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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r 1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3 - 중환자실에서 눈 뜬 날

2023년 2월 14일 화요일


중환자실에서 12일 만에 눈을 뜬 날


 오늘 드디어 동생이 눈을 떴다. 의식이 온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름을 부를 때 조금씩 신체 반응을 보인다. 너무 다행이다. 나는 내 동생이 잘 버텨줄 걸 알고 있었다. 중환자실을 입장하기 전 오늘따라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중환자실 들어가기 5분 전 담당 교수님께서 나를 불렀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면담실로 따라 들어갔다. 모니터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는 것을 지켜보는 그 순간조차 떨렸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좋은 이야기일까. 나쁜 이야기일까.


 

 동생의 뇌를 찍은 CT 결과가 모니터에 떴다. 처음과 저번주 그리고 오늘 찍은 사진을 비교하며 설명에 들어갔다. 오늘 CT를 찍어본 결과 부기도 잘 가라앉고 있으며 왼쪽에 미미한 출혈이 있었지만 더 이상의 출혈이 없고 주름도 조금씩 보인다고 한다. 며칠 전 몸에 열이 많이 났었다가 지금은 열이 많이 내려서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고도 했다. 뇌가 요구하는 산소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수면제를 투여하여 잠에 들게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 수면제 투여는 중단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의식 수준도 4, 5단계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에서 지금은 3단계로 낮아졌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말을 걸면 눈을 뜰 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산소호흡기에 완전히 의존을 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스스로 호흡할 수 있도록 입으로 연결된 튜브를 제거하고 산소 호흡기는 자가호흡에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 진행하려고 한단다. 산소 호흡기에만 의존을 할 시 목관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아직 젊으니깐 최대한 기관 절개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해 주며 다행히 동생이 병원 치료를 잘 따라와 주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 의식이 돌아온 게 아니라 앞으로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어찌 됐든 고비는 넘겨서 안도감이 들었다. 장하다 정말.


 교수님과의 면담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오늘이라도 당장 일어날 것 같았다. 저번주와는 다른 방향으로 누워있는 동생을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이경오 나 왔다. 일어나라. 나랑 놀자."

반응이 없었지만 꿋꿋하게 대화를 걸었다.

"야 왜 계속 누워있어? 빨리 일어나."

의식은 없지만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계속 말을 걸었다. 무슨 말부터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이나 했다. 우선 여자친구가 부탁한 말부터 전해주었다.

"나 네 여자친구랑 연락했다? 여자친구가 전해달래. 생일 미리 축하한다고. 자기가 제일 먼저 축하해 주는 거래."

"야 오늘이 니 생일 4일 전이다. 그전에는 일어나야지. 그리고 오늘 밸런타인 데이던데 네 초콜릿을 내가 대신 받을 수는 없잖아. 네가 일어나서 직접 받아."

"2월 18일!"

생일 이야기에 눈이 살짝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야 너 들리는구나! 지금 내 말 듣고 있지?"

"그래 네 생일 이번주 토요일이다. 선물 받고 싶으면 빨리 일어나 봐."


손가락을 잡으니 검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저번주 금요일보다 이번에 왔을 때 신체반응이 더 활발한 것 같다. 담당 간호사가 들어와서 필요한 물품을 알려주었다. 동생 피부에 욕창이 생겼는지 물어보니 욕창방지를 위해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해주고 있으며 아직 젊어서 그런지 피부탄력성이 좋아 상태가 괜찮다고 하였다. 아까 교수님이 눈도 깜박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뜨는 게 맞는지 물어보니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기도 하고 신체 움직임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혹시 노래를 들려줘도 되냐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동생이 기타로 연습하고 있던 노래를 틀어서 귓가에 갖다 대줬다. 눈을 뜬 적이 있다고 하니 오늘은 동생이 눈을 뜬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야 눈 좀 떠봐. 내 말 들리잖아. 오늘은 눈 뜬 모습 좀 보자. 나한테도 보여줘 봐라."


한참을 재촉하다가 조용히 음악감상을 하라고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와중에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제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을 보이니 익숙했던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을 툭 치며 이름을 불렀다.


"이경오 님!!!"

간호사의 큰 목소리에 놀랐는지 눈을 떴다. 양쪽 눈이 다 떠지진 않았지만 왼쪽눈이 번쩍 떠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옆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큰소리로 말했다.


"야 이경오 나 여기 있어."


한 2초 정도 눈을 뜨고 있다가 다시 감았지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기적처럼 느껴졌다. 오늘 눈을 뜰 것만 같았는데 잠깐이었지만 눈을 떴다. 그 모습을 보니 기쁘면서도 동생이 너무 무리하게 애쓰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야 내 동생 장하다. 잘하고 있네. 역시 넌 의지가 강한 놈이니깐 일어날 줄 알았어."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해줄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 한참 동안 동생을 칭찬하고 있으니 간호사가 들어와서 아쉽겠지만 면회 시간이 끝나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동생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야, 나 간다? 진짜 간다. 금요일엔 엄마가 올 거야."


 기분 탓인지 왠지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금요일에는 더 괜찮아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발걸음을 돌렸다. 중환자실을 나오자마자 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엄마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 정말 다행이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떨리는 목소리를 잘됐다며 좋아했다. 친구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주니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친구 현태에게 동생이 눈을 떴다고 얘기하니 자기 덕분이라고 하였다. 사실 어제저녁에 우울해하는 나를 집 밖으로 끄집어내어 술을 사주며 말했다. 왠지 내일 12시에 눈뜰 것 같다면서 나에게 걱정 말라며 위로했는데 정말 그 말이 이루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뭐 또 대출이겠거니 하고 받아보니 동생이 쓰러진 날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구급대원이었다. 그날 수술이 끝난 후 어떻게 되었는지 예후를 물어보려 전화를 했단 말에 오늘 눈을 떴고 잘 회복 중이란 말을 전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다행이라며 함께 기뻐해주시길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좋은 소식을 알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대로만 동생이 더 건강하게 일어나길 기도한다.


무당이라는 동생 친구의 어머니가 동생이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마음이 완전히 놓이는 상황은 아니지만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 동생에게 통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잠들어 있어도 귀로는 다 듣고 있으니 동생을 만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엄마는 너 없이 못 산다라며 힘내달라고 전달하라고 말했다. 역시 의식이 없어도 목소리를 듣고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나도 동생이 눈을 떴다고 해서 아직 완전히 안심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잘 이겨낼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동생에게 큰 행운을 주기 위해 오늘 저녁에 작은 액땜 3가지가 일어났다. 처음은 화장품을 담는 유리볼을 세면대에 떨어트려서 두 동강이 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두 번째는 치킨박스를 분리하다가 종이 박스에 새끼손가락을 베여서 피를 봤다. 살짝 베인 거라 방심했는데 생각보다 따갑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가 금요일에 마카롱 만들기 클래스를 가자고 제안을 했는데 갈 수가 없다. 금요일마다 엄마가 면회하러 올라오기 때문에 못 간다. 아무래도 이번달은 주말마다 엄마와 함께 해야 할 듯하다. 데이트를 하고 싶어도 타이밍이 안 맞다. 나한테는 왜 이런 일만 벌어지냐고 불행해하며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상황들이 생겼을 때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아직 나는 더 큰 기적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동생이 온전하게 의식이 돌아온 게 아니라 더 지켜봐야 하기에 나에게 오는 작은 불행들은 더 큰 행운을 가져다주기 위한 액땜으로 가벼이 넘길 수 있다. 전부 이겨내 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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