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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7 - 왔다 갔다

2023년 5월 19일 금요일


 어제의 피곤함이 가시질 않은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창문에는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창가 자리라 그런지 빛이 들어온다. 중간 자리는 세면이 커튼으로 다 가려져서 늘 어둑어둑했는데 바뀐 자리는 내 착각인지는 몰라도 밝고 쾌적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앞으로는 조금 더 널찍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게 되어서 나름 마음에 들었다.


 동생을 씻기면서 수건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는 걸 실감했다. 몸을 닦일 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크기의 수건이 아니라 페이스 타월을 쓰는 게 더 편하다. 크기가 작고 얇아서 세탁하기도 편하고 실내에서 빨리 건조된다. 맨날 사용하고 빨래를 해야 하는데 일반 수건은 부담스럽고 절반 크기 정도가 딱 적당하다.


  그래도 아침에 사용하고 다음날 아침에 계속 사용을 하다 보니 수건도 제 수명을 다했다. 빨랫비누로 매일 세탁하다 보니 수건은 어느새 빳빳해졌고 실내에서만 말렸던 터라 쉰내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작별 인사를 할 때가 되었다. 오늘 시간이 될 때 다이소에 들러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요즘에는 다른 것보다 그림을 올려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즐겁다. 마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듯한 기분이었다. 늘어가는 팔로워 수와 좋아요도 재밌게만 느껴졌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을 하는 것도 재밌었다.


 갑자기 게시물 하나 없던 계정이 그림계정으로 바뀌니깐 뜬금없는 상황에 동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거의 3년 동안 교류가 없던 친구와 약속을 잡게 되었다. 정말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한 것 같다.


어쩔 때는 나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내 즐거움을 찾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지금 삶의 1순위에 동생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내가 재미를 느끼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관심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다 보니 동생에게 오롯이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게 때로는 미안했다.


 물론 지금도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다. 몸을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이런 1차원적인 것들은 매일 한다. 그런데 계속 말을 걸어 준다거나 인지가 빨리 돌아올 수 있게 부가적으로 하는 노력들이 소홀해진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동생을 침대에 가만히 앉혀 두고만 있으면 뭐라도 해줘야 할 것만 같은 강박증이 생긴다.


 그나마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는 그 강박이 사그라들었지만 그러다가도 매 순간 동생을 빨리 호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하던 것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간이 테이블을 들고 동생과 마주 보고 앉아서 그림 그리는 것을 보여주거나 영상을 틀어준다. 차라리 동생 앞에서 깔대며 귀찮게 하는 게 가만히 병실만 구경하게 놔두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동생 입장은 안 들어봐서 모르겠다. 속으로는 자기를 그냥 혼자 내버려 두지 왜 자꾸만 귀찮게 하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동생이 마지막 재활에 들어갔을 때 재빠르게 다이소를 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이었고 다이소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매장에 도착해서는 한눈팔 틈도 없이 필요한 물건만 골라 담았다.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었다. 시계를 수시로 확인하며 5시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크기의 수건이 없어서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마땅한 게 안 보여서 고민하다가 집어든 건 면행주. 어차피 크기가 작은 수건이라고 바라보니 용도 따위는 상관없었다. 신속하게 계산하고 빨리 뛰어갔더니 정확하게 5시에 도착했다.


 병원으로 들어가 보니 다른 병실로 옮긴 아주머니께서 이미 엘리베이터 앞까지 동생을 데리고 나와 있었다. 아주머니는 내 손에 들려있는 봉투를 보고는 30분 안에 다이소까지 갔다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라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다이소는 여유로운 시간에 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사람들이 빠져서 왠지 모르게 넓어 보이는 병실을 보니 허전하기도 했지만 다른 방으로 갔던 아주머니들이 자주 놀러 와서 심심할 틈은 없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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