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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5 - 역할 분담

2023년 5월 7일 일요일


 오늘은 10시 40분부터 재활이 있어서 여유롭게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침부터 어마무시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동생이 설사를 했다. 처음에는 영양식이 빨리 들어가서 그런가 생각을 했는데 하루에 2번이나 설사를 하는 것을 보니 영양식 문제는 아니었던 듯하다. 낌새가 이상해서 바지를 열어 확인해 보니 기저귀 틈사이로 새서 온몸이 설사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닦아야 할지 막막했지만 재활시간이 여유롭게 남아서 조급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물티슈에 더 이상 묻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엉덩이를 닦고 기저귀와 깔개매트를 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깨끗하게 다 닦아내고 새로운 기저귀로 갈기만 하면 끝나는데 동생이 침대시트 위에 설사를 또 쌌다.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다시 한번 더 닦여야 한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하필 기저귀를 빼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져서 허탈감이 들었다. 설사가 흐르지 않게 침대시트를 돌돌 말아서 빼냈다. 그렇게 기저귀와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넋이 나가 버렸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바닥에 놔뒀던 바지와 기저귀를 담은 봉지를 대신 버려주면서 침대 시트를 가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선 환자를 옆으로 돌려놓고 다리 쪽 모서리부터 시트 반을 먼저 끼운 뒤 위쪽으로 끌어올린다. 머리 쪽 모서리에 시트를 끼우고 환자를 반대쪽으로 돌린 다음 나머지 모서리 시트를 마저 끼우면 끝이 난다. 나 혼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갈았었는데 간병인 아주머니는 동생을 눕힌 상태에서 시트를 까는데도 1분이 채 안 걸렸다. 역시 내공이 엄청난 것 같다.


 작업 재활 30분 중 15분은 치료사가 동생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내가 함께 해야 했다. 이번에는 고리 걸기를 했다. 링을 보여준 다음 동생이 직접 잡도록 유도했다. 그다음 막대를 보여주며 걸라고 했더니 한 개는 무사히 걸었다. 한번 더 시켰더니 두 개까지는 쉽게 했는데 그 이후는 링을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한 개씩 잡으랬더니 두 개씩 잡으며 가만히 들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동생에게 막대를 들고 있으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면서 나보다 빠르게 할 수 있는지 도발을 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링 10개를 모두 막대에 거는 걸 보고 칭찬을 했다.


 뇌출혈 수술 이후로 편 시가 생겨서 항상 왼쪽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오른쪽으로도 눈동자가 곧잘 따라온다. 눈동자가 점점 중앙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초점도 명확해지고 있다. 재활 훈련을 하면서 계속 서있는 연습을 해서 그런지 다리와 허리에도 이제는 힘이 많이 생긴 듯하다. 이제는 휠체어에 태울 때 두 다리로 버텨줘서 훨씬 수월하게 태울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침대 끝에 앉혀 놓으면 뒤로 넘어가지 않고 잠시동안은 혼자 앉아서 버틸 정도가 되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수많은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어서 동생 같은 경우는 젊어서 빨리 회복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본인이 겪어본 바로써 나이가 젊은 사람은 많은 사람보다 적어도 4배 정도는 빠르게 낫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몸을 못 움직이는 환자는 자기가 스스로 힘을 주게끔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동생 괴롭히기에 특화된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는 건 자신 있었다. 이미 간단한 건 직접 하게끔 시키는 중이다.


 우리 옆칸에도 뇌수술을 하신 할아버지가 한분 계셨는데 섬망 증세가 있긴 해도 밥도 혼자 먹고 말도 잘하신다. 섬망 때문에 헛소리를 하실 때가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참으로 귀여우신 분이다. 자신의 별명이 울보, 똥쟁이 할아버지라며 소개하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거나 자다 깼을 때는 도둑이 온 줄 안다. 그때마다 간병인 아주머니를 찾으며 하는 말이 너무 웃겼다.


“이여사, 도둑이 든 것 같다. 내 신발 좀 갖다 줘. 그놈 엉덩이를 주 차삐게”

“아이고, 아버지 또 이러신다. 도둑 아입니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어예”

 

할아버지는 이제 내 동생 이름까지 기억한다. 그래서 오늘 재활 시간에는 웃긴 소동이 벌어졌다. 할아버지가 기구에 기대서 서 있는 연습을 하던 도중 내 동생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댔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서 치료사가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경오야, 경오야 여기 좀 봐라. 울보 똥쟁이 할아버지 여기 있다.”

