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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99 - 고난 속 성장

2023년 5월 11일 목요일


 오늘은 너무나 피곤한 날이었다. 방사선 촬영과 혈액검사 그리고 소변검사까지 해야 했다. 재활을 받는 도중에는 첫 시간부터 설사가 바지에 새서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아직도 설사가 멎지 않아서 큰일이다. 재빨리 기저귀와 바지를 갈아입히고 다시 재활을 받으러 내려갔다. 동생을 작업치료실로 데려다준 후 쉴 틈 없이 다시 병실로 와서 침대와 베개 시트를 갈았다.


청소를 끝내고 간이침대 위에 놓인 중간 진료비 수납 계산서를 살펴봤다. 엄마한테 영수증 사진을 보냈더니 실손보험을 청구할 예정이라며 입원확인서랑 세부 내역서를 발급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오늘이 부산에 온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에 업로드를 했다. 간이침대에 앉아서 그림을 한창 그리고 있다가 동생을 데리러 내려갔다.


 경사침대에 세워 놓고 옆에 있던 치료사에게 잠시 동생을 지켜봐 달라고 부탁한 뒤 수납을 했다. 서류를 다 챙겨서 병실에 갖다 놓고 동생한테로 다시 가보니 다행히 졸지 않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서 동생을 살피며 그림을 그리고 글도 수정했다. 가뜩이나 휴식 같지도 않은 시간인데 나는 그걸로 부족해서 할 일을 더 만들고 있었다.


 오전 재활을 마치고 내려왔더니 간호사가 오늘 소변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기다란 비닐과 계량컵을 건네주었다. 비닐은 어떻게 착용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접착 부분을 살에 붙이고 성기를 끼우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이 소변 주머니가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잘 붙어지지도 않는 걸 억지로 붙여서 비닐을 덮어놓고 기저귀를 채웠다. 그랬더니 오후 재활 시간에 바지에 소변이 새 버려서 다시 병실로 올라와야 했다.


 오늘만 재활 시간에 두 번이나 병실에 들락날락거렸다. 기저귀를 갈고 시간을 보니 언어치료가 15분 정도 남아있어서 부랴부랴 재활을 받으러 이동을 했다. 그 뒤에 바로 자동하지 치료도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혈액검사와 방사선 촬영을 받으러 갔다가 재활을 받으러 향했다. 결국 소변검사는 진행하지 못했다. 다시 씌운 비닐에도 남은 소변이 한 방울도 없이 기저귀에 다 새 버렸다. 간호사는 내일 다시 소변검사를 하면 된다고 하는데 과연 계량컵에 소변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루종일 정신이 없어서 넋이 나간 상태로 있었는데 3년 전에 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며 수업을 가르쳤던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20살이 된 지금 대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지, 자퇴를 해야 될지 고민이 된다며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도 매년마다 꾸준히 연락이 와서 대학에 진학한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내가 누구를 조언할 처지가 맞나 싶었다. 나도 내 미래에 대해 갈팡질팡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인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각자 할 일이 있어서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도 대학을 반드시 나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해봤다.


 내 경험을 빌리자면 나는 대학을 나와서 득이 된 게 더 많기에 자퇴를 하지 말라고 만류하고 싶었다. 그건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교직이수가 됐기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고, 제자는 시험을 쳤는데 학점을 보지 않아도 교직이수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아직 정확한 상황을 몰라서 그 어떤 조언을 해줄 수가 없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려면 대학을 나오는 게 유리할 것이고, 자신만의 재능을 살리거나 사업을 시작할 것 같으면 일찌감치 사회에 빨리 나와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 사회에 나와서 경험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결국 인생의 결정은 남이 아니라 본인이 해야 되는 것이기에 자퇴를 하면 하고 싶은 게 있는지만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은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제자가 던진 질문 하나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는 힘들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세상을 살아갈 방법은 많을 것이고 대학을 나오면 거기에 맞는 세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 없이 자퇴를 하는 것은 절대 반대다. 사소한 선택이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게 내 인생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일단 갑자기 생겨난 고민을 접어두고 나는 지금 현재에 집중했다. 오늘은 생각도 많아지고 몸을 혹사시켜서 그런지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5시에 모든 재활을 다 마치고 동생을 샤워실로 끌고 갔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어깨보를 씌었다. 그리고 샴푸 대야를 어깨에 걸치고 머리를 감겼다. 너무 무식하게 물을 부어서 수건과 어깨보를 한 게 소용도 없이 옷이 다 젖어버렸다. 결국은 윗옷을 다시 갈아입히고 머리를 말려주었다.


 동생의 저녁을 챙겨주고 나는 옆에서 뻗어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군것질거리만 조금 먹다가 그마저 질려서 다 먹지도 못했다. 병실 사람들은 내가 먹는 것도 시원찮게 먹는데 새벽까지 안 자는 것을 보고 몸이 축날까 봐 걱정을 하며 먹거리를 챙겨주었다. 계속 12시가 넘어서 잠들고 6시쯤 일어나면서 낮잠도 안 자고 하루종일 깨어있다 보니 피로가 누적이 됐나 보다. 원래라면 저녁 시간에 동생 침대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영상만 틀어주고는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어디가 아프냐고 걱정을 했다. 평상시에 누워있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저녁 시간에 누워 있는 걸 처음 본다면서 쉬엄쉬엄 하라고 말했다.  내 욕심은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간병도, 글도, 그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다. 아직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건 없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뿐이었다.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아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지금 몸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환기가 되는 느낌을 받고 있다. 분명 신이 있다면 앞만 보고 저돌적으로 달리기만 했던 나를 멈춰 세우는 방법  이게 가장 최선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간병을 하는 동시에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얻었다고 생각하니 최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속에서 많은  깨닫고 생각만 하던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  순간이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는 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병원 밖을 나갈 쯤엔 한층  성장된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볼  있을  같다.   


   

인스타: 스토림 st0ryim (0은 숫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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