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일기 3 - 엄마와 딸
2023년 2월 4일 토요일
어떻게 또 아침이 왔다. 좁은 침대에서 엄마와 둘이서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했다. 나는 어젯밤에 먼저 잠이 들었고 엄마는 잠이 안 온다고 혼자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엄마가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큰 숙모가 걱정이 되었는지 카톡이 왔다. 나도 힘들겠지만 엄마가 제일 힘드니 잘 챙기라는 말이었다.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5년 전에도 그랬듯이 나의 슬픔은 엄마의 슬픔과 비교했을 때 항상 뒤로 밀려나는 슬픔이었다.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 순위 중 1, 2위는 자식과 배우자의 사망이며 3, 5위가 부모, 형제자매의 사망이다. 물론 나는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그 감정을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나한테도 이런 일들은 처음이라서 슬프고 힘들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취업고민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괴로움이 해결되기도 전에 더 큰 사건이 터져버렸다. 취업고민으로 힘들어하던 나의 감정은 한순간에 부질없는 게 되었다. 더 큰 괴로움이 나를 잠식시켰다. 나 하나만의 문제도 버거워서 겨우 버티고 참고 있었는데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오롯이 내 감정 하나만 챙길 수가 없었다. 주변에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엄마가 옆에서 힘들어하며 우니깐 나까지 울면 같이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애써 괜찮은 척하면서 내 슬픔은 외면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나를 옥죄이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내 슬픔이 작은 것이기에 더 큰 슬픔을 가진 엄마를 내가 지켜내야 한다는 말들이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가족이 있으면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어서 억지로 눈물을 참느라 두통이 왔다. 애써 나오는 울음을 속으로 삼켜냈다. 엄마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1시 30분쯤 사촌언니를 만나기로 해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촌언니는 5년 전 아빠 장례식장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몇 년 만에 보는데 항상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만 만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 좋을 상황이었을 때만 만나서 즐거웠던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는데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시작할 수가 없어서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그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아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서울에는 언제 올라왔는지 물었다. 2년 정도 되었다고 하니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사촌이지만 친구보다도 먼 사이였구나를 깨달았다는 게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자기 주변에도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1, 2주 만에 일어난 사람이 있다고 하니 동생도 일어날 거라고 힘을 불어넣어 준다. 백미러에 비치는 언니의 얼굴을 보니 눈시울이 빨갛다. 한 사람의 영향이 이렇게나 크다. 한 사람의 부재는 여러 사람에게 미친다. 차 안에서의 그 순간이 유독 갑갑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원래 이런 일이 생기면 자기가 못했던 것만 생각나며 죄책감이 드나 보다. 동생이 쓰러지기 불과 며칠 전 서로 기분 상하는 상황이 있었다. 말도 안 하고 엄마카드를 사용해서 몇 마디를 했더니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그 태도에 화가 나서 다시 초대도 안 하고 괘씸해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는 연락 한통 없다가 동생에게 전화가 왔는데 기분이 풀리지 않아 한참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화가 끊길 때쯤 받았다. 그때 만약 내가 내 감정만 생각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갔을 것이다. 머릿속에선 죄책감과 중압감이 나를 에워싸기 시작하면서 괴로울 때쯤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사촌언니가 엄마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는데 엄마의 대답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유이가 더 고생했지 뭐. 자기가 동생 수술 혼자 지키고 있었는데. ”
내 슬픔은 항상 더 큰 것과 비교당하고 작은 것이기에 온전하게 이해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침울했는데 그래도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나에게 말은 안 하지만 엄마 눈에는 다 보였나 보다. 항상 다른 가족들은 엄마의 슬픔을 더 크게 보고 이해해 주는 것이 한편으론 질투도 났는데 내 슬픔의 크기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나 보다. 남들 눈에는 내가 엄마보다 강인해 보이니 내가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엄마는 남들이 보는 것보다 더 강인하다. 가족이 나를 제일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때론 말하지 않아도 나를 제일 잘 아는 것도 가족이라는 사실에 눈물을 참느라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보았다.
수원에 도착하니 주인 없는 동생 자취방이 있었다. 우선 물건들이 다 있는지 확인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선택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모이니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메뉴를 고르고 나갔다. 날씨는 우리의 속도 모르고 한 없이 화창했다. 칼국수를 먹으면서 막걸리를 시켰다. 사촌언니도 굉장히 마시고 싶어 했지만 운전을 해야 했기에 냄새만 맡았다. 예전에는 명절에만 가끔 만나서 몰랐지만 한층 깊은 서로의 이야기들이 나와서 흥미진진했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언니나 엄마나 지독한 술꾼들이었다. 둘이 붙여놓으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카페로 가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았고 예전에 동생과 함께 했던 곳들을 스쳐 지나가니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는 동생이 가이드 역할을 하여 엄마랑 나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동생 대신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페로 가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엄마가 언니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며 아들이 누워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라며 괴로움을 잠시 잊은 듯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걱정이 되었던지 수경이랑 여정이가 수원까지 나를 보러 찾아왔다. 언니와 인사를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언니는 차를 타기 전에 얼마 안 된다며 10만 원을 내 손에 쥐어주며 엄마랑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동생 자취방에 들렸다. 친구들이 남자애 방이 왜 이렇게 깨끗하고 잘 꾸며져 있냐며 자신들의 방이랑 비교돼서 자극을 받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긴 언니도 방을 들어서자마자 깨끗해서 놀라기는 하였다. 한창 집을 꾸밀 때 나한테 소품을 사달라고 했었는데 아마 내 방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라는 말에 친구가 그런 것 같다며 동의했다. 내 방이 넓었다면 동생방과 인테리어가 비슷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녀석 하여간 보는 눈은 있어서 나를 다 따라 한다니깐.
