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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2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43 - 타임머신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오랜만에 푹신한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간병을 하면서 바뀐 습관이 있다. 원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고 있던 내가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다. 내일이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하기에 주어진 하루를 잠으로 보내기는 아까웠다.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집에서도 할 일은 많았다. 일단 집안을 어슬렁 거리면서 옛날 물건이 들어있는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엄마의 20대 시절에 쓴 일기장과 졸업앨범 그리고 아빠의 메모와 성적표가 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닮아서 기록을 남기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 아빠를 모두 닮은 것이었다. 빛바랜 종이에 적힌 손글씨를 읽으면서 이렇게라도 무언가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과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데 그 찰나의 순간을 잊지 않도록 글로 담아둔 느낌이라서 새로웠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나중에 보면 그땐 그랬지라며 아무렇지 않게 추억을 회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마치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라서 재미있었다. 엄마의 일기장을 열어보니 대학시절에 성적과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여느 20대처럼 연애를 하고 싶다는 소망도 담겨 있었다. 취업은 어떻게 할지  그리고 남자친구는 언제 생길지 궁금해하는 21살의 엄마는 자신의 미래를 알았을까. 그로부터 2년 후 직장에서 만난 아빠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수많은 고민으로 잠 못 드는 엄마에게 가서 귀띔을 해줄 것이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될 텐데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라고 말이다. 설령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엄마, 아빠의 만남은 뜯어말리고 싶다. 부모님의 서사를 들여다보는 내내 주인공들만 모르는 새드엔딩 영화 같았다.


 지금은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은 많이 흐려졌고 남겨진 것들을 보자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었다. 대학교 합격 통지서, 7급 공무원 응시표 그리고 휴학 원서까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학교를 졸업하지는 못했다고 들었다. 몇 년 만에 알게 된 사실은 아빠가 경영학과였다는 것이다. 어떤 꿈이 있었기에 경영학과를 진학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다.


 세상에 태어나 희망찬 미래를 기대했던 소년은 예상치 못한 현실에 좌절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또 다른 불행을 마주한다. 세상은 얄궂게도 아빠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느 순간 꼬여버린 인생은 풀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랐고 모든 걸 놓는 순간 해방이 되었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지켜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래에서 누군가 지금 내 모습을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지  궁금해졌다. 곧 좋은 날이 올 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을 해줄까. 잘하고 있다고 말해줄까. 내 인생은 해피엔딩일까.


 추억 훔쳐보기는 이쯤에서 끝을 내고 서랍장에 있던 돼지 저금통을 꺼냈다. 백 원과 오백 원짜리 동전으로 가득 채워진 돼지를 오늘 잡기로 했다. 꽤나 묵직한 게 얼마 정도 나올지 기대했다. 그러면서 희귀 동전 연도를 확인하면서 해당되는 동전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 혹시나 미래는 모를 일이니 말이다.


 남들은 이해 못 하는 이런 쓸데없는 짓을 좋아한다. 원래는 태어난 년도인 1997년 동전부터 모으려고 했는데 다음 해인 1998년부터 막혔다. 1998년짜리 오백 원 동전은 도무지 구할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그렇다고 웃돈을 주고 거래를 할 만큼 갖고 싶은 건 아니라서 동전 수집은 상상으로만 남겨두었다. 그래도 나중에 우연찮게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많이 신날 것 같긴 하다. 저금통 안에 있던 동전은 6만 원이 넘었고 금액을 보니 뭔가 모를 뿌듯함이 올라왔다.


 모처럼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이런 비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이 어떻게 매번 생산적인 일만 하고 살겠는가.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즐길거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으로는 막창구이를 시켜 먹었다. 누가 뭐래도 오늘은 나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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