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일기 9 - 중환자실에서 만난 동생
2023년 2월 10일 금요일
어제는 저녁 9시에 잠이 들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병원까지 1시간 14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넉넉하게 10시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다. 교대역 14번 출구까지만 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 M4455 버스를 타면 병원으로 한 번에 갈 수 있다고 하니 검색을 해봤다. 교대역 버스 도착 예정 4분. 큰일이다. 잘못하면 버스를 놓친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달렸다. 그렇게 기껏 뛰어서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버스는 10분 후에 도착이란다. 속은 건가. 아침부터 신체에 산소 공급만 오질 나게 해 버렸다.
버스를 타고 가니 11시 30분쯤이 됐을 때 병원에 도착했다. 대형 기저귀와 물티슈, 깔개패드까지 2개씩 구매하여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중환자실 앞 대기실에는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성별, 나이도 다양했다. 중환자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던데 내 동생이 그중에서 가장 팔팔한 막내가 아닐까 싶다.
방문자 기록을 작성한 다음 손을 씻고 위생장갑과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12시까지 기다렸다. 서있는 사람들을 보니 각자마다 사연이 있을 것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 이 사람들도 누군가의 자식, 배우자, 부모나 형제겠지. 12시가 되니 우리 앞에 가로막혀 있던 문이 열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생이 있는 B구역으로 들어갔다. 출입문과 중문 사이에 있는 통로를 지나 동생이 있다는 B-07 병실의 커튼을 쳤다.
커튼너머의 장면이 낯설다. 의학 드라마에서만 봤던 링거와 호스 혈압측정기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장비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이 보였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동생의 상태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말초신경주사를 투입한다는 동의서를 받아갔다. 요즘 동생 덕분에 내 이름을 많이 남발하고 있다. 여기저기 내 성명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이 생겨났다. 마치 유명인이 된 기분이다. 누워있는 동생에게 속삭였다. 누워있는 녀석한테 욕을 할 예정이라 간호사가 자리를 비켜주기까지 기다렸다.
"이놈의 시키야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누나가 왔는데 누워있냐? 빨리 일어나야지."
보통은 이렇게 말하면 짜증을 내야 하는데 묵묵부답이다. 아무리 말을 해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지만 누워서 듣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야 나랑 놀자. 일어나서 놀러 가야지. 강원도도 가고 대만도 여행 가야지. 왜 아직 자고 있냐. 내 말 들려? 너 지금 듣고 있지?"
병실에는 내 목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의사가운을 입은 여자분이 들어와서 어머니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수간호사인 것 같다.
"누난데요."
황당한 질문에 짤막하게 대답하니 수간호사가 뻘쭘한 듯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너무 많아서 착각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쳐다보고 있으니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하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누워있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1시간 반을 달려서 병원에 온 것보다 엄마라는 오해를 받았다는 게 더 억울했다. 그리고 동생이 듣거나 말거나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야 인마. 엄마가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도 다 이야기했어. 엄청 걱정하신다. 걱정 안 시키려면 네가 일어나야 해. 그리고 너는 일어나면 내 친구들이 가만 안 둔대 여러 사람 걱정시킨 죄로 아주 혼쭐을 낸다더라."
반응이 있을까 싶어 눈을 쳐다봤지만 전혀 미동도 없었다. 동생한테 전하려던 말들이 분명 많았는데 막상 앞에 있으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깜박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못 할까 봐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해 냈다.
"엄마랑 나랑 네가 없는 집에 둘이 있었다? 전에 너랑 같이 갔던 서장대도 올라갔어. 근데 이번에 가니깐 빨리 올라가는 길 있던데 너 왜 전에 갈 때는 길을 빼앵 둘러가서 우리를 고생시킨 거냐 이 자식아."
나의 투덜거림에도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지금은 뇌 수술을 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길래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야 근데 나 네 폰을 가지고 있어. 열려 있더라. 아주 많은 것들이 있던데. 빨리 안 일어나면 큰일 나겠던데? 일주일 내로 안 일어나면 볼 거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착각인 건지 동생의 눈이 움찔했다. 눈을 뜨진 않았지만 눈두덩이에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기세를 몰라서 말을 이었다.
"너 생일이 다음 주 토요일이야. 8일 남았어. 생일을 침대에 누워서 맞이할 순 없잖아. 그래도 그땐 눈을 떠야지. 디데이 7일 남았다. 금요일에 엄마가 올 거니깐 그때 일어나."
반응이 있길 기대하면서 계속 혼잣말을 했다.
"지금 세상 구경 잘하고 있냐?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는 만났고? 아빠 보면 전해줘라. 내려보내 달라고. 가는데 순서는 없다지만 있어. 넌 아직 아니야. 네가 먼저 가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가야 해. 새치기하지 말고 순서 지켜라."
혼자 말을 하다 보니 벌써 면회가 마칠 시간이 되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 인사를 해야 했다.
"너 지금 다 들리지? 내 말 듣고 있냐? 마음 편히 먹고 쉬다가 일어나. 가위눌린 것처럼 답답하겠다. 그래도 버텨봐. 이겨내야지. 여기선 우리가 버티고 있을 테니깐 세상 구경 잘하고 부자지간끼리 오붓하게 시간 보내다가 내려와. 그리고 궁금하니깐 네가 일어나서 나한테 얘기해 줘. 이제 2분밖에 안 남았다."
눈이 움찔한 이후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가 나가기 전에 손을 한번 잡았더니 동생의 발이 움찔거렸다. 마치 내가 간다는 말에 반응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의 입장에서는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도 의미부여를 하며 희망을 느낀다. 남들이 유난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니깐 말이다. 마치 내가 옆에 온 걸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옆에서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게 깨어나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수님은 만나지 못했지만 당직일 때 전화로라도 설명을 해주신다고 한다. 혼자 있는 동생을 뒤로하고 중환자실을 나섰다.
큰 숙모와 엄마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상태가 어떻냐는 질문에 여전히 똑같다는 답변만 해줬다. 내 말을 들은 가족들은 실망을 했다. 당장이라도 동생의 의식이 돌아왔다고 여기저기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게 되는 날은 곧 올 것이다. 내가 오직 할 수 있는 건 동생이 일어날 거라 굳게 믿고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