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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6 - 외래 진료

2023년 5월 18일 목요일


 오늘은 부산대학교병원으로 신경외과 외래 진료를 가는 날이다. 굳이 창문을 열어보지 않고 어스름한 병실의 분위기만으로도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간절한 나의 기도가 이루어졌다.


 일어나자마자 동생의 몸을 닦이려고 옆으로 돌려 눕히는데 용변을 눴다. 계속해서 일찍 볼일을 보라고 닦달한 보람이 있었다. 오늘은 무른 변이었을 뿐 심지어 설사도 아니었다. 그 광경을 보는데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동생의 용변이 이렇게 반갑긴 처음이다.


 동생이 아주 크나큰 일을 해내서 칭찬을 해주었다. 병실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고 덩달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도 응가를 싸고도 이렇게 칭찬받아 본 적은 신생아 때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동생이 아침 일찍 볼일을 본 덕분에 불안했던 마음을 한시름 덜어놓을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려면 두리발이라고 하는 장애인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택시는 전화 또는 어플에서 부르면 된다. 문제는 이용하는 사람이 많으면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출발하려는 시간보다 1시간 전에 콜을 해놔야 제시간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전 10시 진료를 받기 위해 7시 반에 두리발을 신청하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8시쯤 배차가 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실거리 2130m라는 문자가 도착하였다. 문자를 주고 나서도 도착하기 전에 준비해서 내려오면 된다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8시 20분쯤 두리발 택시에 첫 탑승을 할 수 있었다. 뒷좌석에는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안전벨트로 휠체어를 고정시켰다. 나는 중간 좌석에 앉아서 가는 내내 동생 상태를 살펴야 했다.


하필 얼마 전부터 목까지 받치는 경추 휠체어에서 벗어나서 등까지만 받쳐주는 휠체어로 교체를 했는데 실수였다. 휠체어를 타고 장거리 이동은 처음이었던 터라 고개가 자꾸만 뒤로 젖혀졌다. 특히 오르막길에서 차량이 정체되어 택시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로 정지되어 있을 때는 동생의 고개가 뒤로 꺾이듯이 넘어가서 뒷좌석으로 몸을 숙여서 뒷목을 받치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동생의 고개는 맥없이 뒤로 젖혀졌고 결국은 가지고 있던 담요를 이용해 동생의 목에 두른 뒤 넘어가지 않도록 앞으로 당기면서 잡고 있었다. 하필 출근 시간이라서 도로는 꽉 막혀서 병원까지 가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동생도 나도 택시 안에서 버티느라 진이 다 빠져버릴 때쯤 병원에 도착하였다. 병원이 복잡해서 찾기 힘들다는 병실 아주머니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신경외과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원무과에 가서 진료 접수를 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또 한 번 이동해서 의뢰서를 제출하고 CD등록을 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CD 등록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동생을 혼자 원무과 앞에서 잠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내려왔는데 방대한 자료 탓인지 생각보다 등록이 오래 걸렸다. 한 20분쯤이 지났는데도 절반 정도도 전송이 안 돼서 슬슬 혼자 있을 동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단 등록기에서 전송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불안한 마음에 올라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보는데도 거의 기절해 있다시피 고개가 뒤로 젖혀져 있는 동생을 발견하고는 기겁해서 뛰어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러고 있었던 것처럼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잘못된 건 아닌지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재빨리 고개를 바로 세우고 땀을 닦아주며 동생의 상태를 살폈고 휠체어를 끌고 1층으로 같이 내려갔다.


 방금 상황이 너무나도 아찔했고 나의 부주의함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혹시나 20분 동안 숨이 막혀서 기절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확인을 해봤다. 동생이 그러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젖혀서 숨을 쉬어보니 목만 아플 뿐 숨 쉬는 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러고 있어도 목만 조금 뻐근할 뿐 숨은 잘 쉬어지네. 그럼 괜찮아."

