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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08 - 정체기

2023년 5월 20일 토요일


 눈을 뜨면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보니 점점 기억력이 쇠퇴하는 기분이 든다. 매번 같은 장소, 같은 장면, 같은 스케줄 뭐 하나 새로울 것 없는 병실생활이다. 바뀌는 게 있다면 입퇴원을 하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랄까. 그마저도 입원하는 수에 비해 퇴원하는 수는 극히 적다. 적게는 몇 개월부터 많게 몇 년까지 이곳에서 지내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있어야 할까. 1년이면 될까 1년 안으로는 이곳을 나갈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동생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이 되고 있지만 요 근래부터 호전 속도가 정체기에 접어든 것 같다. 괜한 걱정으로 불안에 떨면서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쑥 조급함이 몰려든다. 대학병원에서 콧줄을 빠른 시일 내로 빼지 못하면 뱃줄로 바꾼다는 말이 공포로 다가왔나 보다. 시간이 해결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동생의 회복 속도에 엄마도 불안한 건지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나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 들었다고 말을 하는데 짜증이 올라왔다.


 아픈 동생한테 화가 나는 건 없다. 호전 상태가 더뎌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답답할 뿐 그게 끝이었다. 그래도 멀쩡하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불안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런데 주말마다 오는 가족이 면회를 와서는 동생이 빨리 낫지 않는 것 같다며 걱정을 하는 것을 보면 솔직하게 말해서 화가 난다. 물론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왠지 내가 더 열심히 간병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가책이 느껴졌다. 가족들의 걱정을 들을수록 나는 힘이 빠졌다.


 특히나 엄마와 교대를 하고 돌아오면 더 그랬다. 매일마다 머리를 못 감겨주는 나와 다르게 엄마는 동생의 머리를 매일 감겼고, 샤워실에 데리고 가서 샤워까지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슬쩍 자기처럼 매일은 아니지만 이틀에 한 번은 머리를 감길 수 있지 않냐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할 수 있는데 내가 안 한 것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엄마는 며칠만 돌보니깐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몇 달 동안 계속해야 하는데 그건 버겁다는 식으로 날카롭게 받아치게 된다.


 엄마는 예전부터 항상 그랬다. 엄마가 그랬으니깐 엄마가 그렇게 살았으니깐 내가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고 못하는 내가 문제라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고맙고 미안한 감정뿐이었다면 요즘에는 간병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더 요구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졌다. 엄마의 의도는 그게 아니란 걸 안다. 지금도 충분히 내가 피곤할까 봐 궁금한 데 전화도 못하고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남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거나 감정까지 헤아려 줄 수 있는 여유까지는 없는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병원 생활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울적함이 몰려오면서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급하강했다. 5월 달에 들어서 어느 순간부터 계속 이런 상태인 것 같다. 글 쓰는 것도 귀찮고 이게 전부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 노력만큼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맥이 빠져버렸다.


 특히나 가족들이 주말에 와서 나를 대신해서 동생을 봐주는 게 아니라 마치 손님처럼 왔다가 구경만 하는 느낌이 들 때는 까칠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해야 할 일까지 더 가중시키면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책임은 동생을 간병하고 회복시키는 일까지 만이라고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동생이 퇴원을 하게 된다면 모두와 연락을 끊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이상하게도 지금 이 상황이 엄청 억울하고 분한 건 아니었다. 미칠 것처럼 힘들거나 원망스럽거나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동생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오는 날 내 소명을 끝마쳤으니 이제는 가족의 곁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그냥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짜증을 내면 또 죄책감이 느껴져서 가족들을 보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물론 나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더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을 헤아려 줄 만큼의 여유가 없어서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더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것 같다. 분명히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해나가고 있는데 내가 왜 이러는 지를 모르겠다. 어쩔 때는 의욕이 넘치다가도 어쩔 때는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래서 내 기분을 환기시켜 줄 만한 그림에 더욱 몰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의 유일한 힐링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음 주 주말이면 엄마가 며칠 동안이라도 교대를 해준다고 하니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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