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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1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36 - 나약하지만 강한 존재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한 동안 재활 치료 시간에는 내가 처리해야 할 일에 몰두하느라 동생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못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같은 병실을 사용했었던 아주머니와 간병인이 호들갑을 떨면서 나에서 다가왔다. 그러고는 지금 동생이 걷고 있으니 빨리 보라고 하며 손짓을 하였다. 그들의 손짓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보행 보조기를 이용하여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동생이 보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광경에 얼떨떨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을 해보니 동생이 넘어지지 않게 치료사가 뒤를 받쳐 주고 동생은 앞에서 보행 보조기를 잡은 채로 걷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오른쪽 다리는 치료사가 앞으로 발을 밀어서 옮겨주고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다리는 한 걸음씩 공중으로 뗐다. 이제는 다리에 힘이 조금씩 생겨서 걷는 것도 시작한다. 아직 누군가의 도움으로 걷는 거지만 발전된 모습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요즘 들어 언젠가는 우리도 저걸 하게 될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이루어 내고 있다. 매 순간마다 기적이 함께 하는 것 같았다. 보행기를 잡고 있는 동생을 보니 용인에 있었을 당시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때 동생은 서는 것은 물론이고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서 몸이 버티지 못하고 기울어졌었다. 치료사는 똑바로 서는 연습을 시키다가 딱 한 번 동생에게 보행 보조기를 잡아보게 하였다. 물론 불가능한 걸 알지만 한 번 걷기를 시켜보려고 시도했는데 역시나 다리 힘이 부족해서 보행기를 제대로 잡고 있지도 못했었다.


 치료사는 동생이 보행기를 잡고 걷는 것까지 보고 싶었는데 우리가 부산으로 병원을 옮겨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못 본다는 것을 아쉬워하던 게 생각이 났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모두의 바람과 정성이 통한 덕분인지 이제는 보행기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던 어두운 나날들은 이제 지나가고 내 눈앞에서 밝은 기적을 마주했다. 그 어떠한 결실도 이보다 기쁜 적이 없었고 마음속에서는 보람과 희망이 차올랐다.




 지금도 이곳 재활병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특별할 것도 보잘것도 없다고 여기는 그 평범한 순간들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힘겹게 움직이고, 많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그 소중함을 잃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숨을 쉬고, 말을 하고, 걷고, 먹는 것이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엄청나게 복잡하고도 어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우리는 분명 지금은 그냥 하고 있는 것들을 못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를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양수 속에서 살다가 바깥으로 나온 태아는 세상에서의  호흡을 위한  터뜨린다. 그렇게 옹알이를 하던 아기는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말하고, 누워만 있던 아기는 자라나면서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모유 밖에 먹을 줄 모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먹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힘들이지 않고 하는 일들이라 당연한 것들이라 여기지만 원래 당연한  없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일상을 얻기 위한 일련노력을 거쳤고 지금 나와 동생은  과정을 다시 한번  거치고 있을 뿐이다. 남들에 비해 이런 순간이 일찍 찾아왔지만 이로 인해 세상을 살면서 너무 당연해서 잊고 지내던 진리들을 깨우치게 됐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해내는 인간은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니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대도 이겨낼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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