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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2 - 느슨해짐

5월 14일 일요일


 오늘은 10시 40분에 재활이 있을 예정이다. 그렇지만 늦게 일어날 수는 없었다. 대신 평소와 똑같이 6시 반에 일어나서 느긋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씻고 아침밥을 먹고 준비가 다 끝났는데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그 사이 나는 어젯밤에 미뤄뒀던 글을 쓰면서 틈틈이 동생이 뭘 하고 있는지 살폈다. 오늘따라 동생은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땡글땡글하게 뜨고 있었다.


 재활을 가기 전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다행히 바지에는 새지 않았지만 여전히 설사가 나왔다. 오늘은 영양식도 천천히 넣었는데 정말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겠다. 설사를 하면 기저귀를 갈기가 더 까다로워진다. 일반 대변보다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범위도 넓고 심지어 앞쪽까지 침범해 있다. 벌써 일주일가량 설사와의 싸움을 하는 중이다. 동생이 아프다는 표현을 안 해서 원인은 미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오늘은 오전까지만 재활을 받으면 바쁜 일정은 없었다. 치료사가 작업치료를 15분간 진행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15분간 맡아서 동생 운동치료를 도와주었다. 전에 하던 것처럼 고리를 막대에 넣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허리를 숙이고 팔을 앞으로 뻗어서 고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해 주었다. 근육이 점차 생기다 보니 이제는 팔도 잘 올라가고 앞으로 조금씩 숙일 수도 있었다. 하루하루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들이 보인다. 치료사는 병실에서도 이러한 동작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라고 말했다.


 그다음에는 전기 치료를 받고 마지막으로 자동 하지를 진행했다. 자동하지는 자전거 페달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기계였는데 끝나기 5분 정도가 남았을 때는 동생이 스스로 페달을 밟고 있었다. 치료사들이 동생을 보며 직접 돌리고 있는 거냐고 칭찬을 했다. 내가 의아해하면서 바라보고 있으니 능동모드는 본인이 스스로 페달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제는 스스로 페달을 돌리는 걸 보니 앞으로가 기대되면서 기특했다.


 재활을 다 끝내고 로비로 나와 창 밖을 바라보니 날씨가 화창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병실로 바로 올라갈지 잠깐 산책을 하러 나갈지를 물었다. 나가고 싶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길래 오늘은 병원 안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휠체어를 끌고 식당 골목을 돌아다녔다. 동생은 수많은 건물과 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리쬐는 햇볕을 따뜻하게 받으면서 길거리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동생한테도 이번 산책은 자극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아마 앞으로는 평범한 일상 속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더 노력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30분 정도 산책을 하고 병실로 갔더니 계란찜과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우리가 오는 걸 보더니 동생한테도 계란찜을 먹이면 된다고 했다. 영양식을 넣기 전 침대를 바짝 세워서 계란찜을 한입 주었다. 처음에는 맛을 음미하는 듯 천천히 씹다가 속도가 빨라졌다. 동생에게 숟가락을 쥐어주고 직접 떠먹으라고 했더니 느린 동작으로 계란찜이 올려진 숟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갖다 댔다. 요즘에는 잘 따라줘서 그전처럼 밥을 먹이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확실히 많이 변한 것 같다.


 이제는 스케줄이 없어서 동생을 옆에 두고 그림을 그렸다. 가만히 놔두면 평소처럼 잠을 잘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잠도 안 자고 멀뚱하게 커튼만 바라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동생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할 일을 해나갔다. 동생을 계속 한 자세로 둘 수만은 없어서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도록 옆으로 돌렸다. 그런데 고개는 빳빳하게 정면만을 바라보길래 손을 흔들며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게 했다. 아래쪽을 보지 않아서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내가 밑에 있다고 손짓을 하니 피식하고 웃기만 했다.


 그러다 동생이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침대 리모컨을 눌렀다. 자기가 버튼을 누르니 침대각이 세워지고, 다시 한번 눌렀더니 또 세워진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번에는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 모습을 보고 직접 자세를 바꾸고 있는 거냐고 물어보니 동생은 웃으면서 계속 버튼을 눌렸다. 거의 앉아있다시피 침대각을 올려놔서 내리는 버튼에 손가락을 대주고 누르게 시켰다. 직접 버튼을 눌러 다시 내려가는 걸 보고 있으니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동생이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나 싶어서 놀라웠다.


 그러고 나서 잠시 낮잠을 자고  났다. 중간에도 수시로 깨서 동생을 확인했는데 그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결국은 내가 자고 있을  동생은 혼자 깨어 있었다. 확실히 평일과는 달라 보였다. 평소에는 워낙 재활이 많아서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피곤해서 바로 잠들기 일쑤였는데 주말에는 낮잠  번을  잔다. 내가 너무 아무것도  하는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래도 되나 싶었다. 치료사가 병실에서도 운동을   있게 도와주라는 말이 떠올라서 공을 쥐고 팔을 뻗어서 잡도록 시켰다.


  근데 동생의 표정이 마치 갑자기 여기서까지 왜 이러냐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냥 나랑 놀아준다고 생각하고 한번 해달라고 말하니 할 수 없이 해주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내가 동생을 운동시키며 놀아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동생이 나랑 놀아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한참 동안 잘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생의 코에서 영양식이 흘러나왔다. 영양식이 왜 콧구멍에서 흘러나오는지 황당해서 피딩을 중단하고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와서 보더니 콧줄이 너무 많이 빠져나온 것 같다며 뺐다가 다시 끼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보니 콧줄이 어느샌가 길게 늘어나 있었다. 처음 연결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하물며 영양식이 들어갈 동안 앞에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던 내가 한심했다. 이렇게 되면 폐로 흡인될 위험이 있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간호사가 기침을 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있었냐고 물었다. 기침을 하거나 불편해하는 증상은 없었다고 말했더니 혹시나 증상이 안 나타났지만 흡인됐을 경우 나중에 열이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동생의 상태를 틈틈이 확인해 본 결과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내가 요즘 병원 생활이 익숙해지더니 나태해졌나 보다. 앞으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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