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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0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0 - 삶에 대한 고찰

2023년 7월 1일 토요일


 7월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8시 반부터 재활이 있다. 오전에 재활 2개를 진행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이 생겨서 산책을 나갔다. 날씨는 흐렸지만 바람이 불어서 선선한 기분이 들었다. 동생한테도 바깥공기가 시원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내리쬐는 날도 좋지만 오래 걷기에는 지금의 날씨가 딱 알맞다.

 

 산책을 하다가 엄마한테 받은 기프티콘이 떠올랐다. 마침 근처에 GS 편의점이 보였다. 하지만 휠체어는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동생을 잠시 바깥에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빨리 사고 올 테니 혼자 있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주 잠시였지만 이렇게 동생을 혼자 두는 상황이 짠하면서도 불안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사고가 날까 봐 마음이 초조해졌다.


 재빠르게 편의점을 들어가서 사야 할 것만 골랐다. 매대를 보니 동생이 먹고 싶다고 했던 빵이 2+1 행사 중이라서 야무지게 3개를 집어 들고 후다닥 나왔다. 동생은 휠체어를 탄 채로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동생은 빵을 한가득 품에 안고 있는 나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그 표정에 너무 많이 샀나 싶어서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이 샀나? 근데 우리 이거 다 먹을 수 있잖아. 그렇지 않아?”

“어”

“그래 다 먹을 수 있다니깐. 그래서 종류별로 샀어.”


 동생은 어차피 정해져 있던 나의 말을 듣고는 어이없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어떤 것부터 먹어볼지 살펴보는데 빵 하나가 6월 30일까지로 유통기한이 어제까지였다는 걸 발견했다. 동생을 잠시 두고 얼른 다시 들어가서 교환을 하려고 하는데 제품이 없어서 냉장고라는 앱으로 빵 한 개를 보관했다. 수박맛 빵이라고 해서 골랐는데 맛을 보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 잠시 서서 말차 초코빵을 사이좋게 반으로 갈라서 먹었다. 동생은 맛있었는지 입가에 생크림을 잔뜩 묻히면서 먹고 있다. 맛있냐고 물어보니 입을 열심히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물론 동생의 입가에 덕지덕지 묻은 초코는 내가 다 수습해야 했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동생이 나머지 오전 재활을 받는 동안 병실로 올라왔다. 잠시 쉬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싶어서 전화를 받아보니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뜬금없이 큰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면회가 되냐고 묻길래 3 이후에 가능할  같다고 말하니 이미 병원에 있다며 만날  있냐고 한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혹스러웠지만  마음을 일단 뒤로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1층으로 갔지만 큰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왠지 낯이 익는 실루엣이 보이길래 긴가민가해하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큰아빠를 확인하고는 한번 더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3남 2녀 중 막내로 나에게는 큰 아빠가 2명이 있다. 그런데 가족 간의 갈등으로 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였고 첫째 큰 아빠와는 왕래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분은 바로 둘째 큰 아빠였다.


 당연히 첫째 큰아빠인 줄 알았다. 목소리도 비슷하고 심지어 말투까지 비슷해서 단단히 착각했다. 다시 만날 줄은 몰랐던 얼굴을 갑자기 보게 되어서 놀라웠다. 둘째 큰아빠와는 초등학교 6학년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가 친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뵙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도 5년 전 아빠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도대체 얼마나 심한 갈등이 있었던지는 몰라도 사촌언니 결혼식에서도 볼 수 없었으니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가족이기는 하지만 장례식이나 이번처럼 큰일이 아니면 볼 일이 없었던 터라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과 직접적인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다. 다만 너무 오랜만이라서 뻘쭘할 뿐이었다. 큰아빠와 큰엄마는 내 앞에서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를 몰라서 한숨만 내쉬었다. 일단 병원 내에 있는 카페로 가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눴다.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으니 며칠 전에 엄마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말했다. 둘째 큰아빠한테도 소식을 전해야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더니 결국은 전했나 보다. 물론 고모 두 분한테는 말을 안 했으니 여전히 동생의 소식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큰아빠와 큰엄마는 내게 고생이 많다며 용돈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쿠폰과 마카롱을 사다 주었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방문하느라 돈을 많이 못 챙겨 왔다며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 말에 괜찮다면서 거절을 했지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라며 지금 바로 보내달라고 해서 결국은 계좌번호를 보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생의 재활이 끝나서 카페로 데리고 왔다. 누군지 알아보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교도관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큰아빠가 신기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알고 보니 교정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주말마다 교도소로 봉사를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생이 퇴원을 하면 교도소 견학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동생도 그 말에 신이 나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큰아빠는 동생에게 자신만 믿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큰 소리를 쳤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동생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동생에게 어디서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울산이라고 대답했는데 마침 큰 아빠가 방문하는 곳도 울산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 싶어서 속으로 혼자 이 상황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세상 일은 정말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다시 한번 느껴졌다.


