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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7 - 벽

2023년 5월 9일 화요일


 화요일은 8시 반부터 재활이 있어서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보통은 재활을 가기 전에 대변을 처리하고 가는데 아침에는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오늘 한번 정도는 대변이 나올 텐데 그게 언제일지 알 수가 없어서 두려웠다.


 요즘은 동생이 말을 하는  귀찮아하는  같다. 예전에는 말을   없어서  깜박임으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이제는 대답정도는   있으면서 자꾸 눈으로 의사표현을 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혀가 둔해 발음   되는  같다. 도무지  되겠다 싶어서 비닐장갑을 끼고 혀를 잡아서 빼려고 시도했다. 오랫동안 말을 안 하다 보면 혀가 짧아져서 발음이 어눌해질  있다고 하니 억지로라도  운동을 시켜야 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세게 눌렀는지 헛구역질을 하며 눈물을 찔끔 흘리며 아파한다.  


 동생이 끙끙 앓는 소리에 병실 사람들은 한달음에 달려와서 동생의 상태를 살폈다. 큰 문제는 아니고 혀를 잡아당기다가 아팠는지 소리를 낸다고 설명하니 동생을 달래주었다. 아파서 속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길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다음에는 안 아프게 하겠다며 약속을 했다.


 첫 시간은 전산화 인지 치료였는데 같은 그림이 나왔을 때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동생은 버튼을 누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옆에서 지금 눌러야 한다고 외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림을 기억 못 하나 싶어서 그러는 건가 했는데 치료사가 그림을 가리키며 아까와 똑같은 그림이 맞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같은 그림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는 얘기인데 평상시에 잘 움직이는 왼손은 왜 재활 치료실만 들어갔다 하면 굳어 버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모니터에 있는 그림을 손가락으로 직접 가리키는 건 잘했다. 아직까지는 모니터와 버튼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손동작을 하는 것이 어려운 듯했다. 자동차 그림 사이에 있는 오토바이도 잘 골라내는 걸 보면 인지능력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문제는 어디까지 돌아왔는지 확인이 안 될 뿐이었다.


 동생은 운동재활 시간을 가장 힘들어했다. 엄마가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동생의 운동을 담당하는 치료사는 병원에서도 경력자로 소문이 나서 대기가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장난스럽게 얼굴이 잘생긴 으로 선생님들을 넣은 건지 아니면 누나의 빽으로 넣은 건지 물어보았다는데 동생은  말에 웃기만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동생이 젊다 보니 실력 있는 치료사는 전부 투입된  같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처음보다 일어서서 버티는 힘이 늘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치료사의 키와 덩치가 동생보다 커서 동생을 번쩍 일으켜 세워서 버티게 만들었다. 역시   없던 사람도  치료사 앞에만 가면 서게 된다는 소문이 맞는  같다.


 그다음에 있는 작업 치료가 끝나면 치료사는 오늘 동생이 어땠는지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오늘은 나에게 동생이 혹시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냐고 물어보았다. 전혀 뒤척이지 않았고 잘 잤다고 하니 재활 내내 너무 피곤한 모습이었다며 말해주었다. 동생의 눈을 보니 초점이 흐리멍덩하고 졸려 보인다. 어쩌면 첫 시간부터 고된 재활 훈련을 받아서 일 수도 있고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 것 일 수도 있겠다고 추측해 보았다.


동생의 바지를 봤을 때 대변이 조금 샌 것 같아 보여서 기구재활시간은 빠지고 급하게 기저귀를 갈러 병실로 향했다. 어제보다는 심하지 않지만 또 설사가 나왔다. 배변 유도제도 중단을 했는데 왜 설사가 자꾸만 나오는지 모르겠다. 기저귀를 갈고 조금 눕혀 놓았다가 오전의 마지막 시간인 연하재활을 받으러 6층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나는 대기실에 앉아 동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림을 그렸다.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가 저 멀리서 동생이 보였다. 재활이 끝나는 시간이 다 똑같아서 엘리베이터 앞은 항상 휠체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분명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만 해도 상태가 괜찮아 보였는데 병실로 내려와서 침대에 눕히자마자 어디가 아픈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어어...어...리이..어어 리”


 발음이 어눌해서 허리인지 머리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디가 아프다는 것 같았다. 내가 동생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있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와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것 같다면서 이마에 손을 대보면서 열도 있는 것 같으니 간호사를 불러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이마에 손을 짚어봤는데 열이 나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간호사에게 체온과 혈압을 재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도 와서 재보더니 정상 체온에 혈압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간병인 아주머니는 미열이 있는 것 같다며 체온을 다시 재보라고 하면서 나보다도 더 동생을 걱정했다.


 수간호사가 와서 상태를 한번 더 살피면서 동생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니 알 수 없는 소리만 냈다. 머리인지 허리인지 짚을 테니 아픈 곳이 맞으면 대답을 하라고 했는데 계속 소리를 내서 어딘지 더 헷갈려졌다. 머리가 아프면 약을 처방해서 줄 수 있다고 하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된 위치를 확인했다. 간호사가 동생에게 머리가 아프면 약을 줄 건데 아픈 곳이 허리가 아니라 머리가 맞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아픈 곳을 표현하니깐 다행이긴 했다. 점심을 다 먹이고 약을 주고 나서 오후 재활을 가려고 하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며 동생을 더 걱정하였다. 동생이 앓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진통제도 먹였고 체온도 혈압도 정상으로 확인된 이상 재활에 빠질 이유는 없었다. 가만 보면 가족인 내가 제일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다. 동생이 나를 무섭다고 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오후 재활을 할 때 너무 피곤해서 대기실에 앉아 졸고 있는데 치료사가 나를 깨웠다. 아직 끝날 시간이 아닌데 의아해서 바라보니 동생 바지에 소변이 새서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동생의 바지를 보니 소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치료사의 바지에도 묻은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다음 시간에는 30분 정도 재활이 없어서 병실로 올라가 기저귀를 갈고 동생을 잠시 쉬게 했다. 그래도 동생의 컨디션에 비해서 오늘 재활을 무사히 다 끝낼 수 있었다.


 저녁에는 항상 동생의 침대로 올라가서 정면을 볼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킨다. 괄사로 발마사지, 손마사지도 해주고 다리도 주물러준다. 계속 말을 걸면서 깨어있도록 만들었다. 그 시간에는 남매끼리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물론 동생은 잘 웃어주는 청중이었고 나는 만담꿈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화내용을 알아들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누구냐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라고 하니 나를 가리켰다. 동생이 맞춰서 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손을  잡고  놓아주길래 우리가 언제부터 손을 잡는 사이냐고 물으니 엄청 크게 웃었다. 그렇게 말해 계속 잡고 있길래  손을 잡고 안정이 되면 그렇게 잡고 있으라고 했더니  웃는다. 웃는  제일 잘하는  같다. 이렇게 시시덕거리고 있다 보면 소등을  시간이 다가왔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갈고 이를 닦였다. 그리고 침에 실패했던  잡아당기기를 시도했다. 그래도   하다 보니 조금씩 혀를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혀를 움직여주면서 동생에게 나의 목표는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말하게 만들기라고 말하니 어이가 없었는지  웃는다.


 내 목표를 달성하려면 앞으로는 혀운동을 더 열심히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침, 저녁 시간이 될 때마다 틈틈이 혀를 늘리는 연습을 시켜야겠다. 일상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대화가 되어야 하는데 발음이 어눌하면 말하는 사람도 답답하고 듣는 사람도 힘들어진다. 동생이 말을 똑바로 할 수 있도록 내일부터 병실에서 독하게 특별 훈련을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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