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덤벙돈벙 Jun 1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3 - 도망가고 싶은 날

5월 15일 월요일


 오늘은 유독 실수가 많은 날이라서 도망가고 싶었다. 항상 재활을 가기 직전에 설사를 싸는 동생과 20분 전부터 나타나는 이송직원분은 나의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것 같으니 잠시 후에 와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렇게 되니 아침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제발 이 시간 말고 다른 시간에 배변활동을 해주면 안 되겠냐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기저귀를 갈고 있었는데 아직 옆에 계셨던 이송직원분이 내 말을 듣고는 웃으며 그게 가능한 일이겠냐고 말을 하셨다. 왜 하필 바쁜 아침마다 이러는지 세상에게 따지고 싶었다.


 결국은 기저귀를 가느라 첫 타임에 지각을 했다. 아침부터 녹초가 된 상태로 침대 시트를 정리하고 어질러진 물건들을 치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설사를 하루에 한 번만 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이와 같은 전쟁을 또 치를 필요가 없었다.


 병실에 있다가 재활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내려갔다. 치료실에 가보니 동생이 이제는 고워크라는 기구를 잡고 서있었다. 뒤에서 치료사가 오른발을 앞으로 살짝 밀어주면 왼발을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서있을 힘조차 없어서 구부정하게 서있었는데 지금은 꼿꼿하게 서서 다리도 움직이는 걸 보니 신기했다.


 동생을 두 번째 치료실로 옮겨놓고 잠시 밖을 나왔다. 아침마다 먹는 거라고는 사과 반쪽이 끝이라서 오늘은 무언가를 먹어야 할 것만 같았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 두리번거렸지만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아서 근처에 있는 시장에 들렀다.


 입구로 들어서니 시장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아침이라 그런지 이제 막 문을 열고 준비를 하는 전포들이 많이 보였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들이 생선을 팔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게 익숙해졌지만 퇴원을 하고 나가게 되면 과연 내가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기에 지금이 가장 부지런한 순간일 것이다.


 시장을 둘러봐도 딱히 사고 싶은 게 보이지 않았다. 가다 보니 빵집이 보여서 대충 2개 정도 집어 들고 마트에 가서는 시리얼을 구매했다. 봉투에 넣지도 않은 채 달랑달랑 대충 양손으로 끌어안고 길거리에서 빵을 먹으면서 걸었다. 누가 보든 말든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허기진 배부터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동생을 데리러 갈 시간이 다 돼서 병원 정문 입구에 서서 빵을 급하게 입으로 욱여넣었다. 순간 내 신세가 초라하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내 인생 시련은 여기에서 모조리 다 끝내고 나갈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요즘에는 동생이 연하치료를 돕는 재활을 받고 나기만 하면 힘이 드는지 식은땀을 흘렸다. 체온도 혈압도 정상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간호사가 말해주길 아무래도 전기치료다보니 느낌이 이상해서 그런지 다른 환자들도 연하 재활을 받을 때 힘들어 하다가 병실로 옮기면 금방 멀쩡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 절실히 깨닫게 되는 중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 재활까지 다 끝나고 나서 동생 머리를 감기려고 샤워실로 들어섰다.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한 번의 실수를 시작으로 많은 실수들이 잠들기 직전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머리를 감기기 전만 해도 여유롭게 수건과 어깨보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샴푸대를 목에 두르고 열심히 샴푸질을 시작했다. 머리를 헹구려고 동생의 머리를 뒤로 젖혀서 물을 부었다. 모든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샴푸대에 연결된 호스가 빠지면서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헹구는 걸 잠시 중단하고 호스를 다시 연결했다.


 두피 헹구는 거에 열중하다 보니 옷이 젖는지도 어깨보에 물웅덩이가 생기고 있는지도 모르고 물을 부어댔다. 깨끗하게 헹궈진 두피를 보고 드디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뒤처리를 하려고 휠체어 뒤를 봤는데 열린 가방 안으로 어깨보가 들어가면서 물웅덩이가 생겨버렸다. 분명 하수구로 물이 빠지도록 호스를 연결했는데 샴푸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빠져 있었다.


