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 -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뇌출혈이란 불행

by 덤벙돈벙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오랜만에 경기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같은 백수라서 취업 고민도 공유하고 겸사겸사 집들이도 할 겸 경기도에 있는 백석동으로 향했다. 중고 고데기도 택배로 부치고, 평생 요리하고 살 것 같지 않은 친구가 만들어 준 양 많고 느끼한 까르보나라, 여자끼리 만나면 빼놓을 수 없는 남자친구 이야기까지 완벽했다. 카페에 가서 열심히 사주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면 최고까진 아니지만 평균은 된다며 위로 아닌 위로와 함께 화개살이 다사다난하다라며 인생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다. 원래라면 만남을 가졌을 때 일찍 헤어질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8시에 약속을 끝내고 집으로 귀가했다.

문득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구랑 나눴던 대화를 곱씹어 봤다. 남자친구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랑 맞지 않다는 게 절실하게 와닿는 시점이라 만날까, 말까를 수천 번 고민했다. 사는 것도 힘든데 연애까지 힘들 게 해야겠냐며 친구와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한번 될 때까지 해보자는 다짐을 했는데 그날 만나자고 하는 내 제안에 갑자기 아프다며 쉬어야겠다는 남자친구를 보고 이별을 결심했다. 어떻게든 만나서 결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와서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남자친구의 일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남자친구와 한창 연락을 주고받는 와중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그땐 그 소식이 나의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알지 못했다.


2022년 2월 2일 목요일/ 오후 10시 21분 (1분)


전화를 받자마자 "왜?"라는 나의 대답에 수화기 너머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몇 초의 침묵이 지나 동생이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전화받은 분이 친누나 되시나요?"

"네. 친누나 맞아요."

"지금 이경오 씨가 고통에는 반응을 하는데 의식이 없어서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어디세요?"

"저 지금 집에 있어요."

"집이 혹시 가깝나요?"

"아니요. 서울에 있어요."

"그럼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지금 병원은 아주대병원, 성 빈센트병원, 동수원 병원 세 군데 중 하나로 갈 것 같아요."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병원에 도착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일주일 만에 기억을 더듬어 써보는데 대략 저런 내용이었다. 전화를 받고 우선 뭐부터 챙길지 고민을 하다가 겉옷만 갈아입고 무작정 나갔다. 병원이 어딘지를 모르니 섣불리 택시를 탈 수도 없어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10시 30분. 동생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4분 후 언니가 간호사였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하고 보통은 어느 병원으로 가냐고 물어보니 저 세 군데를 말해줬다. 1/3 확률로 병원을 맞춰야 한다니 일단 수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전화가 오면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10시 37분. 버스에 오르자마자 전화가 왔다. 다 틀렸다. 아주대도 성 빈센트도 동수원도 아닌 뜬금없이 용인에 있는 용인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을 한다고 한다. 아주대병원으로 갔다가 사람이 꽉 차서 이동을 한다고 했다. 동생 상태가 위급하다며 기저질환이 있었는지 코로나에 걸렸었는지 이것저것 정신없이 물어보니 나도 정신이 없었다. 일단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뒤에 바로 내렸다. 빨리 오라는 말에 도로에서 2차선을 달리는 택시를 붙잡아 탔다. 기사님이 주소를 너무 느리게 치고 제대로 찾지 못해서 내가 대신하고 싶었다. 그 짧은 순간 너무 답답하고 급한데 어리바리한 기사님에게 잘못 걸렸다는 느낌에 다른 택시를 잡아탈까 생각했다.


