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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6 - 반반 소식

2023년 5월 8일 월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준비하는 시간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그런데 어제부터 동생이 설사를 한다. 걱정이 되었지만 담당 의사가 회진을 돌 때 배변 유도제를 뺏으니 한번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동생의 왼쪽 종아리에 종기가 생겨서 물어보니 절개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연고를 처방해 주겠다고 하였다. 의사는 동생을 보며 오늘의 기분은 어떤지 물었지만 아무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어도 대답을 안 해주니 알 길이 없어서 나에게 평상시에 동생이 말을 잘 들었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듣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말하니 동생이 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쳤다. 회진을 돌던 의사와 간호사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동생이 대답은 안 하지만 대화는 다 알아듣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꺼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그런데 둘이 많이 닮았네요.”


 그 말을 듣고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니 동생도 같은 심정인지 또 헛웃음을 지었다. 간호사들은 불쾌해하는 우리를 보고 정말 찐 남매의 반응이라며 웃겨했다. 그러면서 서로 원만하게 대화를 끝내라며 커튼을 쳐주겠다고 장난스럽게 말을 했다. 정작 의사는 아침부터 핵폭탄급 발언을 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침에 작업 재활실에 동생을 데려다주면서 담당 치료사와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여전히 누나가 무서운지 물어보며 장난을 걸었다. 그 말을 듣고 동생한테 옆에 있으니 말을 잘하라고 협박했다. 어떻게 대답을 하는지 보고 싶었는데 꿋꿋하게 침묵을 지켰다. 재활을 잘 받으라는 말을 하고선 대기실로 나왔다. 의자에 잠시 앉아서 글을 수정하고 병실로 올라와 침대시트와 베개 커버를 갈았다. 그리고 병실에 잠깐 있다 보면 어느새 동생을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온다.


 재활을 끝내고 치료사가 동생을 태운 휠체어를 끌고 나왔다. 그러고선 동생에게 누나가 무섭냐고 다시 질문하니 고개를 끄떡거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릴 때 많이 맞았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며 동생과 약속한 비밀을 나에게 누설해 버렸다. 동생은 믿었던 치료사에게 배신을 당해서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무섭다고 해놓고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걸 보면 평소의 기억을 잃진 않았나 보다.   


 마지막 재활 시간에는 잠시 밖으로 나가 점심을 사들고 왔다. 병원에서 햇반 같은 밥만 먹고 있으니깐 자극적인 음식이 그리웠다. 며칠 전부터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제일 가까운 곳을 검색하고 재빨리 나갔다 왔다. 며칠 내내 비가 내리다가 오늘은 날씨도 화창했다. 신나게 떡볶이와 김밥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 있는 식당을 둘러봤다. 주변에 먹거리가 많아서 부지런하기만 한다면 굶지는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재활이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지나가던 같은 병실 아주머니가 동생이 이미 나갔다고 전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재활 치료실을 가봤더니 동생이 사라졌다.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다른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재활실로 들어가 보니 동생이 문 앞에서 목이 꺾일 듯 뒤로 젖혀진 상태로 휠체어에 앉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아기새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둥지에 올라가지 못해 엄마새를 기다리는 것 같아 보여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상황이 귀여웠다.


 병실로 가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저귀를 확인했다. 재활을 가기 전에 설사를 해서 도중에 또 쌀까 봐 걱정이 됐었는데 다행히 소변만 젖어있었다. 그런데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기쁜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소변줄을 빼고도 소변이 잘 나오는 것이 확인되었다며 앞으로는 소변량을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매번 기저귀를 갈면 버리기 전저울로 재고 기저귀랑 패드를 제외한 무게를 작성해야 돼서 너무나 번거로웠는데 듣던 중 반가운 일이었다.  


 동생은 오늘 재활 훈련이 피곤한 지 점심때 계속 잠만 잤다. 오후 재활을 가서도 운동치료를 받으며 졸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눈빛을 보니 하루종일 흐리멍덩해 보인다. 오후 재활 일정은 중간에 재활이 하나 빠져 있어서 30분 정도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때는 병실로 다시 올라가기도 애매해서 병원 밖으로 휠체어를 끌고 나갔다. 벤치에 앉아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나 혼자 말하고 있다.


 병원 정문에 요구르트 아줌마가 서있는 걸 보고 동생에게 요플레를 사주면 먹을 거냐고 물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베리, 복숭아, 딸기 중 어떤 맛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입모양으로 딸기라고 뻥긋거렸다. 동생이 먹고 싶다고 했으니 요플레를 몇 개 사들고 와서 먹였다. 요플레에 있는 덩어리들은 걷어내고 먹였더니 침을 질질 흘리긴 했어도 한 개를 거의 다 먹는다. 이렇게라도 오늘 하나를 먹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은 오후 재활까지 끝내고 침대에 눕혔더니 또 잠을 잔다. 하지만 곧 여자친구와 전화를 해야 돼서 억지로 깨워 영상통화를 걸었다. 동생은 한 달 만에 보는 여자친구를 봐도 반응이 심드렁했다. 말도 잘 안 하고 졸린 눈으로 전화를 하다가 끊어야 한다고 손을 흔들어 주라고 했는데 인사는 잘해준다. 여자친구에게는 다음에 동생 정신이 더 또렷할 때 전화를 다시 걸겠다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저녁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수술 소식을 전화로 알려주었다. 검사를 하니 폐에 담석이 생겨서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걱정이 되지만 보러 갈 수가 없었고 동생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아는지 모르는지 눈만 껌벅거렸다. 나중에는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똑같은 소식을 전했다. 우리 집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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