 큰일 났다는 걸 직감하고 어깨보를 들어 올려 물을 버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대로 고여버린 물들이 가방 안으로 흘러 들어갔고 안에 있던 담요와 기저귀, 마스크들이 다 젖어 버렸다. 등에 땀이 나면서 어디서부터 수습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일단 가방에 들어 있는 물건을 빼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머리를 감기 직전에 가방에 아이패드를 넣어놓으면 물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빼놓은 게 신의 한 수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침수된 아이패드를 보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내일 방문하겠다고 한 휠체어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지금 정문에 있으니 휠체어를 교체해 주겠다며 내려오라는 전화가 왔다. 머리만 말리고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정말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몸은 하나인데 눈앞에 수습할 거리가 넘쳐나는 걸보고 식은땀이 흘렀다. 동생한테 사고를 친 것 같다면서 진짜 도망가고 싶다고 하니 무슨 상황인 지 알고 있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진짜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빠르게 동생 머리를 말려주고 침대로 옮겼다. 일단 저녁을 먹기 전에 네블라이저부터 먼저 해줬다. 옷도 갈아입히려고 했는데 휠체어부터 교체를 한 다음 해야 할 것 같다. 샤워실에 어질러놓은 것들도 치워야 하고 빨래도 돌려야 한다.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힘을 내서 수습했다. 정문으로 내려가서 휠체어를 교체하고 올라와서 샤워실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젖어버린 담요와 수건들은 세탁기에 돌리려고 세탁실을 향했다.


 그런데 세탁실이 먼저 와있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빨래하고 있던 옷을 들어 보이며 혹시 내 옷이 아니냐고 물었다. 3일 동안 세탁실에 방치되어 있길래 내 옷 같아서 손세탁을 하는 김에 같이 해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보여주는데 내 옷이 맞긴 했지만 나는 세탁실에 놓고 간 적이 없다. 일단 옷장을 다시 확인해 보니 옷이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동생이 내 바지에 소변을 누는 바람에 샤워실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던 적이 있다. 그때 옷만 후다닥 입고 나와서 재활실로 다시 내려가느라 깜박하고 있었는데 누가 그걸 발견하고 세탁실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3일 동안 옷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모를 정도라니 내가 너무 멍청해진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대각선에서 간병을 하는 아주머니도 병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기억이 감퇴되는 것 같다며 걱정을 했었는데 나도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새로운 자극이 없다 보니 뇌가 활동을 안 하고 있나 보다. 벌써부터 기억력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슬펐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있었던 일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마저 없었다. 역시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 때쯤 친구에게서 내가 올린 그림을 보니 위로가 된다며 연락이 왔다. 그 말에 나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수고한 나를 위해서라도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 병원 바로 앞에 있는 오돌뼈와 껍데기를 포장했다.


 시간은 어느덧 7시가 넘어서 남들은 저녁을 다 먹은 상태였고 혼자 먹으려니 눈치가 보였다. 먹는 도중에 세탁이 끝나서 빨래를 널고 영양식 한팩이 다 들어가서 새 걸로 끼웠는데 무엇이 문제였는지 걸이에 걸자마자 호스와 영양식이 분리되면서 영양식이 바닥에 콸콸 흘러내렸다. 끈적한 바닥을 닦아내면서 정말 오늘 나한테 왜 이러는지 묻고 싶었다. 이런 상황들이 너무 짜증 나고 힘들었는데 힘들다는 말도 안 나왔다. 사고를 수습하고 나서 다시 음식을 먹으려니 이미 식어버린 상태였다. 그래도 야무지게 다 먹었다.


 이제는 정말 하루가 끝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화룡정점으로 하필 기저귀 갈고 있을 때 동생이 소변을 눠서 옷과 시트가 다 젖었다. 오늘 상의만 해도 세 번, 시트도 두 번이나 갈았다. 마지막까지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9시가 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현실에 초연해지는 느낌이다. 더 이상은 내 상황을 부정할 힘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도 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지금을 살아낼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