10시 43분.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용인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동한다는 말을 해준 후 엄마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10시 45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동생이 쓰러졌다고 연락을 받아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전했다. 택시 기사님께 혹시 빨리 가줄 수 있냐는 말과 함께 전화를 기다렸다. 10시 57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까지 언제 도착할 수 있냐 하길래 30분 정도 걸린다고 대답했다. 11시 16분. CT 결과 뇌출혈이라 긴급수술을 진행해야 하며 지금은 당직 선생님이 안 계시는데 지금 병원으로 급히 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쯤 도착할 수 있냐는 말에 10분 안으로 도착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건가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님도 전화 너머로 들리는 대화를 짐작해 봤을 때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눈치채고 속도를 높였다. 병원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도착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병원에는 거의 다 도착했는데 기사님이 병원으로 빠져야 하는 길을 지나쳤다. 기사님도 그 순간 아차 싶었는지 도로에 잠시 멈춰 섰다. 기사님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선택을 내렸다. 백미러로 후방을 재빠르게 살피더니 차가 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그 길로 냅다 역주행해서 병원에 들어갔다. 이건 병원을 도착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 택시 안에서의 아찔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오후 11시 30분~


병원은 또 왜 이리 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일단 제일 큰 건물로 향했다. 프런트에 가서 응급실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 와서 여기서 헤매다니 정말 한심했다. 응급센터로 가니 바로 이경오 씨 누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한 뒤 방문 일지를 작성하고 입원 수속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나체 상태로 누워있는 동생의 모습과 마주하였다. 입에는 호스를 꽂고 눈은 감고 있었다. 간호사가 무언가를 설명을 해주고 서명을 하라고 했다. 그 순간 동생이 교도관을 준비하고 있던 게 떠올랐다. 수술이 동생의 진로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져서 수술을 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한지에 대해 물어봤다. 이러한 질문에 교수님이랑 이야기를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수술에 들어갈 교수님은 아직 도착을 안 해서 다른 교수님에게 설명을 들었다.


'외상성 급성경막하출혈'


이름도 생소하다. 교수님이 설명을 해주셨다. 뇌를 싸고 있는 경막이라는 곳에 출혈이 생겼고 급한 상황이라 혈액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긴급수술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동생은 체육관 화장실에서 동료가 발견하여 신고를 했다고 한다. 쓰러지고 나서 30분 정도 뒤에 발견을 했으며 이미 의식은 없었고 통증에만 반응하는 수준으로 수술을 하고 나서 후유증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으며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혼수상태를 5단계 뇌사, 3단계 혼수상태로 본다면 동생은 4단계 정도로 5단계 직전이라고 말했다. 또한 의식 상태를 점수 체계로 보았을 때 일상적으로 문제없이 소통하는 상태를 15점이라고 본다면 최저점은 3점인데 동생은 현재 4점이라며 좋은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도 살 수 있는 확률이 30% 정도라고 했었던가 일단 동의서를 빨리 작성하면 수술을 더 일찍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이름을 썼다.


설명을 다 듣고 동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호스를 꼽고 바이탈 체크를 하면서 누워있는 동생을 보니 기가 찼다. 간호사가 말하길 동생이 입고 있었던 도복은 챙겨두었고 티셔츠는 어쩔 수 없이 가위로 오려냈다고 했다. 신발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도 없었던 걸로 보아 아무래도 체육관에서 가져오지 못한 것 같다고 하였다. 예전에도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있다. 의식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로 누워있는 아빠와 그 옆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를 보았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우리 집 남자들 참 나를 귀찮게 한다. 관심을 받고 싶으면 말로 하면 되지 꼭 이렇게 행동으로 보인다. 의식은 없지만 토가 나오는지 쿨럭거리는 동생의 모습에 문제가 있나 싶어 살짝 당황을 했다. 간호사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보기 힘들면 나가있어도 된다는 말에 그냥 묵묵히 옆을 지키고 있었다. 구역질을 해서 그런지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가 뺨으로 흘러내렸다. 이게 구역질의 반사작용으로 눈물이 나온 건지 내가 옆에 있다는 걸 알고 우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아주었다. 알레르기 검사를 한다고 왼쪽 팔에 주삿바늘을 갖다 대니 몸을 비틀었다. 의식은 없지만 신경은 살아있어서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자꾸 팔을 움직이려고 하기에 나는 그저 동생의 오른팔을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11시 56분. 엄마는 지금 삼촌 집으로 향하는 중이라며 병원이 어딘지 물어보았다. 11시 58분. 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아침 첫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올라온다고 하였다. 실시간으로 엄마한테 상황을 알려주고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3층으로 올라갔다. 중환자실 앞에 있는 의자에 짐을 놔둔 뒤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는 수술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생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설명해 주길 검사 결과 부정맥이 있었고 평소에는 증상이 없어서 몰랐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수술이 잘 된다고 하더라도 심장이 무리가 가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쓰러지면서 폐렴도 발생했기에 최악의 상황까지 설명해 주며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오늘 내 이름만 몇 번째 쓰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오전 12시 20분~