“내 니 옆방. 옆방 할아버지다. 내 누군지 알겠나?”


 갑작스러운 큰소리에 놀라서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간 치료사 선생님에게는 동생과 같은 방이라며 아는 사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사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를 보더니 같은 방이 맞냐고 묻길래 할아버지 말씀이 맞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돌발행동에 웃음 터트렸고 동생은 할아버지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때 아니게 재활 치료실에서 같은 방 환자끼리 정모를 가지게 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는데 서로 마주 보며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재활이 다 끝나고 점심에 맞춰서 엄마가 도착했다. 동생을 봐줄 엄마가 왔으니 나는 마음 편하게 내 할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그림작업을 계속하고 있었고 엄마는 옆에서 동생을 챙겼다. 그런데 동생도 나도 엄마가 왔는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니 그게 서운했는지 불만을 토로했다. 엄마가 그런 감정을 보일 때마다 너무 피곤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감정을 받아줄 힘이 없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내 옆에 아무도 없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면회를 오는 게 달갑지는 않다.


 엄마는 옆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게 너무 귀찮았다. 엄마는 아들이랑 딸이 자기가 와도 반가워하지 않는다면서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 말에 괜히 마음만 불편해졌다. 가뜩이나 다른 사람까지 챙길 여유는 없어서 가족이 면회를 오는 게 나에게는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동생 친구나 지인이 오면 나는 자리만 비켜주기만 해서 상관이 없었는데 가족들은 내가 걱정이 된다며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지금은 혼자 두는 게 나를 더 배려하는 건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냉랭함에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너무 싫었다.   


 쉬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 동생을 보러 온 거니 둘이서 산책을 나갔다가 오라고 했는데 또 그걸로 섭섭해하는 바람에 결국은 같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산책을 가서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병실에 있다 보면 듣는 귀가 많아 말을 섣불리 할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나 보다. 병실 밖을 벗어나면 이상하게도 귀찮았던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1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1시간 넘게 떠들었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오늘은 엄마와 헤어질 때 동생이 안녕이라는 인사를 했다. 아직 잘 가라는 말은 한 적이 없고 안녕이라는 말은 할 수 있어서 시켰더니 말을 한다. 그리고 내일이 어버이날이라며 엄마 사랑해를 해달라고 하니깐 어렵게 말을 꺼냈다.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 엄마,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아직 혀가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아서 또렷하게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것도 연습을 하다 보면 또박또박 말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저녁쯤 되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아들만 보러 간 게 아니라 나도 보러 온 거라며 이야기했다. 아까 내가 한 말이 신경 쓰였나 보다. 그런데 정말이건 엄마의 오해였다. 아들을 보러 왔으니 둘이서 산책을 나가란 말은 서운해서 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귀찮은 마음에 제발 나를 두고 둘이서만 시간을 보냈으면 해서 한 말이었는데 그걸 내가 섭섭해서 그러는 줄 알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지는 몰랐다. 다시 한번 서운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엄마는 딱히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입원했다는 말은 왜 안 했냐고 물었다. 어제 할머니가 와서 할아버지가 새벽에 응급실을 갔다고 이야기해 주며 절대로 다른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말을 꺼내말라고 해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결국은 오늘 할머니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할머니가 나를 제일 안쓰러워한다며 이야기했다. 동생이 이렇게 된 건 돌이킬 수 없는 문제라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나는 다친 것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내가 병간호를 하느라 고생해야 한다며 그래서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어제 할머니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렸다.


 엄마도 할머니와 같은 심정이라며 오늘 보니 자신보다 내가 더 간병을 잘하는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아무래도 자식이니깐 아들이 조금만 힘들어해도 잘못될까 봐 쉬게 하고 음식도 한두 입을 먹다가 더 이상 먹기 싫어하면 억지로 강요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동생한테 하는 걸 보고 많이 느꼈다고 했다. 나는 동생이 힘들어해도 심각한 정도가 아니면 계속 행동을 하게 했다. 엄마는 지금 보니 자기처럼 응석을 다 받아주다 보면 재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식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안쓰러워지는 게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니 당연히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같은 피를 나눈 누나일 뿐,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마냥 안타깝고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로지 빨리 재활을 마쳤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그냥 각자 역할을 하면 될 뿐이다. 엄마는 사랑을 주면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고 나는 자극을 주면서 신체적 기능을 길러주면 된다. 이만하면 역할분담이 완벽한 것 같다. 앞으로도 더 내가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보겠다.  




 


    


 


 


   


자꾸 말을 시키고 동생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내가 귀찮아하는 걸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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