주말이라 그런지 들어가는 카페마다 전부 만석이다. 한 5군데 넘게 돌아다녔을까 가까스로 테이블 하나 남은 카페를 발견했다. 친구들과는 가볍게 안부부터 묻다 점점 무거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같이 우느라 음료와 케이크를 시켜놓고 손도 안 대고 있었다. 하필 사장님이 그걸 발견하고 케이크가 맛이 없어서 손도 안 댔냐 묻길래 당혹스러운 마음에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 말까지 듣고 안 먹고 있으면 오해를 사기 딱 좋아서 그제야 다들 먹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그래도 내 슬픔을 오롯이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울면 오히려 더 슬퍼지니깐 꾹 참다가 혼자 있을 때나 친구를 만나서야 쏟아낼 수 있는데 너네를 만나 마음껏 울 수 있어서 홀가분하다 했더니 내가 그럴 걸 알고 있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주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어쩌면 상대방을 위로하는 것 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때론 누군가의 질문이 의도가 없었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한번 더 상기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힘내라는 말은 어떻게 힘을 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버거움이 된다. 더더욱 상대방의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릴 수가 없어 마냥 괜찮다고 마냥 잘 될 거라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위로받을 일들이 생기면서 나 또한 상대방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는데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섣불리 어떤 위로도 할 수 없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온다면 그냥 말없이 그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이 괜찮은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이야기하고 싶을 때, 기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옆에 있을 테니 필요하면 말하라는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고마웠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또 한편으론 사람들로 치유받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갔다. 저녁에는 엄마와 함께 초밥을 먹으며 술을 한잔 했다. 원래라면 엄마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틱틱거리면서도 하자는 대로 맞춰주었다.
"엄마 술 좀 그만 마셔. 알코올 중독이야. 그러니깐 기억을 못 하지."
속상한 마음에 괜히 심술을 부렸다. 엄마는 내 속마음을 다 알고 있다듯이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해도 엄마 좋아하는 거 다 아는데 왜 예쁘게 말 안 하냐? 다 알고 있는데."
"몰라, 그만 마셔."
최대한 동생이야기는 피하면서 주인 없는 빈집에 모녀만 밥을 먹고 있는 이 상황이 낯설었다. 분명 동생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동생이 없다. 엄마 또한 기가 차는지 말을 꺼냈다.
"우리 둘이서 이게 뭐 하는 거냐?"
"그러게 말이야."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것 같아서 최대한 동생이야기는 피하고 싶었는데 술이 들어가면 감정이 절제가 안 된다. 속마음에 쌓아두었던 슬픔이 쏟아졌다.
"엄마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보다."
"그럼 나도 마찬가지 아니야?"
"너도 내 자식이니깐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지."
술이 들어가다 보니 서로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여기저기 협박도 하고 빌었다. 이건 너무하지 않냐고 이렇게 다 키워놨는데 이러는 건 아니지... 차라리 데려갈 거면 정 붙이기도 전에 갓난아기 때 데려가지 이게 뭐냐고 그랬다? 내 새끼... 내 아들 데려가기만 해 보라고 가만히 안 둘 거라고 신이고 뭐고 다 죽일 거고 아들 죽으면 나도 못 산다고... 한강은 그래 너무 멀어서 안 되겠고 낙동강 물에 뛰어들 거라고."
악에 찬 듯한 엄마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그러면... 나는?"
그 말에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러게 나는 죽고 싶어도 딸 때문에 또 못 죽겠네..."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말들과 감정들이 흘러나왔다.
"너네 할머니랑 삼촌이 그러더라. 아빠 죽고 나서 네가 한날 울면서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그게 너무 걱정된다고 울더라면서.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렇게 말할 애가 아닌데 강한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애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지 말라고 해서 그 말 듣고 니 앞에서 울지를 못하겠더라. 또 그렇게 걱정할까 봐."
그렇게 엄마의 말을 듣고 서로 한참을 울다가 말을 꺼냈다.
"이 놈의 시키 여러 사람 걱정시키고 일어나면 혼나야 돼. 그리고 나는 걔한테 무조건 누나라는 소리를 들어야겠어. 생명의 은인한테 그 정도도 못하면 배은망덕한 놈이지."
"그래. 그때 되면 내 아들 다리 몽둥이를 부러트려서라도 누나 소리 나오게 할게."
"아, 아픈 앤 데 그건 좀..."
"너무 심했나? 어쨌든 엄마가 그땐 네 편 들어줄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엄마한테는 나보다 내 동생이 더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내 편이었던 아빠가 사라지니 더 서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알았다.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나 또한 동생과 마찬가지로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냥 나는 첫째여서 엄마도 내가 처음이라 서툴러서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가 평생 동생 편을 들어도 좋으니 제발 무사히 일어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