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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4 - 반복되는 일상

2023년 5월 16일 화요일


 요즘엔 12시가 되기 전에 잠들어서 인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오늘은 8시 반에 재활이 있어서 서둘러 준비를 해야 했다. 바쁘지만 몸을 닦여주면서 등 마사지도 하고 크림도 발라주었다. 동생이 뽀송하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반면 나는 땀에 절어서 녹초가 된 채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역시나 재활을 가기 전에 설사를 했다. 분명 설사약을 처방받아서 먹였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설사를 하면 항상 기저귀 밖으로 새서 바지에 묻는 것도 문제고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장운동이 일어나는 시간이라는 것도 난감했다. 그래서 첫 타임은 제시간에 가는 법이 없었다.


 급하게 재활 치료실로 동생을 옮겨놓고 병실로 올라와서 어질러진 것들을 치웠다. 항상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생각이란 걸 하지 않게 돼서 그런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요즘엔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당이 당긴다. 사람이 신체가 너무 지치면 배가 안 고프다. 문제는 배는 안 고픈데 달달한 게 먹고 싶어 져서 군것질을 하다 보니 살이 빠지진 않았다.


 동생은 점점 살이 오르는 것 같다. 다리를 보니 뼈밖에 없었는데 어느샌가 근육도 붙었고 힘도 많이 생겼다. 어쩐지 요즘 들어 휠체어에 태울 때 힘겹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살이 찌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오전 재활이 끝나고 기저귀를 확인했더니 멈출 것 같았던 설사는 여전히 나오고 있었다. 오늘만 두 번째다. 동생의 상태을 살펴보면 설사를 하는 것 빼고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픈 곳이 있냐고 물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며칠째 설사를 계속하는 바람에 씹는 연습도 못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오후 재활을 할 때면 30분 정도 쉴틈이 생긴다. 그때는 밖으로 나가서 햇빛을 쬐어준다. 아무래도 건물 안에만 있으면 햇볕을 받을 일이 없으니 시간이 있으면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바깥 구경을 시켜주었다. 물론 나가자고 했을 때 동생이 거절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동생한테 실컷 의견을 물어봐놓고 결국은 내 마음대로 했다.


 최근 들어서 동생이 의식을 많이 되찾은 듯했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은 의식이 돌아올 때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상실감이 빠지거나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항상 동생에게 말한다. 팔, 다리가 잘린 것도 아니고 멀쩡하게 다 있으니깐 충분히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다고 말이다.


 어차피 내가 이렇게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고 귀여워해주는 건 이번뿐이라고 다 낫고 나면 그럴 일이 없을 테니 지금을 즐기라고 말했다. 그러면 동생은 내 말을 듣고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다만 의사표현이 잘 안 될 뿐 확실하게 대화 내용이나 의미들을 전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을 틀어주면 웃기는 부분에서는 웃고 재미없는 부분에서는 웃을 생각을 안 한다. 표정도 다양해지고 집중력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의식이 돌아오는 중인만큼 중간중간 자신의 처지를 서글프게 여기는 표정도 보인다. 그럴 때마다 동생의 감정이 밑바닥을 치지 않도록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평소처럼 장난을 친다. 그러면 울상이 되었다가도 황당해서 웃어 보였다.


 지금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한 시기이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게 아니라 회복이 우선이라며 동생을 세뇌시키는 중이다. 이런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가도 자기 전에 콧줄을 다 빼버리는 걸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참 종잡을 수 없는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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