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못 쓰는 편견 가득한 소설가
[글 못 쓰는 소설가] 본문 중 일부 내용입니다.
8. 글 못 쓰는 편견 가득한 소설가
탁탁 탁탁 탁탁 탁.
노트북 위에는 이응을 썼다 지웠다 하는 의미 없는 행동이 반복되고 있다. 지현은 하루와 만남으로 편견을 버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한 번에 써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는 글을 못 쓰는 소설가이다.
글을 쓰면서도 하루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그녀의 말대로 지현은 쓸데없는 지식과 욕심에 더 탄탄한 스토리를 쓰고 싶어 했다. 또 글을 매끄럽게, 멋지게 쓰고 싶어 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래, 편견을 깨고 아무 글이나 써 보자!’ 생각했지만, 하루의 말을 들었는데도 역시나 글은 써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편견에 갇혀 있었나?’
개구리를 요리할 때는 뜨거운 물에 바로 넣지 않는다고 했다. 큰 냄비에 찬물과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가열해서 죽인단다. 자신이 딱 그 개구리가 된 거 같았다. 냄비 속인 줄도 모르고, ‘온천인가? 따듯하네.’ 하고 멍청히 있다가 어느샌가 편견의 늪에 빠져 버린 멍청한 개구리 말이다.
그래도 개구리보다 나은 건 자신에게는 “거긴 냄비 속이니까 나와야 돼!”라고 외쳐 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는 점이었다. 혼자였다면 글 쓰지 못하는 이유가 편견 때문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이상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고, 그녀가 말한 편견을 깨야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편견을 깰 수 있을까?”
‘처음에는 끝까지 쓰기 쉬운 것부터 써 봐’
끝까지 쓰기 쉬운 거…….
훌륭하지 않더라도, 완결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출판하고 싶었다.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나 싶기도 했지만, 한 번 시도는 해 보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쓸까?”
‘내 이야기라면 쓰기는 쉽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서전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현은 자신의 이야기면서도 픽션인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편견…….
생각이 흘러가는 걸 그대로 노트북에 글을 써 내려가던 지현은 하나의 문장을 완성했다.
[편견이 가득해서 글을 못 쓰는 소설가]
“이거 딱 난데?”
소설도 쓰고 편견도 없애고,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에 소설 소재로 너무나 맘에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 완결까지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있었다.
10월 26일. 편견에 갇혀 글을 못 쓰는 소설가가 <글을 못 쓰는 소설가>라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
처음은 지현이 글을 쓸 결심을 한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따로 허구를 넣을 게 없어서 글은 술술 써졌다.
퇴직 이야기를 쓸 때는 있었던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히며 글을 써야 했다. 회사 사람들이 볼 수도 있으니까 이 부분엔 좀 허구를 섞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예전에는 한두 쪽 쓰던 게 다였는데, 금세 열 쪽이 넘었다. 회사 그만둘 때 그렇게 화가 났던가. 초본에는 분노가 절절히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던 내면의 분노가 생각보다 컸음을 알았다. 편견을 없애려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글을 통해서 자신을 알게 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중반부 하루와의 이야기가 나오는 차례가 되었다. 이건 사실 그대로 쓰면 되겠다 싶었다. 가끔 어깨가 뻐근한 걸 풀어 주면서 하루 동안 집중해서 쭉 써 내려갔다. 어느새 절반쯤 완성이 되었다. 남은 공백은 이제 편견을 스스로 풀어내는 과정을 써야 하는 곳이다.
하루 만의 기적인가.
이게 하루가 말했던 역량인가 보다. 그동안에는 기를 쓰고 써도 고작 한두 쪽 쓰면 많이 쓰는 거였다. 그런데 진짜로 하루 만에 몰입해서 쓰다 보니 책의 절반이 완성되어 있었다. 빈 페이지는 오늘의 지현은 채울 수 없는 내용이기에, 집중을 한다고 해서 채울 수는 없었다.
편견을 깨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그러니 글쓰기에 앞서서 스스로 가지고 있던 편견을 먼저 알아야 했다. 지현은 본격적으로 스스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탐구를 위해서 빈 페이지에 질문을 적어 보았다.
