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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0 - D-100

2023년 5월 12일 금요일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간호사는 소변을 받을 비닐 주머니를 건네주고 갔다. 오늘은 반드시 소변 검사를 성공시켜야 한다. 우선 동생을 씻기고 비닐 주머리를 붙였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종이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서 비닐 입구를 동여맸다. 분명 오전 재활을 가기 전에 한 번쯤은 소변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여기에서 하루 일과를 조금 바꾸었다. 원래는 저녁에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일기 쓰고 전에 써놓았던 일기를 수정해서 오전 12시가 넘으면 업로드를 했다. 그런데 요즘은 12시까지 버티지를 못해서 일기까지만 쓰고 잠이 든다. 그리고 아침 준비가 다 끝나는 대로 글을 검토하고 브런치에 올린다. 인스타툰은 일기처럼 맨날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월, 수, 금에만 업로드를 하기로 정했다. 그렇게 점차 머릿속에 있던 목표를 떠올리며 방향성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오늘은 9시부터 재활이 있었는데 아침밥과 약을 다 먹이니 8시 40분쯤이었다. 마지막으로 내려가기 전에 기저귀를 확인해 봤더니 또 설사를 했다. 바지를 내리면서부터 눈앞이 깜깜해져 왔다. 설마 이번에도 소변검사가 실패로 돌아갈까 싶어서 소변 주머니부터 얼른 확인하려는데 비닐 겉면에는 설사로 질퍽하게 뒤덮여있었다.


 너무 아찔하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설사가 묻은 비닐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안을 확인했더니 굉장히 소량으로 소변이 남아있었다. 20ml도 안 될 것 양을 겨우 모아서 계량컵으로 옮겨 담았다. 더럽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진저리 치면서도 열심히 자기 설사를 닦아주는 나를 보고 동생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동생에게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는지 물었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겨우 수습을 했다. 시간은 벌써 9시가 되었고 이제 기저귀만 채우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을 날 바라보는 쪽으로 돌려 눕혀 놓고 기저귀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묻어 나오는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고 있었는데 내 다리로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곧 깨달았다. 순식간에 소변이 내 바지와 신발 그리고 바닥을 적셨다. 그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사고를 쳐놓고 미안하면서도 내 반응이 웃기는지 머쓱한 듯 웃어 보였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침대시트는 젖었지만 새 기저귀과 옷은 젖지 않고 무사했다. 그 순간 잠깐 생각했다. 깔개매트에 고여있는 소변을 계량컵에 옮겨 담아 보면 어떨지 말이다. 고민해 보다가 이건 그냥 상상으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지금은 이 사태를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다. 겨우 닦아놓은 몸을 다시 닦이고 재빠르게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를 입혔다. 재활시간에 늦어서 뒤처리도 수습하지 못 한채 서둘러서 내려갔다. 동생을 재활실에 내려놓고 재빠르게 병실로 올라갔다. 침대시트를 갈고 소변이 흥건한 바닥을 닦아냈다. 사방으로 튄 소변을 닦아내느라 애를 조금 먹었다. 알코올을 뿌려가며 소독을 했다. 그러고 나선 소변으로 젖어버린 옷을 새로 갈아입고 다시 1층으로 향했다.


 이 사태를 옆에서 지켜보던 병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고생이 많다며 나중에 동생이 깨어나면 이 사태를 전부 다 이야기하라며 말했다. 나중에 동생이 정 못 믿는 눈치면 자기들이 증인으로 나서 주겠다고도 한다. 동생은 오늘 나에게 소변을 발사한 것을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 병실에 있는데 간병인 아주머니가 남편을 돌보는 아주머니에게 농담으로 전생에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 병시중을 드냐고 말했다. 그걸 듣고 내가 작은 목소리로 동생에게 그럼 나는 전생에 행성 하나를 날린 것 같다고 말했더니 간병인 아주머니가 내 말을 들었나 보다. 동생을 간병하는 누나는 전생에 도대체 나라 몇 개를 팔아먹었길래 이렇게 병시중을 드냐며 농담을 던졌다. 진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다 그걸로 부족해서 행성 하나를 파괴시킨 게 분명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많았는데 각종 검사를 하느라 바쁜 날이기도 했다. 오전 재활을 마치면 다음 재활까지 1시간 반 정도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 시간에 작업 치료 검사가 있어서 점심을 바로 먹지 못했다. 오전 마지막 재활이 끝나자마자 바로 내려가서 검사를 진행했다. 해당 연도, 오늘 날짜, 계절 등을 질문해서 해당되는 것을 손가락으로 짚게 하면서 상태를 체크했고, 악력 검사와 손동작이 어디까지 되는지도 확인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애매하다. 몇 가지는 맞고, 몇 가지는 틀렸다. 여기는 부산인데 서울을 가리키고, 계절은 여름이라고 했다. 우리가 있는 병원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다. 모르는 게 당연한가 싶으면서도 인지가 제대로 돌아왔다면 알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해서 긴가민가 했다.


