진 거라면 슬플 것 같았다. ‘만약 내 자전거였더라면 물에 흠뻑 젖더라도 어떻게든 강물에서 구해줬을 텐데..’ 어쩌면 버림 당했을지도 모를 자전거에서 쓸쓸함이 느껴졌다.
4/16(화) 06:25 ~ 06:33
이기주 작가님이 쓰신 <언어의 온도>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아래와 같은 의미였다.)
길고 짧고, 잘하고 못하고, 좋고 싫고, 모두 상반된 말이지만 사실 다 같은 말이라는 것. 완전히 다르면 비교할 수가 없는 건데 왜 지금껏 다른 말로 생각했을까. 어쩌면 이 세상에 서로 다른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모두 다 하나였고 같았던 걸지도.
4/17(수) 06:33 ~ 06:41
나는 한번 물건을 사면 버리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신중하다. 정말 자주 사용할 것 같은지. 허투루 쓰지 않을지. 많은 고민을 거친 뒤 물건을 들여온다. 그럼에도 안 쓰는 물건이 차고 넘친다. 그런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한 번도 쓰지 않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란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중고로 판매하는 방법도 있으나 ‘언젠가 쓰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가지고 있는다. 오히려 중고 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안 사 오면 다행이다. 또 오래된 물건들도 버릴 법하지만 오래도록 가지고 있는다. 왠지 모를 정이 남아 있어서, 괜히 아쉬워서 비록 고장 났더라도 집구석 서랍에 고이 모셔둔다.
처음 자취할 때는 집 안에 물건이 없어서 나름 미니멀한 삶을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3년이란 세월이 흐르니 집 안에 물건이 가득하다. 30년 동안 살아왔지만 아직 나를 알다가도 잘 모르겠다.
요즘 비문학보다는 에세이 종류의 책을 많이 읽는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살펴보곤 한다. 자주 읽지 않지만, 계속 읽는 책이 에세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글이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낀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글을 쓸 때 좀 더 몰입감을 주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이번 주 초에는 글에 대한 열정이 넘쳐흘러 열심히 글을 썼지만,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피로가 누적되어 뒤로 갈수록 글을 쓰지 못했다. 늦게까지 야근을 한 탓도 있다. 아무튼.. 꾸준히 읽고 쓰면서 올해의 끝에는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