 큰아빠와 큰엄마가 11시 반쯤에 면회를 와서 점심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오래 있지는 못했다. 그렇게 깜짝 면회를 끝내고 다음 오후 재활을 위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큰아빠들을 보면서 두 분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는 물론이고 말투와 목소리 성격까지 거의 똑같다. 서로 연을 끊고 산지는 어연 10년이 넘었지만 너무나도 닮았다고 느껴졌다.


 동생이 재활을 받는 모습을 보며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멀뚱히  있는 모습 그리고 병간호를 하고 있는 나를 보는 눈빛이 비슷하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보면 복잡하고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자신들은  때문에 피를 나눈 형제와도 생사를 알지 못하고 연을 끊고 사는 중인데 누나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을 돌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건지 과거를 되돌아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보면서 어쩌면 자신들은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감정을 헤어릴 수도  수도 없지만 나였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  같다.


 인간은 큰일을 겪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 문제를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느낀다. 물론 모든 걸 잡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할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이미 멀어져 버린 그 길로 그냥 걸어갈지 아니면 늦었지만 되돌아갈지를 말이다. 틀린 선택은 없다. 그 어느 길도 정답과 오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단지 어떤 길이든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냥 가던 길을 가면 마음 한편은 불편할 수 있으나 더 이상의 갈등을 겪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되돌아가서 관계를 회복시킨다는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더없이 부족하다. 서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만 원만하게 해결된다면 묵혀왔던 감정의 응어리를 풀 수도 있다. 세상은 여러 가지 갈래를 제시해 줄 뿐 어떤 선택을 해야 될지 정해주지는 않는다.


동생의 점심을 챙겨주고 후식으로는 고구마 말랭이를 주니 아주 잘 먹는다. 아무래도 콧줄을 빼고 나니 음식을 먹을 때 걸리는 게 없어서 그런지 확실히 더 잘 삼키는 것 같다. 간식을 안 줬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흐뭇했다. 문제는 저녁이었다. 아침, 점심은 그렇게나 잘 먹더니 저녁은 잘 먹지를 않아서 밥을 먹이느라 1시간 반 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동생과 밥으로 실랑이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밥시간이 늦어지거나 사라진다.


 동생에게 저녁밥을 겨우 다 먹이고 진이 빠진 채로 간이침대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애꿎은 휴대폰만 매만졌다. SNS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의 현실과 비교가 된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행복을 전시하는 SNS 공간 속에서는 모두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한다. 그에 반해 나는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그들이 하는 연기를 보는 관객일 뿐이다.


 물론  실체가 허울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화려한 가면 뒤에 감춰진  얼굴을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랄까. 현실에서는   번도 부러워해   없는 삶이  갑자기 소셜 미디어를 보면서 문득 부러워진 걸까.  SNS 현실이 다르다는  알면서도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행복한 척일 수도 있고 정말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척일 수도 있고 정말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좋은 개살구가 좋은 것일까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속이 가득  알밤이 좋은 것일까.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과는 삶을 사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 어쩔 때는 시대에 발맞춰 가는 개살구가 부러우면서도 어쩔 때는 한결같이 우직한 알밤이 부럽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남들이 알아봐 주는 화려한 삶을 원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남들처럼 화려하게 살지는 못해도 투박하고 단단하게 사는 삶을 원하는 것인가. 도대체 어떤 결정을 해야 만족을   있을지 모르겠다.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면서 괜스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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