"피식"


 동생은  말을 듣고는 피식하고 웃음 지어 보였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 혼자 두는  안될  같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동생과 같이 CD등록기 앞에서 서있었다. 자료 어찌나 많은지 CD 등록하는 데에만 1시간이 소요됐다. 등록을 완료하고 나서 진료를 보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CT 찍고 나서 다시 한번  진료를 보자고 해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 CT를 찍으러 갈 때 친구가 도착을 해서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재활병원에서 외래진료를 간 김에 재활의학과를 연결해 줄 테니 진료를 보고 오라고 해서 친구에게 동생을 맡겨놓고 외과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재활의학과 진료 접수를 하러 다녔다. 동시에 착착 딱 맞아떨어지게 진행이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재활의학과 원무과에서도 의뢰서를 요구했다. 하필 의뢰서는 외과 교수님 손에 들려 있었고 재활의학과 접수가 중단된 채로 외과 교수님과의 진료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과 진료를 했을 때는 특별히 별 말을 듣지는 못했다. 다만 동생의 케이스가 특이하다는 반응이었긴 하지만 다행히도 CT 경과를 봤을 때 뇌에 물이 차거나 뼈가 녹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도 붙여놓은 머리뼈가 녹을 수도 있다니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별 이상이 없으면 경과는 6개월마다 보면 되는데 수술을 했던 달로부터 6개월째에는 보통 다시 검사를 해본다고 하였다. 오늘은 혹시나 모르는 긴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 연고지 근처 병원을 연계해 놓는 거라고 하였다. 이렇게 용인에 하나, 부산에 하나 내 동생의 건강을 담당하는 병원들이 생겼다.


 외과진료를 다 끝내고 부랴부랴 재활의학과로 이동했더니 점심시간이 걸려서 1시 반부터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쉽게도 진료를 바로 볼 수가 없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일단 동생의 피딩이 중요했다. 경관 유동식을 하려면 링거걸이가 필요해서 대여가 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중앙 건물로 가면 있을 거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걸이만 얼른 가지고 오려고 동생과 친구는 원무과에 두고 혼자 내려갔는데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상시에는 휠체어 대여소 옆에 링거걸이가 넘쳐났는데 병원 평가인증 때문에 걸이를 어디론가 다 치워버렸다고 한다. 휠체어를 보니 유일하게 딱 하나가 링거걸이 붙어져 있었고 분리가 되지는 않았다.


 고민을 해보다가 아무래도 피딩을 할 동안은 휠체어를 바꿔야 할 것 같아서 동생과 친구에게 내려오라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와 동생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친구의 전화를 받으니 길을 잃어버렸다며 아까 그 자리에 있을 테니 나보고 데리러 와라는 것이었다.


 정말 링거걸이 하나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뛰어다녔는지를 모르겠다. 결국은 내가 친구와 동생을 데리고 내려와서 휠체어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갔더니 직원이 수소문 끝에 링거걸이 하나를 찾았다며 얼른 가져가 주겠다고 말했다. 동생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걱정을 했는데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 그렇게 링거걸이를 무사히 획득할 수 있었다.


 동생은 휠체어를 탄 채로 피딩을 하고 우리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는 와중에도 동생이 고개를 가누지 못해서 계속 똑바로 세워줘야 했다. 그렇게 밥을 재빨리 먹고 한참 동안 우리 차례를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섰고 교수님의 설명은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콧줄을 너무 오랫동안 할 경우 위궤양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연하곤란이 계속되면 다음에는 뱃줄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외국 같은 경우는 2개월만 되어도 뱃줄을 뚫는다고 설명했다. 목에도 안 뚫었던 구멍을 배에 뚫어야 한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루빨리 음식을 씹고 삼킬 수 있도록 연습을 시켜야겠다.


 


 모든 진료와 수납을 마치고 두리발을 불렀다. 다행히 아침보다는 대기 시간이 짧았다. 친구와는 병원 주차장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동생은 많이 피곤했는지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계속 졸았다. 나는 담요를 동생 목에 둘러서 계속 잡으며 지탱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피곤한 나머지 담요를 손에 쥔 채로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로 병원에 도착을 했는데 나는 쉴 수가 없었다. 꽉 찼던 6인실은 4인실이 되었다. 창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다 빠져서 짐을 옮겨야 했다. 협소했던 중간 자리를 버리고 이제는 조금 더 넓은 창가자리로 이동을 했다. 병실 사람들은 천천히 해도 된다면서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에 풀려서 그 많던 짐을 다 옮겼다. 이로써 피곤하고 기나긴 하루가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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