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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2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40 - 끝말잇기

2023년 6월 21일 수요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중 즐거운 계획이 생겼다. 한 달 후에 친구들과 합천에 있는 빠지를 가기로 해서 숙소를 예약했다.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벌써부터 숙소 예약이 꽉 차있다. 하물며 인원이 7명이라서 구할 데도 마땅치 않았다. 급한 대로 글램핑을 알아보기로 했고 어느 곳을 찾아봐도 최대 인원이 6명이었다. 숙소 상태를 따질 것 없이 여러 군데 전화를 돌려 7명이 가능하다는 곳으로 예약을 했다. 여행을 계획했던 주최자는 뭐 하고 내가 예약을 하고 있나 싶었지만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생각하기 했다.


 오후 재활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동생에게 오예스를 먹였다가 연하 치료 담당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 동생이 깔끔하게 삼키지 못하고 입 안에 남아있으면 흡인이 될 위험이 있다며 주치의에게 먹어도 되는지 확인을 하고 먹여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의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알지만 먹이지 말라고 할 것이 뻔했기에 아무 말 안 하고 먹였는데 딱 걸려 버렸다. 연하 검사가 있기 전까지는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요즘에는 동생의 배변 활동 시간이 오전에서 오후로 바뀌었다. 지금은 오후에 있는  번째 재활이 끝이 나면 대변 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되면 기저귀를 갈기 위해서 병실로 향한다. 대변을 눴을 때는 병실로 가고 누지 않았을 때는 산책을 나간다. 거리를  바퀴 돌고 오면 다음 재활 시간까지  맞다. 이제는 일상 루틴이 되어 버렸다.


오후 6시쯤에는 동생의 대학 친구들이 면회를 왔다. 며칠 전에도 왔었는데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이라 수원을 가기 전에 한번 더 들렸다고 한다. 하필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라서 휠체어 홀더에 수액걸이를 걸고 피딩을 했다. 동생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동생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친구들을 보니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동생에게 친구들을 만나서 좋았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에는 침대에 앉아서 끝말잇기를 했다. 이제는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가 늘었다.


 끝말잇기를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당했다. 내가 말한 단어를 듣고 산기슭으로 받아치는 동생을 보니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몇 달 정도 말이 없길래 언어능력을 유치원생 정도로 착각했다. 심지어 ‘자’로 끝나는 단어에 자영업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예상치 못한 단어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걸 보니 인지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 이후로도 동생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먹고 싶은 과일은 멜론, 음료수로는 바나나 우유, 빵은 크림빵이라고 대답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삼키려고 하는 의지가 불타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주로 음식 위주로 물었다. 수많은 질문 폭격에 동생은 곰곰이 생각하면서 대답을 했다. 아직까지는 발성하는 게 어색한지 모기소리로 말하지만 이 정도로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제는 동생과 대화가 가능해져서 새로운 재미거리가 생겨난 기분이다. 아마도 콧줄을 빼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연하 검사를 통과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동생은 “어. “라고 대답했고 매일 같이 똑같은 질문을 하며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앞으로 콧줄을 뺄 날이 머지않았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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