수술실 문이 닫히고 조명이 다 꺼진 병원에 홀로 남겨졌다. 경황이 없어 이게 지금 무슨 일이 지나간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아서 낮에 만났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누나인 나는 지금 안 울고 있는데 친구가 운다. 꿈인지 생시인지 감흥이 없다. 소름 돋을 정도로 차분한 내 모습에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인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12시 35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면 되고 수시로 연락을 해야 하니 폰을 계속 들고 있으라고 했다. 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 병원을 돌아다니며 충전시킬 콘센트를 찾았는데 이놈의 병원이 크기만 컸지 콘센트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화재 위험 때문에 그런지 전력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없다.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잡고 물어보니 1층 로비로 가면 충전기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1층으로 내려가보니 데스크에 급속충전기가 있었다. 그걸 보고 휴대용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우선 엄마에게 동생이 수술실로 들어갔다고 알린 뒤 폰을 충전선에 연결했다. 휴대폰을 지키느라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데스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밖은 어둡고 병원의 조명은 듬성듬성 켜져 있었다. 병원을 지키는 경호원과 병실에 있기가 갑갑했는지 로비로 나와 돌아다니는 환자들이 보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낮과는 사뭇 다른 이질적인 광경을 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동생 수술을 기다리는 나 말이다. 아무리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그 와중에 하면 안 될 짓을 해버렸다. 로비 의자에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가 없어서 이어폰을 꽂았다. 실수였다. 음악을 듣자마자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하며 눈물이 났다. 참아보려 했지만 댐이 무너져 물길이 쏟아 나오듯이 눈물이 흘렀다. 어두운 병원 안에 여자 홀로 의자에 앉아서 울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무서울 것 같아서 바깥으로 나왔다. 병원 안에 답답한 공기를 마시고 있다고 찬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조금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은 눈물을 참으면 안 된다. 조금 울고 나니 정신을 반쯤 놓았는지 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우리 집은 무교다.


내 나이 22살에는 아빠를 앗아가더니 27살이 된 지금은 동생까지 아주 우리 집안 남자의 씨를 말리려고 작정했나 싶어 원망을 하다가도 실언을 했다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아빠는 나 말고 동생이나 지키지 왜 이렇게 힘이 없냐며 탓을 했다. 도대체 세상은 나에게 얼마나 엄청난 걸 주려고 인생 난이도를 최상으로 만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인생을 쉽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 생기는 거 보니 이건 출제자가 난이도 조절을 실패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신이 있다면 내 목소리를 듣고 있길 바랐다. 동생은 아직 세상에 남아서 해야 할 것이 많으며 엉뚱한 사람 힘들게 하지 말라는 내 기도를 말이다.


"이럴 때만 찾아서 노여우실 수도 있는데요. 저 신이 있다고는 믿거든요. 근데 이건 아니지 않나요?"


똥밭에서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동생이 악착같이 수술을 잘 견디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동생이 깨어나면 반드시 누나라는 소리를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인생 2회 차를 사는 기분일 텐데 생명의 은인한테 누나라고 해야지 안 한다면 배은망덕한 놈으로 평생 낙인 될 것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누나라는 소리를 꼭 들어야겠으니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믿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 화장실로 향했다. 참고하자. 역시 눈물 닦을 땐 휴지보다 핸드타월이 낫다. 부드럽지 않아도 흡수가 잘 되고 찢어지지 않아서 눈물 닦기 편했다. 뽑아온 핸드타월을 꼭 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당연히 잘 될 거고 그렇게 되어야 하고 잘 견뎌낼 거라고 믿었다. 들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이 간절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 동생인데 이딴 거 하나 이겨내지를 못할까라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원망을 하기보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술이 잘 될 거라고 믿는 것 밖에 없었다. 얼마나 독한 앤 데 이런 걸로 지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