 검사는 30분 정도 이뤄졌고 끝나고 나서는 재빨리 병실로 올라가서 밥부터 먹였다. 오후 재활까지 1시간도 채 남지 않아서 마음이 급해졌다. 영양식이 들어가려면 적어도 1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빨리 넣다가 또 설사를 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피딩 속도를 올렸다. 불안한 마음에 재활을 가기 전 기저귀를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 다행히 설사가 또 나오지는 않았다.


 동생이 재활을 받을 동안 나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나에게는 지금 재밌는 세상이 하나 열린 것 같다. 인스타에 그림을 올리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재미가 들렸다. 이런 내가 지금 주의해야 할 점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천천히 즐기면서 간다는 다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하게 사는 건 이제 내려놓았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재활이 끝나고 나서는 비어있는 시간 동안 담당 주치의에게 진료를 봤다. 오늘은 정말 쉴 틈 없는 날이다. 의사는 요즘 동생이 어떤지 질문을 하며 자세히 살펴보더니 약을 하나씩 줄여보기로 했다. 얼마 전에 왼쪽 종아리에 종기가 올라와서 항생제를 처방받았는데 그 약의 부작용으로 설사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종기도 어느 정도 아물었으니 항생제는 끊기로 하였다. 그렇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더 받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동생 바지가 축축해진 걸 확인하고 다시 병실로 올라가서 기저귀를 갈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소변이 샌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기저귀를 열어보니 너무나도 깨끗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전혀 샌 흔적이 없는데 분명 바지는 소변으로 젖어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다. 간병인 아주머니도 가끔가다 그런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 희한하다. 기저귀를 갈고 다시 재활실로 내려갔다. 오늘만 몇 번째 올라갔다 내려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왼쪽으로만 늘 기울어져있던 고개가 정면을 바라보며 꼿꼿하게 버티는 시간이 늘어났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동생이 이제 앞을 본다면서 놀라워했다. 혼자 앉아서 허리힘으로 버티고 있는 시간도 늘고 차츰차츰 모든 게 괜찮아지고 있었다. 사람이 하나를 주면 둘을 원한다고 욕심이 생긴다. 이제는 말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고 나랑 대화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녁에는 동생과 침대에 앉아서 나 혼자 조잘대다가 휴대폰을 쥐어줬다. 동생은 이내 휴대폰 지도앱을 열더니 우리가 있는 위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고개를 숙여서 폰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으로 위치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지도 보는 것에 집중하느라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방구석 국내 탐방을 즐겼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동했나 싶어서 폰을 들여다보니 우연인지 알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보고 있던 위치는 양산과 부여였다.


 양산은 고향이고 부여는 동생이 쓰러진 당일 낮까지 있던 곳이었다. 여기는 네가 마지막으로 여행을  곳이 아니냐고 물으니 피식 웃기만 한다. 이걸 보면 어디까지 기억을 하고 어디까지 기억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이름을 물어봤는데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대답을 하더니 오늘은 말을 하지 않았다. 설마 기억이  나는 거냐는 나의 질문에 어이없다는  웃으면서도 기억이   나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면서 말을  하는 건지 몰라서 말을  하는 건지 그걸 몰라서 답답했다. 이름이야 다시 알려주면 그만이고 잃어버린 기억은 계속 회상시키면 된다. 지금은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회복이  우선이니깐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해 나가야  과제가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보란 듯이 함께 헤쳐나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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