Q. 왜 나는 글을 좋아하면서, 쓰질 못하나?
지현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고, 글쟁이가 되는 꿈도 꾸었다. 다만, 고등학교 때 한 번 글을 못 썼다고 바로 포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하루를 만나고 글을 쓰는 게 쉽다는 말을 듣고 다시 꿈꾸게 되었다. 다시 이렇게 불이 붙은 걸 보니 정말 쓰고 싶어 하긴 했구나 싶었다. 지현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그동안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도 왜 소설을 끝까지 못 쓰는 걸까?
지현은 책이나 영화를 볼 때 보기 전에 항상 리뷰를 꼭 확인했다.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평점을 확인하고 좋다 싶으면 책을 읽고, 영화를 관람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 역시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평가를 하고 평점 매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이 작가는 이래서 좋네.’
‘이 글은 개연성이 떨어지네.’
‘너무 억지 아닌가?’
그런데 막상 작가 입장이 되니, 작가와 책의 내용을 욕하는 리뷰를 볼 때면 같이 주눅이 들곤 했다.
‘글을 못 쓰면서 출판하면 괜히 욕만 먹는구나.’
하고 말이다. 지현은 욕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만두었다. 지현은 자신을 채우던 편견, 관습, 습관이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지식인의 반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지현을 옭아매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10권 넘는 대하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글을 쓰기도 전에 이미 소설가로 데뷔해서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고 리뷰를 쓰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남들이 써 주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좋은 소재,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매끈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 모든 게 편견이라고 말했다. 그걸 다 내려놓는 작업이 지현에게 필요했다. 욕먹기 싫으면 가명으로 책을 내면 그만이었다. 정체를 숨기면 되는 문제였다. 책을 쓰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마셔서 글을 시작도 못 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리석어 보였다.
지현은 자기가 가장 쓰기 쉬운 소재로 글을 절반쯤 마무리했다. 무려 하루 만에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분량을 채우는 중이었다. 만약에 그 나머지도 쓰기 쉬운 걸 선택했다면 지현은 아마 하루 만에 책 한 권을 완성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지현은 몸이 붕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간 고심하고 끙끙 앓았던 걸 생각하면 좀 억울하기도 했지만 깨달음을 얻어 좋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주춤하고 말았다. 다른 걱정거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적어 보기로 했다.
Q. 그래도 소설인데, 책 한 권 분량은 써야 하는 거 아닌가.
맞아. 그래도 소설인데. 출판할 소설인데. 책 한 권 분량은 써야 하는 거 아닐까? 사실 이건 지현도 답을 알고 있긴 했다. 전자책 중에는 짧은 분량도 많다. <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의 저자인 앤디 앤드루스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 씨의 위대한 결정>을 쓴 저자인데 전자책으로 110쪽 분량의 글을 썼다. 종이책으로 하면 30~40쪽 정도일 것이다. 대단한 작가도 분량이 적은 책도 쓰는데,초보라면 더더욱 분량을 작게 잡고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처음부터 힘든 분량의 글을 쓰려고 했다. 그것 역시 편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을까.
종이책은 기본 200~300쪽은 되고, 책 크기는 손바닥보다 큰 게 정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 처음인데도 긴 분량의 글을 쓰려고 했다.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 속 사건이 많아야 했고, 자연히 복잡한 글을 써야 했다.
그러나 지현은 복잡한 글을 쓰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고는 쉬운 주제의 소설을 쓰려고 했다. 그때마다 ‘그건 책으로 출판할 정도는 아닌데…….’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해 글을 쓰다가 중단하고 말았다.
지현은 자신이 글을 쓰는 패턴을 알면 알수록 스스로 큰 편견에 갇혀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지현은 종이책은 무거워서 사지 않고 주로 전자책으로만 글을 읽었다. 전자책으로 보다 보면 책의 분량은 잘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살 때 책 두께를 보지 않고 사게 마련이었다. 단편이나 장편을 가리지 않고 보게 되었다. 분량과는 상관없이 내용만 보며 좋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을 돌이켜 보니, 좋은 책이란 건 분량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분량이 길면, 지루하고 늘어지게 진행될 때도 있었다. 지현은 자신이 독자일 때는 글의 길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막상 소설가라고 말하며 글을 쓸 때, 꽉꽉 채운 글을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지현은 자신이 초보 작가이면서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음을 깨달았다.
