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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5 - 만반의 준비

2023년 5월 17일 수요일


 오늘은 새벽부터 동생 콧줄을 끼우는 것부터 일과가 시작되었다. 콧줄을 넣을 때마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괴로워할 거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재활을 가기 전에 기저귀를 확인해 보니 웬일인지 대변을 누지 않았다. 그래서 모처럼 일찍 내려가게 되어서 바깥 구경을 시켜 주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동생이 딘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바지를 보니 이미 설사가 새어 나오고 있어서 다시 병실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오늘도 첫 시간에 지각을 했다. 서둘러 치료실에 동생을 내려놓고 병실로 올라가서 휠체어 방석을 세탁하고 시트를 갈았다. 정신없이 병실 청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동생을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다 됐다. 정리를 끝내고 동생을 옮겨 놓은 후에 나는 또 다른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내일 외래 진료를 가기 위해서는 2차 병원 의뢰서와 검사 기록지, 약처방전, CD가 필요해서 동생이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서류들을 하나씩 준비했다. 오전에 처방전과 검사 기록지, CD는 전부 받았고 의뢰서는 오후쯤에 줄 수 있다고 해서 기다려야 했다.


 이것저것 분주하게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오후 재활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동생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먼 곳까지 나가 보기로 했다. 병원 앞이 바로 술집 거리라 그런지 낮보다는 밤에 더 사람들이 붐볐다. 동생을 태운 휠체어를 끌고 우리 또래 사람들 틈으로 지나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한창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고 놀 나이에 우리는 이러고 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이 와중에 날씨는 왜 이리 좋은지 딱 놀기 좋은 날씨였다. 꽤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재활 시간이 다돼서 병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동생이 재활을 받는 동안 나는 의뢰서를 받고 내일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건을 담으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  나가는 외출에 아무 문제 없이 동생과 내가 무사할 수 있을지 심란해졌다. 만약을 대비해서 바지 여분을 하나 챙기고 기저귀와 물티슈, 비닐봉지와 장갑까지 담았다. 진료시간도 하필 10시라서 혹여나 이동 중에 택시 안에서 실례를 할까 봐 수만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보통 동생의 용변 시간이 8시 반에서 9시 사이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칫 잘못하면 밖에서 설사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가뜩이나 내일 대학병원 첫 방문이라서 처리해야 할 것들도 많을 텐데 설사까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미리 가본 경험자의 말을 듣기론 장애인 화장실이 마땅치 않아서 기저귀를 갈기 힘들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더 심란해졌다. 심지어 화창한 오늘 날씨와는 다르게 내일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고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왜 하필 비까지 오는 것일까. 내일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보지 않아도 내 눈앞에 훤히 펼쳐졌다.


 불안한 마음에 안 챙긴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했다.  아무래도 내일 외래진료를 보러 간 병원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피딩팩도 챙겼다. 피딩을 하려면 주사기와 물도 필요해서 텀블러도 넣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의 짐가방이 왜 그렇게도 큼지막하고 무거웠는지 이제야 알겠다. 혹시나 몰라서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가방의 크기가 내 걱정의 무게처럼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두리발을 이용하려면 제일 중요한  동생 신분증이었다. 그런데 찾으려고 하니 어디에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엄마랑 교대를 하면서 신분증을 건네주었고 돌려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결국은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신분증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필요한 것이 없는지 정리를 하고 나서 문득 부산대학교병원 근처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에게 곧장 전화를 해보니 내일이 마침 공강이라서 병원으로 오겠다고 말했다. 구가 오겠다고 말해주니 혼자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는데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짐을 한창 챙기고 있을 때 아침마다 사과를 챙겨주셨던 아주머니께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일이면 병실을 이동한다고 말해주었다. 자기도 이동을 하고 우리 대각선에 있었던 분도 다른 병실로 이동할 것 같다며 마음에 드는 창가 자리로 옮기면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또 병실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


 저녁이 되니 엄마가 퇴근을 하고 바로 병원으로 왔다. 신분증만 주러 병원까지 오는 건 번거로운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동생 저녁을 다 챙겨준 후에는 엄마랑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동생한테 둘이 나가서 밥을 먹고 와도 되겠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동생이랑 놀고 있을 테니 편하게 먹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도 혹시나 심심할까 봐 영상을 틀어주고 밖을 나왔다.


 엄마랑 나는 길거리를 걸으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는 곰장어 식당으로 들어섰다. 곰장어는 먹을 일이 없어서 몇 년 만에 맛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사이다를 시켰는데 병으로 된 사이다가 나오는 걸 보고 정겨움이 느껴졌다. 식당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 있어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면서 엄마한테 실수를 연발했던 일을 조잘거리니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밥을 먹는 동안 양념이 옷에 튈까 봐 앞치마를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웬일로 밥을 먹을 때 음식을 한 번도 안 흘리고 지나가나 했다. 거의 다 먹었을 때쯤 남은 곰장어 하나를 집어 들고 먹으려는 순간 젓가락에 집혀 있던 곰장어는 어이없게도 앞치마와 내 옷 그 사이로 떨어졌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고 나 또한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넓고 넓은 부위 중 가슴팍에 걸쳐져 있는 앞치마와 상의 틈 사이로 음식이 떨어지는 일은 확률적으로 얼마가 될까. 그런데 나한테 실수가 일어나는 상황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긴 한데 이 모습이 웃겼다. 엄마는 나에게 벌어진 어이없는 실수를 보면서 쉽지 않은 일을 해낸다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엄마랑 단둘이 외식을 끝냈다.


 병원으로 돌아가보니 동생은 나와 엄마가 없는 동안에도 아주머니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침대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정지되어 있었는지 모르는 영상과 함께 말이다. 재생되지 않는 영상을 보며 이어폰을 귀마개처럼 가만히 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황당하면서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생한테 자기 전까지 내일 용변을 빨리 볼 수 있도록 노력을 하라며 세뇌를 시켰다. 제발 내일 큰 볼일을 처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외래진료를 보러 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비 오는 날 외출에다 설사까지 바지에 샌다면 정말 내가 도망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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