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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1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34 - 말장난

2023년 6월 15일 목요일


 아침부터 같은 병실을 쓰는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시끄럽다. 재활을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제부터 할아버지와 간병인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뇌출혈이 재발하여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분명 며칠 전까지 식사도 잘하셨고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악화돼서 수술을 받는다고 들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생과 같은 병이라서 괜히 더 신경이 쓰이고 항상 예의주시하며 상태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동생이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잠시 피부과를 들렸다. 가뜩이나 인상을 쓰면 미간에 주름이 잘 잡히는데 나보다 큰 동생을 옮기거나 자세를 바꿀 때 용을 쓰다 보니 주름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딱히 나갈 일도 없고 병원에만 있다지만 그래도 관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한창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을 나이에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관리까지 안 하면 더 울적해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지나가는 아주머니들마다 동생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눈매가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 확실히 눈에서 나이가 느껴진다며 누나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굳이 뒷말은 안 하셔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지만 동생보다는 나이가 많은 게 사실이니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피부과에서 일해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보톡스는 주름이 생기기 전에 예방차원으로 맞는 게 좋다. 주름이 생기고 나서 보톡스를 맞는 건 소용이 없다. 물론 몇 개월 간 반영구적으로 근육을 못 움직이게 만드는 거라서 약물의 효과가 사라지면 다시 주름이 잡히지만 기본적으로 4개월 이상은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직접 받아본 시술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었기에 뜬금없지만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시술을 끝내고 헐레벌떡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돌아갔다. 오후에는 점심 피딩이 많이 늦어져서 재활시간에 지각을 했다.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피딩 속도를 올리면 설사를 할 위험이 있고 속도를 낮추면  점심시간이 촉박해지기에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간을 맞추려면 수시로 관찰하면서 피딩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제발 입으로 밥을 먹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오후에 자동하지가 빠지고 서기로 대체되면서 동생이 서 있는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나도 그 앞에서 함께 서있다.. 동생의 상태를 수시로 살피면서 침을 흘리면 닦아주는 게 일이었다. 그래도 두 발로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우리는 이걸 언제 할 수 있는지 멀리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차례가 왔다. 서서히 한 단계씩 상승하는 게 기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동생의 장난기가 부쩍 늘었다. 이제는 아주 사람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오늘도 입을 열고 침을 질질 흘리길래 침을 꿀꺽 삼키라고 말했더니 말을 따라 하길래예상치 못한 행동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경오, 침 삼켜. 꿀꺽.”

“꿀꺽”

“아니, 말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침을 삼키라고”


 동생은 그제야 침을 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제는 말을 조금씩 할 줄 알게 되니 이런 해프닝도 생긴다. 재활 치료사들도 오며 가며 동생을 보더니 확실히 전과 많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확실히 며칠 사이에 놀랄 정도로 달라지기는 했다. 나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신기할 정도였다. 기적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보다. 이대로만 간다면 퇴원할 날도 머지않았다. 이 시간은 금방 지나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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