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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8 - 알 수 없는 하루

2023년 5월 10일 수요일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깼다. 간호사가 새벽에 혈압과 체온을 재러 왔는데 갑작스러운 인기척 때문에 놀랐는지 동생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기침을 해댔다.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전 6 전이었다. 동생은  그랬냐는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이미 깨버려서 일어나서 준비를 할까 고민하다가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었다.


 항상 시간에 쫓기 듯 아침에 준비를 했는데 오늘따라 준비가 빠르게 끝났다. 재활을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송 직원이 20분이나 일찍 와서 동생을 휠체어에 태웠다. 1층으로 내려갔는데도 재활까지 시간이 남았다. 바깥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아서 휠체어를 끌고 나가보았다. 우리가 있는 병원은 먹거리 골목 사이에 위치해서 주변에 식당이 많았다. 평소에는 병원 정문에 있는 벤치까지만 나가는데 오늘은 식당이 있는 거리까지 나갔다.


 길거리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들은 출근을 하는 시간에 동생과 나는 길에서 멍하니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멀뚱히 서있는 우리가 궁금한 지 흘끗 쳐다보고 지나갔다. 동생은 지나가는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를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항상 정적인 병원의 분위기만 보다가 동적인 바깥세상의 분위기를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재활 시간이 다 돼서 다음에 또 나오자고 약속을 하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동생이 재활훈련을 받는 동안 나는 시트를 정리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왔다. 통증치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작업 치료실에 동생을 옮겨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료사가 동생의 휠체어를 끌고 나왔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는데 밖으로 나오길래 동생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벌떡 일어났다. 치료사는 놀란 나를 보더니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동생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길래 구경을 시켜주고 온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아침에 잠시 나갔다 돌아온 게 무척 아쉬웠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침대에 눕히면 계속 졸긴 했지만 말을 걸면 조금씩이라도 반응을 해줬다. 치료사도 재활 시간에 동생이 반응을 많이 해줬다며 말해주었다.


  우리 병실에는 우렁각시가 있다. 오전 재활을 마치고 점심쯤이 돼서 병실로 와보면 우리 자리 위에는 반찬이나 국이 올려져 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음식을 만들면 병실 사람들 모두에게 나눠주는 덕에 점심을 든든하게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집에 있을 때보다 병원에서 삼시 세끼를 더 잘 챙겨 먹는 것 같다. 그래서 몸무게가 안 빠진다. 오히려 더 찐 것 같기도 하다. 음식을 잘 얻어먹고 힘을 내서 오후 재활을 준비했다.


 오전 재활을 다 끝내고 올라가서 기저귀부터 갈아주었다. 확인해 보니 설사는 아닌 것 같아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 재활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동생을 휠체어에 옮겨 태웠는데 뭔가가 심상치 않았다. 바지를 보니 설사가 새고 있다. 기저귀를 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일이 벌어졌다. 일단 동생을 다시 침대로 옮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바지는 이미 설사범벅이 되어있어서 치우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그 덕에 오후 첫 타임 재활은 10분 밖에 하지 못했다.


 곧 이어서 두 번째 치료가 끝나고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동생과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가서 벤치에 앉아있었더니 병실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어딜 가든지 우리 둘만 있도록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요즘 동생 얼굴에 여드름이 계속 올라와서 짜고 있는데 일그러진 동생의 표정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냥 여드름을 짠 거라고 말하니 아주머니들은 동생으로 빙의해서 아프다고 하지 말라며 대신 대답을 했다. 간혹 가다가는 커튼 너머로 말을 거는데 동생에게 묻는 혼잣말인지 내가 답변을 해줘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주머니들은 동생을 3살짜리를 보듯이 귀여워하는 것 같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네블라이저를 해주고 영양식을 넣기 전에 바나나  개를 먹였다. 날이 갈수록 씹고 삼키는  좋아지는  같다. 바나나를 먹이면서 동생과 웃고 들고 있으니   아주머니들이 우리 주변을 기웃거리며 커튼을 쳤다. 아주머니들은 동생이 씹고 삼키기만 해도 칭찬을 해주기 일쑤였고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주면 연예인을 만난  마냥 즐거워했다.


 우리 옆 칸에 있는 자칭 울보 똥쟁이 할아버지는 자신을 돌봐주는 간병인이 동생에게 관심을 보일 때마다 헛기침을 하며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무엇이 서글픈지 요즘 들어 자주 눈물을 보였다. 그래도 내 동생을 만날 때면 누구보다 씩씩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빨리 나아서 집으로 가라고 말해준다. 할아버지가 동생을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할아버지라고 한번 해보랬더니 겨우겨우 입 밖으로 할아버지라는 단어를 꺼냈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은 부를 필요가 없다며 엄마나 누나를 먼저 부르라고 했다. 동생과 할아버지는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대화 아닌 대화를 했는데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으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슬슬 동생이 말을 하게끔 연습을 시켜야 해서 정확한 의사표현을 할 때까지 계속 물어본다. 그러면 간병인 아주머니가 그만하라는 듯이 옆에 와서 동생이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고 대신 대답해 준다. 하지만 눈을 깜박이는 걸로 남들과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을 테니 개의치 않고 다시 말로 표현하도록 시킨다. 이럴 때 보면 누가 동생의 보호자인지 잘 모르겠다.


 저녁에는 항상 하는 일이 있다. 동생의 침대에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도록 대화를 걸고 손과 발에 지압을 해준다. 동생이랑 그렇게 놀아주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자기 전에 기저귀까지 갈아주고 재우면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 오늘은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난 덕분에 빨리 씻고 잠시 외출을 했다. 저녁에 요플레와 방울토마토만 먹었더니 배가 고파서 햄버거를 사러 나갔다.


 8시가 조금 넘어서 병원 밖을 나갔는데 바깥과 안은 풍경이 사뭇 달랐다. 어둠으로 고요했던 병실과는 다르게 네온사인 불빛과 술에 취한 사람들로 밖은 시끌벅적했다. 모두들 한잔씩 걸치고 신이 나 보이는 듯한 거리 사이에서 내가 마치 회색분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게 억울하거나 싫었다기보단 그냥 걸어가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평소라면 지금 이 시간에는 어둠 속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너무나도 상반되는 장소로 나오니 이질감이 느껴졌다.  


 원래라면 나도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처럼  속에 어울려서 아무런 걱정 없이 일상을 보냈었는데 지금은  단순했던 일상이 나에게 미래의 꿈이 되어버렸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몰랐다. 평범한  그저 지루하기만 했고 특별한 삶을 동경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은  볼일 없다고 여겼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거라 믿으며 낭비했던  같다.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좋은 것을 가지고 싶다는 소원을   있을 때는 현실이 나름  만했다는 뜻이라는 것을 말이다.


 건강을 잃으면 돈을 많이 번다거나 좋은 물건을 갖고 싶다는 거창한 소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당장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인 요건들이 충족이 안 되니 자아실현까지 바랄 틈이 없어진다. 젊을 때부터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허투루 듣고 흘려보냈는데 건강을 잃으면 자유를 잃은 것과 매한가지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다. 동생과 함께 퇴원을 할 때쯤이면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병원 안에서 인생에 대한 끝없는 성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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