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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4 -온탕 냉탕 그 어느 사이

2023년 5월 6일 토요일


 오늘은 재활이 8시 반부터 시작이라서 6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동생의 컨디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오전 일과는 여느 때와 똑같이 씻기고, 먹이기를 반복했다. 웃긴 건 동생이 나를 속이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지 거짓말을 한다. 항상 재활을 가기 전에 기저귀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내려갔다. 그래서 기저귀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동생에게 물었다.


 “혹시 응가했어?”

“...”

“눈만 깜박이지 말고 대답을 하란 말이다.”

“...”

“아니면 ‘아니’, 맞으면 ‘어’라고 대답해 줘야지. 얼른 해봐.”

“...”

“아니? 어? 쌌어? 안 쌌어?”

“... 안 싸아써..”

“엥?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너 안 쌌어라는 말도 할 줄 아네?”


 동생은 나의 성화에  이겨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확실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남들에게는 흔한 말이라 감흥이 없겠지만 동생 입에서 처음 나온 문장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동생의 말을 믿지만 소변이 나왔는지 확인을 해야 돼서 기저귀를 열었다. 역시나 영양식과 물을 먹은 직후라서 소변이 나온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냄새가 살짝 이상해서 엉덩이를 들어 확인하니  순간 내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도 아니고 심지어 ‘안 쌌어’라고 해놓고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그 말을 하는 동생의 표정도 억울해 보여서 철석같이 믿었는데 기저귀를 열어보고 똥이 나를 반기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왜 사기를 치냐고 따지니 뭐가 재밌는지 그저 웃기만 한다. 엄마가 한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기저귀를 갈기 전에 물어보면 쌌어도 안 쌌다고 말하니깐 속지 말고 무조건 확인해야 한다며 주의를 줬었다. 나는 그 속임수에 안 당할 줄 알았는데 감쪽같이 속았다. 동생은 날이 갈수록 연기력만 느는 것 같다.


 2시까지 재활을 무사히 마치니 할머니가 때마침 면회를 왔다. 분명 병원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온갖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먹지도 못하는  들고 와서 몇 개는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원하지 않은 음식이나 물건을 받을 때면  난감하다. 엄마가 사놓고  바나나도  먹지 못해서 물러져서 버려야 했는데 처치곤란한 바나나를  사들고   보니 짜증이 났다. 가져온 할머니의 성의를 생각해서 받긴 했지만 제발 다음에는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어제는 엄마가 면회를 오고, 오늘은 할머니가 오는 걸 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내일은 또 엄마가 면회를 온단다. 한 번에 같이 오면 되는데 면회를 따로 오는 것부터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주말에는 가족들이 면회를 오니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다. 병실에서는 면회가 불가능해서 면회실이나 바깥으로 나가야 하기도 하고 동생의 상태가 어땠는지 물어보는데 대답해 주기가 너무 귀찮았다. 동생의 상태가 어떻냐는 연락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이제는 대답해 주기가 지겹고 지친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가족한테 신경질을 부리게 된다. 아무래도 잠을 조금밖에 못 자서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기도 한 것 같다.


 할머니가 면회를 온 지 얼마 안 돼서 동생의 친구가 면회를 왔다. 하필 또 시간이 이렇게 겹쳐버렸다. 친구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자마자 병원으로 왔다고 말했다. 동생은 할머니를 만났을 때는 아무 반응을 해주지 않다가 친구를 보니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친구가 더 좋을 때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엄마라면 서운해했을 상황이었지만 할머니는 친구가 더 좋을 거라고 말하며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동생의 친구에게 말을 거는데 대화 내용에  절반이 하소연이었다. 친구가 난감할 것 같기도 하고 안 해도 되는 이야기까지 꺼내길래 할머니를 중간중간 제지시켰다.


 할머니의 친화력이 좋긴 하지만 때로는 말을 너무 많이 걸어서 옆에 있으면 힘들 때가 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불필요한 말들을 꺼낼 때마다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내가 더 불편해졌다. 나도 말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수다는 이길 수가 없었다. 옆에서 듣든 말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서 지치게 만든다. 원래라면 할머니와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따라 가족들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말해봤자 온통 동생 상태를 묻거나 걱정하는 이야기뿐이라서 대화를 나누면 즐겁지 않고 피곤해지기만 했다. 그냥 지금은 나를 안 건드리고 가만히 두는 게 제일 편한 것 같다.


 저녁에는 바나나 반 개를 먹여 보았더니 확실히 씹는 속도가 달라졌다. 조금 더 힘 있게 먹고 밥을 먹으며 멍 때리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의식이 돌아오니 자기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를 더 보이는 것 같다. 그렇게 바나나를 먹이고 주스를 먹이고 있으니 우리가 뭘 하는지 궁금해하는 아주머니들이 몰려들었다. 동생은 병원에서 모든 관심과 예쁨을 듬뿍 받느라 바쁘다. 그 덕에 우리 개인 공간은 수시로 만남의 광장이 된다. 심지어 동생에게 말을 걸고 있으면 옆 커튼에서 대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모습들이 정겹기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들어와서 동생에게 말을 걸고 있으면 가끔씩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워졌다. 마치 갓난아기가 있는 집안에 친척 어른들이 아기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는 그런 상황 같았다. 사람들이 아기를 예뻐해서 다가가지만 정작 엄마는 아기 때문이겠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불편한 것 말이다.


 주관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이에게 이 정도로 과한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관심이 있더라도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같이 생활을 한다고 해도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해서 그런지 서로 간섭하는 일이 적었다. 부산에 살던 친구 한 명은 서울에서 1년 정도 생활하다가 그 특유의 삭막함과 외로움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오히려 그런 서울이 나와는 더 잘 맞았다. 서울에서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때론 무심할 정도로 서로 간의 정이 없는 것 같아 외롭긴 했지만 인생은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허해질 때면 고향에 들러 또다시 온기를 채우면 그만이었다. 딱 그 정도,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가며 중간을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 중간 사이 미지근한 온도가 제일 좋다. 너무 뜨거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차가우면 추워져서 오래 있지 못한다. 그런데 미적지근한 탕은 특색이 없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마음 편하게 오래 머물다 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게 조절을 하는 것이다. 무얼 하더라도 나는 그런 따뜻한 은은함을 선호하는데 여기는 내가 견디기엔 너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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