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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2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45 - 예측 불가 병실 소동

2023년 6월 26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어제 엄마와 교대를 하면서 말해주길 동생이 이틀 동안 대변을 누지 않았다면서 변비를 의심했다. 그런데 이 놈은 왜 내 앞에서 아침부터 거하게 볼 일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쾌변 요정인가 보다. 그래도 변비라서 관장을 해야 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러는 게 낫다.  


 동생의 아침밥을 챙겨주기 위해서 탕비실에 물을 받으러 갔다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탕비실은 만남의 광장 같은 장소로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끊임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청양고추 사건을 엿듣게 되었다.


 간병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환자 한 명이 침대에 앉아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모습을 같은 병실 사람이 목격했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양손에는 베어 물은 흔적이 있는 청양고추가 들려있고 침대에는 고추씨가 사방팔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선반에 올려둔 청양고추를 발견하고 몰래 먹은 것 같다며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간병인이 뒤늦게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도대체 청양고추를 어떻게 찾은 건지 기막혀했다는 이야기였다.


 병원에 있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소동이 벌어질 때가 있다. 어딜 가나 예상치 못한 사고를 치는 환자들이 있다. 탕비실에 갔다가 흥미진진한 아주머니들의 수다에 나도 모르게 정수기 물을 받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렇게 안 듣는 척하고 나서 동생한테 달려가서 탕비실에서 들었던 걸 전해주었더니 재밌었는지 웃어 보였다. 아침부터 아주 흥미진진하다.


 오전에는 별 탈 없이 재활을 다 끝냈고 오후에는 휴식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 하늘은 흐렸지만 오히려 선선한 날씨라서 걸어 다니기는 좋았다. 한번 산책을 나가면 20분 정도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재활 시간이 다 돼서 산책을 끝마치고 돌아가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떤 아주머니가 병원에서 외출이 자유냐며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외출을 할 때 확인서를 따로 쓰지 않냐고 해서 잠시 나갔다가 들어가는 거라서 상관이 없다고 했더니 요양 병원이랑은 시스템이 다른 건지 궁금해서 물어봤다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매번 다니던 산책길에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궁금해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아주머니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어떤 병원을 고를지 참고하기 위해서 물어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다 보니 어른들이 편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병원 입구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재활 시간이 남아서 바깥에 잠시 서있었다. 그러다 문득 동생이 영어를 읽을 줄 안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간판에 적힌 영어를 가리키며 읽어보라고 하니 소리 내어 읽는다. 다행히 언어 지능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혹여나 인지에 문제가 생겨서 글을 못 읽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마음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저녁에는 우리에게도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저녁밥을 다 먹고 동생에게 후식으로 바나나를 줬는데 급하게 먹다가 목에 걸려버렸다. 앞에서 먹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나나가 목으로 넘어갔는지 컥컥거리며 숨을 못 쉬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임리히법을 하기엔 자세가 불가능해서 배를 눌러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손가락으로 혀를 눌러서 헛구역질을 유도했더니 바나나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바나나를 먹다가 동생이 질식하는 줄 알고 식겁했다. 간호사를 부르기엔 일분일초가 급해 보였고 그 순간 어릴 때 할아버지가 산 낙지를 드시다가 목에 걸려서 손가락을 목젖까지 넣어서 헛구역질을 하며 빼냈던 게 기억이 났다.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라 내가 더 놀랬다.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그 와중에 동생은 괜찮아졌는지 아무렇지 않은 듯 남은 바나나를 먹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크게 베어 물지 말라고 경고를 했더니 알겠다고 대답한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니 뭐가 재밌는지 씩 웃기만 한다. 다음부터는 음식을 먹을 때 더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다.


저녁이 되니 새로운 문제에 직면을 하게 되었다. 저녁 7시 전부터 불을 끄라는 환자부터 밤이 되면 좀비처럼 침대를 벗어나 혼자 걸어 나가는 환자도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내는 환자까지 다양했다. 불 꺼진 병실에서 커튼 너머로 간병인이 놀라서 소리치는 게 들린다. 간병인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환자가 침대에서 걸어 나간 모양이다. 이런 걸 보면 동생이 제일 얌전하고 순한 것 같다.


 동생이 잔다고 해서 눕혀놓고 씻고 왔는데 보통이면 자고 있을 시간인데도 말똥말똥한 눈으로 누워있다. 아무래도 주변이 소란스럽다 보니 자꾸만 깨는 것 같았다. 동생을 토닥거리며 다시 재우고 나는 옆에서 공모전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주변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소음을 피하는 방법은 이어폰을 끼는 방법 밖에 없다. 정말이지 다시 한번 열악한 환경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도 피할 수 없으니 그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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