Q. 독자가 돈을 내고 구매하는 책인데, 멋진 스토리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지현은 자신이 독자이기만 했을 때를 떠올려 봤다. 사회에 나와서 스스로 일하고 돈을 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자들이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고심하며 사는 책이었다. 그런데 스토리가 쓰레기이면 어쩌지? 지현 또한 책을 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도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멋진 걸 쓰려고 하는 것도 내 욕심이겠지.”
지현은 욕심인 걸 아는데도, 기본적으로 기승전결이 있는 글은 써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건 욕심이지만 버리면 안 되는 욕심이란 생각도 들었다. 생각을 아무리 해 봐도, 이 질문을 풀기는 어려울 거 같았다. 기분 전환을 할 겸, 킬링 타임용 소설을 보기로 했다.
지현은 스마트폰을 들고, 자주 애용하는 전자책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간 소설이 뭐가 나왔는지 살폈다. 그리고 책 평점과 리뷰를 보면서 읽을 만한 책이 있는지 찾아봤다.
- 오래간만에 정말 재미있는 책 읽게 돼서 기뻐요!
- 외전이 필요합니다!
- 작가님 글발은 좋은데, 소재가 개취가 아니네요. ㅠ 이거 취향 타니까 살펴보고 구매하세요.
- 역시 믿고 보는 작가님. 다른 작품보다는 재미가 덜하지만, 평타는 하네요.
- 좀 지루하네요. 저는 읽다 접었습니다.
이 작가 글은 몇 개 봤었는데, 글발을 알면서도 막상 리뷰를 보니 구매가 망설여졌다. 어떤 책을 보든 리뷰는 항상 좋다는 것과 별로라는 게 같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책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하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책이 어디 있겠어.”
지현은 신랄한 리뷰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베스트셀러인 책이라도 막상 읽었을 때, 별로인 게 꽤 많았다. 그래서 신중하기 위해 리뷰와 평점을 보고 책을 구매해 왔다. 그런데 막상 리뷰를 보면 진짜 믿고 살 만한 책은 한 권도 없다. 신기할 정도로 비판 글은 항상 있었고, 비판 정도가 심각한 리뷰도 쉽게 볼 수 있다. 악평이 많아도, 소설 줄거리를 보고 끌려서 읽다 보면, 그렇게 쓴소리 들을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도 꽤 있었다. 그때마다 리뷰를 너무 믿지는 말자 생각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구매 전에 리뷰를 꼭 확인하게 되었다.
'편견을 버리는 연습을 먼저 해 봐. 분량 욕심. 글발 욕심. 스토리 욕심. 다 버리고 현재의 네가 쓸 수 있는 글을 써. 현재 네가 감당 못 할 글은 1년을 매달려도 쓰지 못해.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현재 네가 쓸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하루의 말이 떠올랐다. 멋진 스토리를 써야 한다는 편견. 그런데 멋진 스토리란 뭘까? 개인의 취향이라는 건 너무나도 달라서, 베스트셀러라도 욕을 먹고, 다 읽지도 않고 덮게 되는 책이 수두룩하다. 지현은 자신이 무엇을 멋진 스토리로 정의하고 소설을 쓰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리뷰만 봐도, 호평하는 사람과 비평하는 사람이 섞여 있다. 계속 지현은 생각했다. 어떤 독자를 만족하게 하려고 그동안 글 쓰는 걸 망설이고 있던 걸까?
다르게 생각하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건, 어떤 글을 쓰든 혹자는 호평을 한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 아닐까?
'현재 네가 감당 못 할 글은 1년을 매달려도 쓰지 못해.'
지현은 하루가 했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하는 글은 난다 긴다 하는 유명 작가들도 못하는 일이다. 하물며 초보 작가인 자신이 그걸 욕심낸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글을 쓸 수 없고, 처음부터 대작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작가는 현재 감당할 만큼의 글만 쓸 수 있었다. 억지로 글을 못쓰는 것도, 그리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현재 쓸 수 있는 만큼의 스토리를 적는 것이 작가였다.
그런데도 편견에 갇혀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편견이라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이 지현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알면 알수록 진짜 편견에 갇힌 멍청한 소설가였다.
- 에피소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