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 - 모두의 기도

by 덤벙돈벙

2023년 2월 12일 일요일


보통 주말이면 늦게까지 낮잠을 자는데 요즘 들어서는 아침에 일어나기 전 두세 번은 깼다가 다시 자는 것 같다. 상황이 그래서인지 아니면 내가 게을러서인지 해야 할 건 많은데 몇 시간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서 폰만 들여다보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자격증 준비는 뒤로 미루고, 깨어났지만 침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채로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5평 남짓한 원룸 한편에 어제 벗어놓고 방치해 놓은 옷들이 눈에 거슬려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쌓여 있는 집안일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고 그 누구도 나 대신 일을 해주지 않는다. 물론 해줄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내가 먹어야 할 밥을 남이 대신 먹어준들 나에게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는 것처럼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아도 억지로 해야 한다.


요즘 할머니는 동생 걱정으로 전화가 잦아졌다. 항상 어디에 있던 밥은 챙겨 먹고 있는지 걱정을 한다. 할머니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안 먹어도 먹었다고 거짓말을 칠 때도 있다. 오늘은 라면을 먹었다고 하니 그걸론 밥이 안 된다며 그것만 먹어선 힘이 나지 않는다고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을 또 들었다. 알아서 잘 챙겨 먹고 다닌다는 나의 대답에 할머니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요즘 사람들 굶어 죽진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란 나의 말에 드디어 잔소리를 거두었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집에 혼자 있을 엄마가 걱정되어 미역국과 김밥을 들고 찾아갔다는데 환영받지 못했다며 하소연을 했다.


“어제 너네 엄마가 밥도 안 먹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김밥사고 미역국해서 챙겨갔더니만 귀찮다고 구박이나 받고 해 줘도 욕만 먹어서 삐져가지고 집으로 와버렸다.”

할머니의 서운해하는 말에 위로랍시고 대답을 했다.

“엄마가 잘못했네. 기껏 챙겨줬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 앞으로 해달라고 하지 않은 건 그냥 해주지 마. 어차피 고마워하지도 않아.”

하지만 할머니도 엄마였기에 어느 부모가 그렇듯이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가 없이 사랑을 준다.

“그래도 내 딸한테 가봐야지. 밥도 안 챙겨 먹고 있을 건데.”

“에이, 할머니. 엄마가 내일모레 오십인데 애도 아니고 밥을 왜 못 챙겨 먹어. 오히려 내일모레 팔십 인 할머니를 챙겨줘도 모자란데.”

“내일모레 오십이여도 내 눈에는 여전히 애다. 애.”


이제 곧 8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에도 내년이면 50세가 되는 엄마가 아직도 챙겨줄 게 많은 아이처럼 보이는데 23살밖에 안 된 손자가 병원에 누워있다는 소식은 얼마나 청천벽력 같을까. 내가 봐도 어린 나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제 한창 시작일 나이인데 나보다 더 오래 산 가족들 눈에는 지금 이 상황이 기가 찰 수밖에 없는 노릇일 것이다.


“내가 절에 가서 너네 가족 잘 되라고 80만 원씩이나 주면서 이름도 올리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고. 너네 아빠가 네 동생 태어날 때 절에 가서 이름 좀 지어달라고 해서 지으러 갔더니 산신각에 팔라고 해서 팔았다. 산신각에는 호랑이가 지키고 있는 거 알제? 스님이 맨날 기도하고 있다고 절에서 전화가 왔더라. 스님 말로는 이틀 후에 깨어날 것 같다 하대. 경오 태어날 때 태몽으로 꿈에 범이 자꾸 내 옷을 물어서 잡아당기길래 내쫓았는데 다른 한 마리가 또 마당으로 들어와서 내 옷을 물어뜯더라. 아무래도 너네 엄마가 한 명 더 나았으면 아들이지 싶다. 근데 제일 걱정 안 했던 놈이 지금 이게 뭐고? 배신당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할머니 산신각에 올려서 기도도 하고 있었는데 곧 깨어나겠지. 그렇게 돈을 들이면서 했는데 이게 효과 없으면 안 되지. 세상에 믿을 게 없지. 나도 기도하고 있어. ”

“니는 기도를 어떻게 하고 있노? 동생 일어나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하고 있나?”

“나는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지. 그리고 신을 한번 만나게 된다면 지옥 가는 한이 있더라도 멱살 한번 잡으려고.”

“에헤이, 그렇게 하다가 노하면 우짤라고.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해라.”

“몰라, 일단 열심히 협상해 볼게.”

“화요일에 병원에 가쟤. 네가 고생이 많다. 그날 가서 동생 상태 잘 살피고 갔다 오면 연락 주라.”

“알겠어. 면회 끝나면 바로 전화할게. 걱정하지 마. 시간은 걸리겠지만 반드시 일어날 거니깐.”


그렇게 할머니와 30분간의 통화가 끝났다. 할머니가 절에 다녀서 자연스럽게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만 굳이 말하자면 우리 집은 무교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의 모든 신이란 신을 전부 찾는 중이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잡신 그리고 아빠한테까지 이야기를 한다. 동생은 꼭 일어나야만 한다고 말이다. 어린 나이에 운명하는 것은 하늘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데리고 가는 것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동생은 아직도 인간이 되려면 멀었기에 이승에 남아야 하며 지금은 데려가도 쓸모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여기서 인간답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살고난 뒤 한 80년 후쯤 데리고 가라고 기도했다.


저녁 9시가 조금 지나 잠이 들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깨어버렸다. 그전에는 자고 있을 때는 귀찮아서 일부러 연락을 피한 적도 있었지만 동생 일이 터지고 난 뒤부터는 연락이 오면 무조건 받아야 마음이 편해졌다. 서로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방금 자다가 이상한 개꿈을 꿨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별 의미 없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낮에는 할머니한테 전화가 와서 나에게 하소연했다는 말을 해주니 잠깐 피식할 뿐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빠져있었다. 신경이 쓰였지만 애써 괜찮은 척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잠깐 자는 사이에 여러 개의 꿈을 꿨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이 하나 있는데 이상한 내용이었다. 동생이 입원한 병원은 아니었지만 꿈속에서는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을 수술한 교수님이 등장했고 동생이 누워있는 동안 전생체험을 했던 것 같다며 오전에는 유체이탈이 되는 증상이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구토가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꿈에서 느껴진 구역감이 실제로 겪은 느낌처럼 생생했다. 괜히 찝찝해서 무슨 꿈인가 싶어 해석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구토하는 꿈은 길몽이었다. 막혔던 일이 속 시원하게 풀릴 것을 의미하는 꿈이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좋은 예감이 들었다. 동생이 이번주 안으로 일어날 것 같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내 꿈은 생각보다 잘 맞으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