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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0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1 - 고민과 선택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오늘은 주말이지만 8 반부터 재활이 시작돼서 빨리 준비해야 했다. 6시에 일어나서 몸부터 닦이고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혔다. 동생은 그런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힐 때면 , 다리를 들어주곤 한다.  덕분에 날이 지날수록  입히기가 수월해지는  같다. 하루빨리 마비된 오른쪽도 돌아온다면 이제 스스로  입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오늘은 평일보다 비교적 여유로운 날이었지만 재활 시간에 설사를 하는 것은 여전히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자동하지를 진행하고 전기 치료를 하고 나서  설마 하고 바지를 봤더니 설사가 새어 나와 있었다. 바로 뒤에 도수치료가 있었는데 결국은 기저귀를 가느라 빠질 수밖에 없었다. 병원 엘리베이터는  3대라서 항상  앞은 휠체어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잘못하면 엘리베이터만 10 가까이 기다려야  때도 . 오늘도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시간을 잡아먹고 기저귀를 갈고 내려 10 밖에  남았다. 10분이면 휠체어에서 일으켜 세우고 베드에 앉히면 끝날  같아서 도수치료빼고 바로 작업 치료 검사를 받으러 갔다.


 작업 검사는 동작을 지시했을  신체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검사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왼쪽은 어느 정도 움직일  있었지만 오른쪽은 꼼짝도  한다. 왼쪽부터 검사를 진행하고 치료사가 오른손을 움직여보라고 했는데 자꾸만 왼쪽을 움직인다.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쪽은 미동도 없고 엉뚱한 쪽이 움직이니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동생을 쳐다보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한 눈빛을 하고 있다. 동생의 표정이 마치 자기는 요구한 대로 했는데  그런 반응이냐고 묻는  같아서  웃겼다.


 오전 재활은 12시 10분까지 진행됐는데 그 사이에 엄마와 할머니가 병원에 면회를 왔다. 엄마와 잠시 교대를 하고 할머니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많이 걷지 못하기도 하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가까운 식당을 찾아서 갔다. 며칠 전에 떡볶이를 사러 가면서 오리 불고기를 파는 식당을 발견했는데 거기를 가보기로 했다. 병원이랑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1, 2분 정도 걸으니 도착했다. 우산을 접고 식당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예약을 했냐고 묻는다. 그래서 안 했다고 하니 지금은 자리가 만석이라고 했다. 그럼 포장은 되냐고 물었더니 익혀서 주는 게 아니라 생으로 포장이 되는 거라고 해서 포기하고 나왔다.


 할머니와 멀리까지 가기는 힘들어서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바로 옆에 대패 삼겹살을 팔길래  찾아보지 않고 들어가서 주문을 했다. 오리 대신 돼지로 바뀐 것일  큰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약까지 해서 먹을 정도라고 하니 오늘 허탕 친 식당이 궁금하기는 했다. 다음에 동생이 음식을 먹게 되는 날이 오면 가족들과 함께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행히도 갑작스럽게 들어오게  식당음식 맛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면 병원에서 컵밥만 먹다 보니 미각을 잃었을 수도 있다. 지금 그저   나온 따끈한 음식들이라면  맛있다고  같다.


 오후에는 재활을 1시간만 진행한다. 오늘 동생을 치료실에 옮겨주는  엄마 담당이었고 나는 할머니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할머니에게 신기한  보여주겠다면서 아이패드로 배경화면을 만들고 휴대폰으로 전송시켰다. 내가 만든 캐릭터가 어느새 배경화면이 되어 있는  보며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같은 마을에 살았던 이웃 할머니는 내가 나중에 커서 만화작가를 하면 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는데 기억이 나는  같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나 그리기를 좋아했었고 이웃 할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내가 그림 그리는  보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재능은 초등학생까지 만 이었던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같은 동급생끼리 엇비슷했던 실력은 중학생 이후부터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친구들과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단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특별활동시간에는 십자수, 클레이아트, 종이접기부 같은 것만 신청을 했었지만 말이다.


 단순하게 그림만 그리는 미술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학교에서 열리는 그리기 행사에는 매번 참가해서 운이 좋게도 상장을 받았었다. 복도 게시판에 매년마다 롭게 나의 그림이 걸려있는  보면서 속으로 혼자 뿌듯해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지금은 어중이떠중이가 되었다.


 초등학생 때 나만의 아지트는 학교 근처에 있는 아트박스였다. 학원을 가기 전에 시간이 남으면 오늘은 어떤 문구류들이 들어왔는지 살펴보는 게 내 일과였다. 형형색색의 볼펜들이 꽂혀 있는 걸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했다. 어릴 때부터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보다는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더 좋아해서 그런지 문방구는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특히 내가 어릴 적에는 리락쿠마라는 캐릭터가 유행할 때였다.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관련된 굿즈를 모두 모아야 직성에 풀려서 리락쿠마가 그려진 노트, 필기구, 필통, 메모지는  구매했던  같다. 스티커 모으기도 취미였다. 사용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보물창고였던 서랍에 넣어놓고 몰래 꺼내보는  나에겐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


 그러다 어느샌가부터 나만의 놀이터였던 아지트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부터는 네일아트에 심취했다. 이제는 필기구 대신 네일 폴리쉬를 끌어다 모았다. 그렇게 나는 그림과도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미용분야 진로를 결정했다. 하나에 꽂히면 수집하는 나의 습관이 지금의 진로를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  순간  인생에서 다시 한번  변화가 있을  같은 예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헤어, 피부, 네일, 메이크업을 전부 배워봐도 네일이나 메이크업과 같이 나만의 작품을 창작하는 분야가 재밌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사회는 정형화된 기술과 트렌드를 요구했고 나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기회는 없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활동에 가장 의미를 크게 두는 나로서는 나의 선택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림과 멀어졌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언젠가 나만의 창작물이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카톡이 생기면서 제일 먼저 했던 건 이모티콘을 모으는 일이었다. 하나에 꽂히면 그 캐릭터를 주야장천 사 모으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걸 다시 발견해 냈다.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쩌면 남들보다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걸 말이다.


 할머니는 내가 만든 캐릭터를 보며 귀엽다고 말했다. 지금은 할머니한테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재밌게 즐기면서   있는 일이 다시 생겨서 좋을 뿐이다. 실력이야 하다 보면  테니 상관없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개성은 다양하니깐 나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병원에 있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대기실에서 여러 생각이 교차할 때쯤 모든 재활이 끝이 났다. 병실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지하에 있는 면회실로 자리를 옮겼다. 할머니는 병원에  때마다 무슨 이런 일이  있냐며 안타까워 죽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동생도 옆에 있다가 감정이 공유되는지 가만히 있다가 이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울먹였다.

 

 가족들은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힘들어서 용을 쓰는 건지 아니면 감정에 북받쳐 올라서 그러는 건지  길이 없었기에 동생의 상태를 계속 살폈다. 그런데 후자가 맞는  같다. 엄마와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고 병실에 올라와서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는 옛날에 가족끼리 여행을 가서 있었던 일부터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일, 싸웠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동생도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건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여전히 나 혼자만 하는 대화였지만 동생이 즐거웠으니 됐다.


 병실 사람들은 야구에 집중한다고 빴고 8 조금 어서 야구가 끝났는지 하나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도 슬슬  준비를 하기 위해서 동생의 이를 닦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 동생이 설사를 두 번씩이나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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